“바다 위에 세워진 주제관은 마치 건축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아름다움으로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2012여수세계박람회 공식보고서에서 밝힌 여수세계박람회(여수EXPO) 주제관에 대해 찬사다.국제 현상공모로 선정된 주제관은 오스트리아 건축그룹인 소마(soma)의 작품 ‘하나의 바다(one ocean)’다. 대표 건축가는 오스트리아 출신 귄테르 베베르다. 당시 설계 응모작은 133개 팀에서 제출했다.총 건축 면적 6,000㎡(약 1,800평) 규모로 47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주제관은 찬사만큼 당시 큼직한 건축상도 수상했다.국토
2012세계박람회장 엑스포 ‘주제관’이 골칫거리다.여수엑스포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건물 ‘주제관’이 2012세계박람회 폐막 직후부터 수 년째 비어있다.수익창출에 목마른 여수세계박람회재단(아래 재단)으로서는 임대료 수익도 올리지 못하고 빈 건물로 방치한 채 잠겨있는 상태여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황이다.이렇게 된 데는 ‘사후활용’이란 명목으로 임대료 수익을 올리려고 서둘러 임대사업자를 선정하고(2015년도) 이 업체와 실시협약을 체결한(2016년도) 탓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실시협약 체결 후 어떠한 임대사업도 시행되지 않고
현재 여수엑스포장의 메인 건물인 ‘주제관’이 비어있다. 수년째다.그런 가운데 한 신문 칼럼에서 주제관을 '미술관'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해 지역 문화예술계의 큰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미술관 주장은 지난 달 말경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의 칼럼 [동십자각]“여수엑스포 주제관을 미술관으로 쓴다면?”이란 제목으로 실려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칼럼에서 여수엑스포 ‘주제관’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미술관도 부럽지 않고, 서울의 동대문디
우리 지역의 아름다운 섬 전남 여수시 남면 안도(安島). 이곳에 있는 이야포마을은 '오메가'처럼 생긴 천연 포구가 있다. 이곳에 69년 6.25 전쟁 당시 미군폭격기 4대가 350여명을 태운 피난선을 공격해 격침됐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950년 8월 3일 발생한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으로 150여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다쳤다. 특히 조기잡이 어선을 폭격해 10여명이 사망한 8월 7일 횡간리 두룩여사건과 여자만 미군폭격사건으로 이어졌다. 3일 본지와 해양구조단여수구조대, 가 공동 주관한 이야포 미군폭격
“불의에 맞서고 분노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3월 정기총회를 통해 여수넷통뉴스의 제4기 새로운 경영진이 구성되었습니다. 새로운 이사로 편집위원장 심명남, 시민위원장 심정현, 조직위원장 김태희, 문화위원장 박정우, 미디어위원장 이현종, 특별위원장 오창주 이사로 조직하였습니다. 특별기획 기사를 통해 경영을 책임질 제4기 운영진 이사님들의 포부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아울러 각 위원회의 사업계획을 시민들께 약속드렸습니다.30일 홈페이지 오픈... 새로운 콘텐츠 개발 계속될 것
DMZ평화인간띠잇기 운동에 참여하면서과연,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응하여 그간 이어져온 평화회담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고, 애끓는 이산가족들이 재회하고, 제한적으로나마 북녘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인가?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대륙에서 다시 포효할 날이 올 것인가?그런데, 미국은 지난 2. 27. 하노이회담에서 그간 제기해 온 영변핵시설 뿐만 아니라 새로이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한 파괴까지 들고나옴으로써 회담을 결렬시키고, 한민족과 세계인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북한은 수
정초에 여수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터졌습니다. 섬으로 해돋이를 보러간 차량이 물에 빠져 아내가 숨졌습니다. 이 사건은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한 '보험금 사기행각'으로 밝혀졌습니다.경찰조사에 따르면 보험회사 직원인 50대 남성 A씨는 재혼한 아내 명의로 5개의 보험을 들었습니다. 사망보험금이 무려 17억 5천만 원의 거액이었습니다. 이 남성은 혼인신고 20일 뒤 수익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고, 범행을 모의하기 위해 일주일 전 현장답사까지 하는 등 치밀한 범행을 준비했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에 덜미가 잡혀 쇠고랑을 차게 되었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가 되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500만 원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1억 4,000만 원이다. 인구가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에서 일곱 번째로 3만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에 이어 일곱 번째이다. 대단한 일이다.그러나 우리 국민 중에 1인 소득 3,500만원 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4인 가족 기준으로 1억 4,000만 원이 넘는 가구는 얼마나 될까?사람들은 이 수치가 실감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통계의 허구성도 실감을 못하게 하는데 한몫을 한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그만 먹게 허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국악인 이선희씨가 부른 사철가(이산 저산)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 내용은 '봄과 함께 인생을 즐기는 것'으로 귀결되더군요. 바야흐로 여기저기 꽃망울을 머금고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새봄입니다. 사랑하는 독자여러분!꽃이 피고 새가 울어대는 춘삼월이 느껴지나요?아침마다 를 접할 수 있다는 건 제게 참으로 소소한 행복입니다. 매일 아침 편집국장님으로부터 배달되는 '뉴스택배'를 보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저는 3년전 운영위원으로 활동해 오다 2019년 정기총회를 통해 제4대 여수넷통 신임이사로 선출된 박정우입니다. 여수넷통 운영진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이사장님과 함께 최선을 다해 더 품격 높은 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저는 돌산 소미산 아래 안굴전 마을에서 태어나 푸른 바다와 함께 제 꿈을 키워왔습니다.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굴 양식업을 경영하며 여수의 수산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정우굴구이’를 창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올
편집자 소개글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3.1운동의 근본정신은 ‘독립’과 ‘평화’입니다. 그리고 3.1운동의 근본정신을 일깨워줄 여수의 상징물로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떠올려 봅니다.본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 존재로 말한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5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합니다. 충무공대첩비에 담긴 내용과 역사성을 깊이 살펴보면서 100년을 맞은 3.1운동 근본정신을 새기고자고 합니다.① 초대 여수군수 오횡묵의 회고 “한서린 파도소리” (2월 16일)② 이항복의 추모 “
지금은 여수시 고소대에 자리한 충무공비각은 원래 충무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건립당시 비각 터 행정지명은 동령현이었다. 동령현은 사라지고 지금은 인근의 도로명 ‘동령현길’로만 남아있다.대첩비 기준으로 322년간 처음 건립시부터 세워져 있던 것인데, 일제강점기 1942년에 충무동의 비각이 헐리고 대첩비와 부속비들이 반출되었다.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일본인 여수경찰서장 마쓰키(松木)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기에 가장 눈에 거슬리는 비각과 ‘대첩비’ 일체를 철거해 버렸다. 일제강점기 말 전국적인 동
임란 7년전쟁 막바지에 수군 장수 중 이순신의 분신으로 불러도 손색없는 류형(柳珩)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노량전투에서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받고 바로 수군지휘권을 넘겨받은 장수였다.여수 고소대 충무공비각에 들어서면 지붕을 뚫을 듯이 서까래에 닿을 정도로 비각을 가득 채우고 서있는 초대형 ‘통제이공수군대첩비’가 있는데 바로 류형이 그 비의 원석을 황해도에서 구한 사람이기도 하다. 류형이 돌을 구했기에 대첩비가 건립될 수 있었다.류형은 해남현감으로 전라좌수영에 파견돼 충무공의 막료로서 전장에서 활약하며 충무공과 함께 적
400여년전 황해도에서 옮겨온 돌로 만든 '대첩비' 여수에 세워진 충무공대첩비는 높이 305cm, 너비 124cm, 두께 24cm다. 국내 문화재비석으로는 최고 최대 크기다.비문의 글은 당시 영의정 오성대감 백사 이항복이 지었다.고소대 현장 안내판에도 “통제이공수군대첩비는 좌수영대첩비로도 부른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비석으로, 국내 비석 중 가장 큰 것으로 유명하다”라고 소개한다.초대형 비의 원석은 황해도에서 가져왔다.큰 돌이 황해도에서 옮겨온 과정이라든가 대첩비가 세워지게 된
편집자 소개글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3.1운동의 근본정신은 ‘독립’과 ‘평화’입니다. 그리고 3.1운동의 근본정신을 일깨워줄 여수의 상징물로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떠올려 봅니다.본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으면서 충무공대첩비에 담긴 내용과 역사성을 살펴보고자 「그 존재로 말한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5회에 걸쳐 아래 순서로 연재하고자 합니다.① 초대 여수군수 오횡묵의 회고 “한서린 파도소리” (2월 16일)② 오성대감 이항복의 추모 “노량을 깊고 깊은데...” (2월 19
여수시 돌산읍 무술목(무슬목) '바다호수'인 '목장용지'의 지번 모두가 한 개인에게 지난 7월에 팔렸다. 어떤 용도로 매입을 했는지 지역의 관심이 뜨겁다.본지는 무술목 ‘바다호수’ 지번에 대한 토지대장 열람 결과 충남 천안시의 김 아무개(73세)씨에게 지난 7월 6일자로 소유권이 전부 이전된 것으로 확인했다.무술목의 '바다호수'는 토지가 아닌 ‘바다’다. 등기부등본에는 지번이 부여됐고 ‘목장용지’다. 지적도상에는 해당 바다가 '생산관리지역'과 '자연녹지지역'이라
"환장해 불것당께요."며칠 전 순천 KBS 개국특집 ‘여순사건 70년 다시 진실을 묻다’ 프로그램을 보다가 입이 헤 벌어졌습니다. 토론자로 나온 모 여성작가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벌어진 입에서 혀가 늘어져 나왔습니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사투리가 튀어나왔습니다.“워마 진짜로 환장해불것구만잉.”전직 국회의원이었다는 모 여성 작가의 주장 요지는 이러했습니다.“나는 반란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진실은 하나일 수 없다. 14연대 주동자 김지회는 공산주의자이며 북한에서 파견한 간첩이다. 14연대가 양민과 어린아이까
올해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나라를 반민족 이승만 초대 정부에 의한 분단고착이 시작된 지 70년 되는 해입니다. 1948년 제주 4.3 항쟁 역시 70주년입니다. 같은 해 일어난 여순항쟁도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그 이전까지는 비록 한반도를 38선으로 나눠 미국과 소련이 분할점령하고 있었지만 민족이 분단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의 나라 한 민족이었지요. 그런데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를 세워 분단을 고착화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해방된 나라의 분단획책을 종용하는 미군정과 이승만에 대항하여 각 지역에서는 저항이 일어났습
* 화면 클릭하면 팟캐스트 방송내용 들으실수 있습니다. 약 30분 가량입니다. 상포추적기(13편) 방송을 하게된 이유1)상포땅 투자자들 대거 순천 검찰 앞에서 시위2)시민협 고발건, 광주고법 항고중 관련 서류 제출상포특혜의혹에 대한 여수시의 안이한 대응도 도마에.과연 누가 상포지구 도시기반시설 책임자냐? 자칫, 여수시가 뒤집어쓰게 되면? 자칫 진흙탕싸움에 상포도시기반시설 책임이 시에 떨어지게 되면 ‘피박광박’ 다 쓸지도 몰라 ~투자자들 벌써부터 ‘여수시 책임’ 운운... ‘여수시에 배상요구하는 소송도 불사’방침 펼쳐.결국 진흙탕 싸
인터넷신문 는 9월 3일자 회원 소식지 6호 지면 발간 특별기획 기사로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의 특별기고문을 싣는다.평소 '여순항쟁' 정명(正名)을 주장해온 주 박사 이번 기고문에서 '항쟁'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70주년을 맞은 '여수순천 10.19사건'이 주 박사의 이번 특별기고문은 통해서 '여순사건'이라는 애매한 명칭보다는 구체적인 바른 이름(正名)으로 불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본지는 2018년 여순항쟁 70주년을 맞아 연초부터 관련 기획기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