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푹푹 찌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더워도 책상 앞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남편, 남편 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아니 있어도 에어컨을 켤 사람이 아니다.남편은 팥빙수와 함께 여름을 난다. 여름하면 팥빙수, 팥빙수하면 남편이 떠오를 정도로 팥빙수 광이다. 그래서 딸아이가 팥빙수 기계까지 사주었지만 팥을 삶는 번거로움, 얼음을 얼리는 번거로움을 몇 번 경험하고는 밖으로 나가 사 먹기로 했다.팥빙수도 먹고 더위도 식히기 위해 카페로 갔다. 가재도 잡고, 또랑도 치우고.... 그런데 우리 남편은 집에서든 밖에서든 음식 앞에
집 천장 속 길고양이를 잡았다. 꼬박 일주일만이다. 녀석이 우리 집 안방까지 침입한 건 지난 5일 저녁이었다. 난 2층 서재에 있는데 아내가 안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왔다."얼른 좀 내려와 보라"며 고함을 쳤다. '또 지네가 나왔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1층에 내려왔더니 주방을 가리킨다. 고양이였다. 길고양이가 열린 출입문으로 들어와 안방까지 침범한 뒤 사람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주방으로 달아난 거다.길고양이는 주방 서랍장 모서리 비좁은 틈으로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머리는 이미 들어간 상태라 절반 가량만 보였다. 아
‘우두리 햇번의 귀촌이야기’를 여수넷통에 기고하는 시민기자 활동은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주었다.작년에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처음으로 진행 된 국민연금공단의 작가탄생 프로그램 강의를 들으러 여수와 전주를 오고 갔다.전주에서 맺어진 국민연금공단과의 인연으로 우리은행측으로부터 ‘은퇴 후 귀촌생활과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이야기’를 기고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내 생활을 쓰는 일이니 그리 어렵지 않게 글이 술술 풀렸다. 글을 보낸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아 서울의 친구가 네이버포털 메인에서 내 글을 봤다는 문자가 왔다. 연금공단 측에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 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여수여행 그림이 되다‘ 작업실 투어를 하면서 만나게 된 최병수작가. 그가 탄생시킨 작품은 다양한 주제만큼 재료도 다양하다. 작업실도 만물상을 연상하게 해 ’만물을 상상하여 창작해내는 곳'이다. 나는 가까이에서 그의 작품활동을 지켜보며 매우 흥미롭고 다이나믹한 그의 작품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그는 쇠를 다루는 철인이 아닌 천재성을 지닌 철인 같다.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그의 행적은 역사의 현장으로 기록
여수 케이블카의 짧은 투어는 늘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서 이번 주말 40여분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목포 해상케이블카에 기대를 품고 올랐다.유달산 정상에서 고하도 스테이션으로 내려가는 다도해 풍경에 취해 있을 때, 케이블카 바로 아래로 유달산 골짜기에 자리잡은 집들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보였다.딱정벌레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민가들과 그곳 마당을 오가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머리 위를 오고가는 케이블카를 이고 살고 있는 것이다.더러는 그분들을 무슨 이유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동물원
언제부터 내 안에 정원에 대한 꿈이 심어졌을까. 내면의 꿈이 열망과 의지로 시간과 함께 발효되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 정원도 처음에는 꿈으로 존재했을 것이다.생각해보면 그 최초의 꿈은 인도 푸나의 ‘오쇼 아쉬람’이지 않을까 싶다. 명상을 접하고 난 뒤 자연스럽게 인도나 티벳, 그리고 세도나 같은 영적인 장소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세 번의 인도 여행에서 푸나의 ‘오쇼 아쉬람’을 두 번 방문했다.사실 인도의 성자 오쇼 라즈니쉬는 수행에 관심을 가지기 훨씬 전인 20대부터 책을 통해 접했다. 대학 시
남편이 대장암이라는 판정을 받은 날, 놀랍고 두려웠다. 뿐만 아니라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치유를 선택했을 때는 앞이 더 캄캄했다. 벌써 7년 전 얘기다.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부부가 함께 내린 결론은 ‘음식이 내 몸이다’라는 것.우리는 우두리 텃밭을 이용해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고 농사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여수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받은 귀농귀촌교육은 흙을 살피고 채소를 키우는 과정에서 기준이 되었다.화학비료나 기성품으로 만들어진 거름 대신 미네랄이 풍부한 바닷물로 농사를 짓는 방법이라든가, 유용한 미생물을 배양해
모든 감동적 드라마에는 ‘위기와 갈등’이 존재하고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스토리가 존재한다. 마냥 순탄하기만 할 것 같은 우리 정원에도 전혀 예기치 못한 위기가 찾아온 적 있다.2010년 초봄, 정원 산책을 하고 있는데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 둘이 불쑥 들어왔다.“사모님 얼굴 어디에 그렇게 많은 복이 붙어 있을까. 이제 사모님은 대박이 터졌네요. 돈방석에 앉겠어요.”그러면서 옆구리에 둘둘 말아온 지도를 펼쳤다. 돌산을 관통하는 기존의 국도 17호선 2차선을 자동차전용도로 4차선으로 확장하는데 그 도로가 우리 정원을 관통하여 지
여수바다는 늘 청소 대상이다. 여러해 동안 틈만 나면 여수해양구조대에서는 수중청소작업을 한다.올해 새해 벽두에도 새해 맞이 수중정화 활동이 있었다. 경자년 2020년 새해 첫날 아침. 여수세계박람회장 스카이타워 앞 해상에서 수중정화 행사가 열려 나는 일부러 그 행사에 참가했었다.당시 1월 1일 오전에 영하 6도의 차가운 날씨였다. 오전 10시부터 여수해양구조대 잠수대원 8명이 잠수를 했다. 여수세계박람회장 스카이타워 바다속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불가사리도 잡아 올렸다. 불가사리는 별도로 수거하여 글씨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
우두리 창작소에 가자면 구불거리는 농로를 얼마간 지나야 한다. 잘 아는 지인, 그녀의 집이다.농로를 따라 가다가 농로가 끝나는 막다른 지점에 이를 즈음, 짠!하고 펼쳐지는 푸른 바다. 눈부시게 푸르른 바다가 환영해 주니 눈이 먼저 시원해진다.눈 호강을 실컷 한 후에 바다와 나란한 길을 조금 올라가면 얕은 언덕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그녀의 집이 보인다.마당 왼편으로 세 그루의 향나무가 그 곳 집터의 세월을 말해 주고, 잔뜩 방향이 쏠린 모습을 한 채로 멋진 자태까지 뽐내고 있다. 마당의 중심으로는 돌담을 쌓아올려 흙을 채우고 윗 쪽으
얼핏, 멀리서 바라 본 정원은 평화 그 자체다. 그럼 평화로워 보이는 정원에서 어떤 일을 할까? 정원을 가꾸기 전 나는 땅 한 평 가꿔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었다. 그저 흙을 만지고 식물을 키우는 평화로운 일이라고만 생각했다.하지만 정원 일은 항상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어찌 보면 충격적인 작업의 연속이었다.우리 정원과 텃밭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렁이나 벌레가 유난히 많다. 무심코 호미질을 하다보면 반 토막 난 지렁이가 발견되기 일쑤다. 그 상태로 꾸물대는 지렁이를 보면 신음소리가 나오면서 몸서리가 처진다.가
남쪽 여수에는 지천에 피는 꽃이 동백이다. 서울 살 때만 해도 동백은 익숙한 꽃이 아니어서 실은 좋아하는 꽃에 속하진 않았다.하지만 이곳에서는 바다를 안고 피는 동백꽃이 마치 한 동네에 사는 이웃 사촌으로 다가온다. 자주 보니 친숙해지고, 친숙하니 동백이 더 좋아진다. 익숙한 입맛에 손길이 가는 것과 같이 저절로 동백에 시선이 향한다.‘동백, 흙으로 피어나다’ 도예전. 여수에서는 전시장에서도 동백이 자주 핀다. 여수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도예가 변정옥 작가를 만났다. 전시장을 들어서니 벽에 걸린 오브제와 전시된 작품들에서 변 작가의
월요일 출근길은 기쁜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사무실 일정을 마치고 이마트에서 장 보고 돌아오는 길, 주식창 앞에서 월요일의 긴장감에 몰입된 남편을 불러냈다.우두리로 향하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이라 한때의 향수가 담긴 햄버거 두 개를 사들고 자산공원 산책을 제안했다.햄버거는 인도와 중국에서 생활할 때 자주 먹었던 음식이다. 개성 강한 향신료가 뿌려진 두 나라의 음식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만국 공통 입맛인 햄버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붉은 연산홍이 만개한 자산공원 숲길에서는 멀리 돌산대교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선박,
언젠가 서울에 사는 친구가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정원에 놀러온 적 있다. 배낭을 멘 아이들은 큰 잠자리채를 손에 들고 있었다. 대문으로 들어선 남자아이들은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안 하고 고개를 숙이고 꽃밭의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대도시에서 자라는 남자아이들이 저렇게 꽃에 코를 박고 보고 았다니. 아이들은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줄 모르고 꽃을 보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알고보니 남자아이들은 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꽃 속의 ‘벌레’들을 보고 있었다.때는 꽃이 만발한 초여름이었는데 아이들은 꽃은 보지도
요즘 코로나로 힘들다. 난 정원에 오면 코로나 시름을 잊는다. 뭐~ 다른 것도 다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 무어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한 치 망설임 없이 ‘나무를 심는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여자로서 아내의 역할도 엄마의 역할도 썩 잘 수행하지 못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실천도 부족하지만 이를 크게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나무를 심기 때문이다.나무는 생명이다. 아름답고 유익한 생명이다. 고로 나는 아름답고 유익한 생명을 키우는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저절로’ 크
나는 좀 번거롭더라도 하루 날을 잡아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모두 꺼내 하나하나 구별해서 처리하는 편이다.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중고사이트에 사진을 찍어 내놓기도 하고, 판매가 되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한다.중고 물건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는 오래 전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면서부터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플리마켓 또는 게라지 세일이라 해서 햇볕 따뜻한 주말 사람들이 집옆 도로변 풀밭 위에 좌대를 펼쳐 놓고 쓰지 않는 물건을 팔곤 했다. 뉴질랜드 원주민을 ‘키위’라고 부르는데, 플리마켓에서는 이 키위 가족들 중 주로
겨우내 자태를 뽐내던 붉은 동백이,하얀 목련을 맞이하며 자신을 떨군다.오고 갈 ‘때’를 아는 동백의 모습이 아름답다.가려는 동백을 붙잡는 사람들의 손길,그것은 사랑이었다.
정원을 가꾸면서 가장 즐겨찾는 쇼핑 장소는 ‘철물점’이 됐다.철물점은 트랙터나 경운기 같은 대형 기계만 빼고 시골살림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다 판다. 호미나 삽, 괭이 같은 농기구 외에도 정원 관리에 필요한 전정기구, 심지어는 건축자재까지 있을 건 다 있다.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철물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래도 나올 때는 호미 하나라도 꼭 손에 들고 나온다.정원 이야기에 호미를 빼놓을 수 없다.호미는 참 원시적인 도구다. 호미만 손에 잡으면 항상 원시인으로 돌아간 듯 야릇하면서도 경이로운 느낌에 젖어 든다. 최첨단
몇 년 전 정원에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호랑가시나무는 빤질빤질하고 두꺼운 잎 끝자락에 세 갈래의 뾰족한 모양의 가시가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는지 이 년 정도 병에 시달렸고, 병에 걸린 나무에 응당 그러하듯이 그 나무에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병이 나아 예쁘고 앙증맞은 열매들이 맺혀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 나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삼 년째부터는 병도 다 나아 예쁜 열매들을 맺기 시작했다. 그런데 병에서 회복한 호랑가시나무를 자세히 보니 잎에 있었던 가시가 대부분 사라
우리 정원에는 감나무가 세 그루 있다. 척박한 땅이라 잘 자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그루가 제법 실하게 컸다. 감이 주렁주렁 열릴 것을 기대하고 해마다 기름진 퇴비를 듬뿍 주는 등 정성을 다했지만 감은 잘 열리지 않았다.어느 날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정원에 놀러 오셨기에 감나무에 감이 열리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그래? 감이 안 열린다고? 내가 좋은 방법을 알려주지. 나무한테 단단히 일러. 너 내년에도 감이 안 열리면 뽑아서 장날에 팔아버릴 거야! 그렇게 단단히 일러두면 내년엔 틀림없이 감이 열릴 거야.”어린애 같은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