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7일차는 쿠스코 인근 유적지를 방문하는 날이다. 전날 마추픽추를 등정하고 난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호텔에 남아 쉴 수는 없다(관련 기사 : 세상사가 시들해? 마추픽추에 가라). 일행이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마라스에 있는 살리네라스 염전으로, 쿠스코에서 서북쪽으로 약 58㎞ 떨어진 조그만 마을이다.마라스로 가는 길 주변에는 라마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한 시간여를 달린 버스가 염전 인근에 도착했다. 버스 차창 밖에 펼쳐진 풍경을 보니 우리네 산골짝에 있는 조그만 다랑이 밭들이 떠오른다. 마치
"세상사가 시들해지면 마추픽추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사정상 마추픽추를 못 가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대상이니까. 뿐만 아니다. 인간이 궁지에 몰렸을 때 해낼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차를 이용하거나 택시나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기차는 쿠스코의 산페드로 역에서 출발해 마추픽추 아랫마을인 아구아 깔리엔떼스가 종착역이다. 버스나 택시의 경우는 쿠스
남미 여행 5일차는 본격적으로 잉카문명을 들여다볼 수 있는 쿠스코에서 시작됐다. 아침 일찍 리마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공항에서 간단한 조식을 마친 일행은 쿠스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뿐히 하늘로 날아오른 비행기가 안데스산맥 상공을 나르자 만년설이 쌓인 산들이 보였다.저 아래 어딘가에 잉카인들의 고향 쿠스코가 있겠지 하며 상념에 잠겨있는 것도 잠시 "곧 쿠스코공항에 도착하니 안전벨트를 매라"는 멘트가 나왔다. 리마에서 쿠스코까지는 1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다. 시차 때문에 깊은 잠을 못
남미여행 4일째 일정은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우는 '나스카 유적' 방문이다. 전날 이카를 거쳐 험난한 안데스 산맥을 넘어 나스카 마을 호텔에 밤늦게 여장을 푼 일행은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호텔이라고 하지만 약사 출신 주인이 개인 집을 개조해 만든 민박집이다. 그래도 꽃과 새들을 기르고 시설을 갖춘 괜찮은 숙소다.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나스카 유적을 본다는 들뜬 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 민박집 앞을 나가니 담장에 나스카 유적을 그린 도형들이 그려져 있었다. 새, 원숭이, 거미 등과 같은 동물뿐만 아니라
페루여행을 떠나기 전 페루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이라곤 잉카제국과 마추픽추가 전부였다. 한국과 멀리 떨어진 페루는 가기 힘들지만 찬란한 잉카문명을 간직했던, 신비에 싸인 상상속 나라였다.그러나 페루 수도인 리마 시가지를 돌아보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 비록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운 도시지만 유럽 못지않은 아름다운 건축물과 역사가 존재했다. 어디를 가나 수천년 동안 현지인들이 갈고 닦으며 세운 우주가 존재했다. 그들이 세운 우주는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LA공항에서 랜덤체크를 당해 일행보다 하루 늦게 페루 리마행 비행기를 탄 필자의 비행기가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배낭을 걸머진 관광객이라고 여겨서일까, 입국신고서만 받고 바로 통과다.페루!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겠다고 다짐했던 나라다. 안데스산맥, 사막, 정글, 잉카유적, 식민지시대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특히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와 잉카인들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마추픽추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아닌가?공항 직원이 안내해준 택시를 타고 일행이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호텔로 향
남미여행 둘째 날 일행이 통과해야 할 곳은 LA공항이다. 인천공항을 거쳐 17시 5분 도쿄나리타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다음날 오전 9시 50분에 LA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은 후 페루 리마행 환승수속을 밟기 위해 서둘러 입국심사대에 섰다.입국심사대에서 뭔가 질문하는 모습을 본 K여사가 불안해 하며 "나는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데 어떡해요?"라며 도와달라는 눈치다. 그녀가 불안해 하는 건 당연하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티켓을 나눠주던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그녀가 LA공항에서 랜덤체크 대상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랜덤체크(ran
11월 9일 새벽 4시 반, 사위 승용차를 타고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하니 동행할 분들이 보인다. 티켓을 가져온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공항서점에서 심카드 상담을 나눈 후 나리타행 비행기를 탔다.혹시 모를 도난에 대비해 여권은 복사했지만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해놓으라는 가이드 말이 생각났다.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들고 여권 사진을 촬영하려고 했지만 자꾸 미끄러져 내리고 초점이 맞지 않는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있었는데 옆 좌석에 앉은 여성이 "도와드릴까요?" 하며 여권을 잡아줬다. 여인의 도움으로 사진 촬영을 마
프롤로그푸른 초원, 그 초원을 달리는 말의 무리, 끝없이 펼쳐질 모래사막과 낙타무리, 폭포수처럼 쏟아질 밤하늘의 별, 중앙아시의 비단길......몽골여행을 앞두고 떠오르는 이런 단어들로 몹시 설렜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는 좀 더 다른 곳에 있었다. 평소 우리 고대사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우리 민족의 근원이라는 알타이에서 그 흔적을 확인하고 싶었다.여행을 떠나기 전 읽었던 몇 권의 책들은 민족 시원의 흔적을 이야기 하고 있었고, 나 또한 고무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이 없는 것은
시월 삼일 새벽 네시, 함백산 1100고지의 공기는 더없이 깊고 상쾌하였다. 나는 리조트 현관문을 열고나와 동쪽으로 나있는 건물의 끝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무리지어 어디론가 흘러가는 듯하였다. 이토록 많은 새벽별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어제(2일) 오전 8시경, 여수569회 회원 17명은 여수에서 태백행 대절버스에 올랐다. 여수569회는 여수에 거주하는 56년생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단체이다. 56년생들은 6.25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태어나 격변기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경제발
7년 전 필자는 여수에 사는 결혼이주민여성과 외국인노동자를 돕는 여수이주민센터 이사로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필자의 앞에 몽골에서 시집왔다는 델게르마가 나타났다.따뜻한 미소와 친절한 태도가 좋아 여수에 사는 결혼이주민 여성들을 위한 개별상담역을 맡기고 아시안마켓을 운영하라고 했다. 여수이주민센터에서는 이들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상담실을 운영하고 출신국가별 식재료를 수입해 팔고 있었다. 2018년 9월 현재, 여수에는 16개 국가에서 온 결혼이주민여성 1200여 명이 살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들까지 포함하면 외국인이 6300여 명이
㈜한화 여수사업장(사업장장 최병오)이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지역 학생들과 중국 만주 독립운동유적지 및 백두산 일대의 우리역사 현장을 둘러보는 해외역사캠프를 실시했다.이번 해외역사캠프는 작년 ‘해외 우리역사 바로알기 캠페인’에 이은 두번째 프로그램이다. 공개모집한 지역 중학생 18명과 한화 여수사업장 자원봉사자, 여수YMCA 지도교사 등 22명이 참여하였다.먼저 학생들은 수많은 애국지사가 투옥되었던 중국 대련의 여순감옥과 안중근의사 재판장소인 관동법원을 찾아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깨달았다. 21일에
* 이 기사는 와 동시게재 기사입니다. 몽골알타이 답사단이 12일(6.17~6.28) 동안 몽골서부를 여행할 동안 일행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분이 있었다. 항상 미소를 머금고 답사단과 몽골 운전사 중간에서 통역과 궃은 일을 도맡아하던 사람. 달리던 차가 사막 한가운데서 펑크가 나 일행이 막막해하면 "몽골은 원래 그런 곳이니 이해해주세요"라며 한국 답사단을 달랬다."아무것도 볼 게 없는데 거기를 왜 가느냐?"고 항의하는 몽골 운전사들한테는 "너희 나라를 이해하려고 여기까지
* 이 기사는 와 동시게재 기사입니다. 34명의 몽골답사단과 함께 6월 17일부터 28일까지 다녀온 여행기 연재 중입니다. 몽골알타이 답사단 일행의 마지막 일정은 울란바토르 관광이다. 일행은 수흐바타르 광장을 거쳐 복드한 궁전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간당사를 거쳐 이태준 기념관으로 갔다.몽골인들이 신인(神人) 대하듯 했던 이태준은 누구? 이태준은 1883년 11월 21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1149번지에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반식민지 상태가 되고 다음해 부인을 잃자 상경해
* 이 기사는 와 동시게재 기사입니다. 34명의 몽골답사단과 함께 6월 17일부터 28일까지 다녀온 여행기 연재 중입니다. 몽골여행을 떠나기 전 몽골에 대한 상상을 꿈꿨다. 꿈 목록이다. 한가로이 풀 뜯는 양떼를 따라 준마를 타고 대초원을 노닐기.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보드카를 마시다 게르에 들어가 멋진 꿈을 꾸기.예의바른 유목민 게르를 찾아가 맘씨 좋은 주인장으로부터 마유주를 마신 후 기분 내키면 밀가루 같이 고운 사막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며 가 되어 보기. 운 좋으면 나담축제에
* 이 기사는 와 동시게재 기사입니다. 몽골알타이 답사단 일행이 끝없는 대초원과 사막으로 이어지는 몽골지형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몽골인들이 성산으로 여기는 알타이산 답사에 나섰다. 알타이시에서 숙박을 하고 목표를 향해 차량 6대가 지나는 길은 상상을 불허했다.초원을 달리다 길가에 만들어진 적석총을 조사하기도 하고 경치를 구경하기도 했지만 까딱 잘못했다간 계곡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급경사 길을 오르내리기도 했다.울퉁불퉁 패인 계곡이 길을 막아 뒤돌아가기도 하고 우회하기도 하며 목적지 가
* 이 기사는 와 동시게재 기사입니다."우리나라에는 고인돌과 적석총 무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 적석총 무덤이 군집을 이뤘던 환인 지역은 수몰되었지만 집안 부근에는 아직도 거대한 고구려 적석총 무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서울 석촌동에도 아직 백제의 적석총이 다수 남아 있어요. 이와 같은 적석총을 보고 있노라면 한민족의 시원과 관련하여 돌무지 무덤의 유래가 매우 궁금합니다. 나아가 수백 개의 적석총 피라미드가 중국 북부와 몽골 지역에 산재한다는 기사를 보고 몽골알타이 답사에 나섰습니다."34명의 몽골 알타이 답
* 이 기사는 와 동시게재 기사입니다. 34명의 몽골답사단과 함께 6월 17일부터 28일까지 다녀온 여행기 연재 중입니다. 알타이 답사단 일행이 몽골군이 서역을 정벌하러 떠났던 초원길을 따라 가며 많은 적석총을 관찰하고 울리아스타이시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 간신히 잡은 호텔로 들어가 시설을 살펴보니 70년대 한국 여관 같은 느낌이 들었다.호텔이 많이 있으면 골라서 들어갈 텐데 하나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간신히 졸졸 나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알람시간보다 내 몸시계가 더 정확하다. 다음
[여행기 소개글]오문수 기자는 몽골알타이 답사단의 일원으로 12일간(6.17~6.28) 사막과 초원의 바다를 건너 거친 대자연이 어우러진 땅 몽골을 다녀왔다. 척박하고 불편한 땅에 살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유목민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해 3000㎞ 이상의 긴 여정을 함께한 34명의 답사단 이야기를 연재중이다. 5번째 글이다. 몽골알타이 답사단이 하루에 300㎞를 달려 밤늦게 초원에 텐트를 치거나 게르, 70년대 한국여관 비슷한 호텔에서 쪽잠을 자며 몽골서부 알타이 지역을
[여행기 편집자 소개글]오문수 기자는 몽골알타이 답사단 일행으로 12일간 (6.17~6.28) 일정을 마치고 왔다. 사막과 초원의 바다를 건너 거친 대자연이 어우러진 땅 몽골! 척박하고 불편한 땅에 살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유목민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해 3000㎞ 이상의 긴 여정을 함께한 34명의 답사단 이야기 네번째다 몽골알타이 답사단 34명이 4륜 구동차를 타고 몽골서부를 탐방하면서 느낀 건 너무나 광대한 초원과 사막이 여러 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한국에 미세먼지를 보내는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