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노동운동의 역사
상태바
여수 노동운동의 역사
  • 천중근
  • 승인 2016.06.11 1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전라남도의원, 꿈과 노동문제연구소장, 그리고 노동운동의 선봉에서 활동해온 경력을 바탕으로 필자가 지난 10일  청소년 수련관에서 6월민주항쟁 여수기념식과 함께 열리는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필자의 발표 내용을 <30인 칼럼>으로 싣는다.

◎ 여수노동운동의 자취

여수는 호남정유노동조합 현 gs칼텍스노조가 71년 3월에 설립 45년이 되었고 이어서 남해화학, 호남에틸렌(대림),호남석유가 80년에 만들어 36년 역사를 가졌고 이후에 87년 한화,금호석유,삼남석유등 기타 조직이 그리고 90년도에 LG석유등이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전 조합이 한국노총 사업장으로 있다가 전노협으로 출발한 민주노총이 태생되어 여수에서는 1997년 LG화학을 필두로 여수 산단 대부분 조직이 민주노총으로 조직 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 89년 대림산업 퇴직금누진제쟁취 파업투쟁승리
투쟁 역사는 87년 민주화 대투쟁 때 울산,마창,경인지구의 투쟁에 편승해서 각 노동조합이 설립되었으며 여수도 기타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첫 싸움이 87년 호남에틸렌이 당시 민간기업으로는 세전 순이익으로 1위기업이었던 바, 대림산업으로 합병되는 과정을 막기 위해 당시 대의원장을 맡으면서 집행부를 견인해 합병반대투쟁으로 20여일 철야농성 등으로 힘 있게 투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위원장이 쓰러지면서 합병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때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89년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바로 투쟁으로 전환해 전두환 정권 때 빼앗겼던 퇴직금 누진제 쟁취, 임금 23%,성과급 500%등 여러 가지 노동조건개선등의 공약사항100% 달성이라는 쾌거를 올리면서 전국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로 인해 당 해년도 대한민국 전국 임금 결정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게 된 여수 산단의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89년 당시 현대중공업 육해공작전으로 진압 ,서울지하철파업 무력화 ,현대 식칼테러 등으로 노태우 정권의 공권력과 자본에 밀려 노동운동이 위축되던 때 반전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 여수건설노동조합설립과 투쟁 구속자9명 발생
거기에 연동되어 여수 건설 노조의 태동과 함께 투쟁으로 9명의 구속자가 발생하여 건설 노동조합의 근간이 이루어졌으며 그 불씨가 퍼져 오늘의 여수 건설노동조합이 전국 최고의 투쟁조직으로 되게 된 교두보가 된 것입니다.

 

◎ 대림산업 세계최초 장치산업 에틸렌 가동정지 투쟁승리

이어서 1991년 사명이 바뀌어진 대림산업노동조합의 총파업으로 세계 최초로 석유화학에틸렌 공장 가동 정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완벽한 노동자의 단결로 승리를 장식하였습니다.

 

◎ 여수 산단 노동자연합회(여산노련) 출범

여수에서 노동자 학습 동아리의 필요성이 거론되어 당시 대림 조합간부들이 주축으로 민주노총 주축 세력인 NL계의 전국회의 산하조직으로 2001년 4월30일 여수 산단 노동자연합회(여산노련)가 만들어져 많은 지역 노동 활동가를 양상 하게 되었습니다

 

◎ 민주노총 동부협과 여지부출범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 만들면서 여수순천 광양지구인 동부협이 출범했으며 수년 활동 후 동부협 3개시에서 각각 시 지부가 탄생되어 여수시 지부가 출범하게 되었으며 원년에 제가 준비의장으로 선출되어 2년간 활동 하다가 2007년 직선제로 민주노총 여수시 지부로 출범 활동 하게 되었습니다

 

◎ 2000년 대림과 한화 합병에 따른 여천NCC 투쟁승리

이 후 몇 차례 더한 대림투쟁과 금호 피엔비,한국화인 케미칼,삼남,한국바스프,한화석유화학투쟁 등으로 여수 산단이 국가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고 1999년12월말에 대림과 한화석유화학이 자본에 의거 강제로 합병당하면서 여천 ncc가 생기면서 2000년 총파업투쟁으로 승리

 

◎ 2001년 여천NCC 5000 공권력과의 투쟁

2001년에 코오롱 구조조정투쟁 및 울산 효성과 태광이 깨지면서 결국 여수산단까지 당시 안기부 주축인 공안당국이 사전조율로 경총, 전경련, 여수시장, 도지사 까지 개입하여 여수 노동운동의 중심세력인 저희 조직을 불법으로 몰아 공권력을 투입시켜 진압등으로 무력화시켰습니다.

공권력은 농동운동의 불씨와 싹을 제거키 위해 짜여진 각본에 의거 사전에 약속된 합의사항 불이행을 유발하여 합의사항 불이행에 따른 2001년 총파업을 하게 되었고, 결국 동력부 파업중지명령으로 불법파업으로 만들었고,  5000여 조합원이 공권력과의 38일간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총과 전경련까지 가세한 두 자본의 이해타산과 여수산단의 공투본과 건설노동조합의 엄호지지와 노학 연대로 인한 남총련 결합등과 여천 ncc조합원들의 죽기를 각오하고 c4 LPG로 화염방사기까지 만들어서 투쟁하면서 공권력 투입 날 새벽에 그들을 막아 내면서 모범을 만들었습니다.

두 그룹중 하나인 대림 이준용회장이 파업현장에 내려와 전 조합원들 모인 앞에서 잘못했다고 머리 숙여 읍소 사죄하면서 일단락 되었지만, 천중근외 2명이 구속수감과 오랜 법정싸움을 하던 중 발전과 전기를 생산한 동력부분은 쟁의대상이 아니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로 2006년 해고를 당했습니다.

2001년 NCC 위원장 시절 구속되는 필자

◎ 발전노조경찰서 타격투쟁

그 후 민영화 반대를 위해 투쟁했던 여수화력과 호남화력을 중심으로 한 발전노조 지지엄호 과정에서 발전노조사택에서의 용역깡패들을 잡아내는 과정에 공권력과의 싸움이 전개되어 구속되는 지도부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서 타격투쟁 등으로 위상을 세웠습니다.

 

◎ LG정유 (GS칼텍스) 지역발전기금 투쟁

이어서 정부와 공안당국까지 개입하여 총체적으로 여수 산단의 노동운동을 말살시키려는 음모가 있었습니다. 결국 2005년 지역 발전기금이라는 지역민을 위한 의미있는 투쟁을 LG정유 (GS칼텍스) 투쟁에 대해 '정유사는 국가 기간산업 이다'고 불법으로 몰아 공권력으로 제압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삼남과 한국 바스프가 연대투쟁을 전개했지만 LG화학을 비롯한 공공투쟁을 약속한 다른 조직들이 연대하고 합세치 않고 독자적으로 교섭을 끝내는 바람에 정유노조가 열심히 투쟁했으나 득이 없었습니다. 전술전략의 미비와 이미 기 약속된 공투본의 총파업 연대와 단결구도가 깨졌는데, 자본이 작업을 해서 개별사업장 이해타산과 단사 위원장들의 약속불이행으로 연대전선이 무너지고 깨지면서 처절하게 투쟁하고 싸우면서도 패배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민주노총 탈퇴 종용 및 깃발과 투쟁조끼등을 땅에 묻는 행위, 또한 투쟁일선에 썼던 지도부들 권고사직과 강제해고로 30여명이 넘는 이들이 옷을 벋게 되었고, 이는 수 년 동안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동지들의 한을 안고 지역의 노동운동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 단초가 되었지만 해복투를 중심으로 복직투쟁과 정치적 움직임들이 활발하게 전개하게 됩니다.

 

◎ 2006년 화학섬유 산별노조건설

그 싸움을 반면교사로 삼아 화섬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큰 명제를 가지고 여수 석유화학을 대 산별로 묶어서 가려고 했으나 이 것 조차도 일부 세력들의 개인주의와 이해타산으로 인해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2006년 다시 여천 NCC가 GS칼텍스 파업이후 무너진 여수산단의 모범을 보이고 이기는 싸움을 하려고 투쟁을 해서 약 34일간 간부파업 포함 전면파업으로 사측과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 위원장이 해고 당하는 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싸움으로 인해 여천NCC조직은 화섬 산별로 조직전환을 하였으나 기타 큰 조직들이 기업별 노조로 안주하였고, 구러한 상황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상부단체가 없는 연합노조등으로 민주노총에서 화학섬유연맹과의 갈등으로 제명 되기에 이르렀고, 필자의 판단으로는 오늘의 유명무실한 사분오열의 조직 형태를 이루게 되어 힘을 잃는 통한의 종이호랑이 지역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 코오롱노동조합설립에 따른 코오롱자본과의 180일 투쟁

코오롱 조합이 설립되면서 코오롱 자본과의 6개월(180일)이 넘는 투쟁을 통해 끈질긴 싸움을 하였고, 어려움 속에 가슴으로 얻어지는 모범을 만들면서 승리한 코오롱 여수 지회 투쟁등이 희망을 만드는 끈이 되고 있습니다.

 

◎ 쇠퇴해 져간 석유화학 노동운동

명실공히 장치산업이 갖는 특성으로 미사일 같은 힘을 보유한 대한민국 최고의 투쟁과 싸움터의 장이 이제는 아 옜날이여~하는 추억만 되뇌기는 현장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2002년과 2005년의 화물연대투쟁, 20007년 예선노조의 해상봉쇄투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있는 조직으로 자리매김 된 건설 노동조합의 1만5000여 조직의 투쟁과 힘이 지역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 안전, 환경등의 문제 및 지방세등의 산단지역사회 공헌문제 대두

유해와 발암물질등의 환경,폭발 및 유독가스등의 안전사고 위험 등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산당은 광주 전남 전체 무역동향 75%를 점유하고 있고, 세계석유화학 5위라는 년100조에 달하는 매출과 수조에 달한 유류세와 법인세 등의 막대한 국세를 부담합니다. 이에 일부라도 지역발전과 함께 하여야 하는 지방세로 이관되어야 하는 문제, 비정규직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마련,  낮은 지역사회공헌문제가 우리 여수국가산단의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 비정규직과 지역사회에 함께하는 연대운동으로 전개 필요

이제 비정규직과 정규직들의 노동조건이 현저히 다른 데에 따른 정규직 그들만의 노동조건 개선등의 배부른 투쟁으로 관재 언론과 지역사회에 왜곡 호도되어 비춰진 것이 문제입니다. 국민과 시민들과의 격리와 지지를 받지 못한 이것 역시 문제이기에 건설노동자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조건 개선과 복리증진,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내용을 단협등에 명시하여 각 단사들이 임 단협 때 세전 순이익이나 매출액 대비 어느 정도를 지역발전기금 조성으로 제시하고 연대와 단결로 쟁취하면 시민들의 박수를 받는 노동운동이 될 것 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