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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이름 불러준 적 없었는데, 여긴 달라요"

학생 대부분이 육지에서 유학, 금오도 여남중고등학교

  • 입력 2016.06.13 17:28
  • 수정 2016.06.19 16:06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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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남중고등학교 모습. 따뜻한 남해안이라 천연잔디가 잘 자라 학생들은 마음놓고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다.
ⓒ 오문수

 

섬사람들은 요즈음 죄지은 사람처럼 괴롭다. 최근 한 섬마을의 학부모·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무환경이 열악한 가운데서도 섬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쳐주는 교사와 유대관계가 좋은 게 대부분인데, 미꾸라지 몇 마리가 맑은 물을 흐려놓았기 때문이다.

교사출신인 내게도 여교사의 신변안전은 관심거리다. 며칠 전(8일) '다문화이해' 강의를 하기 위해 여남중고등학교를 방문해 교장(정규문)을 만나자 마자 던진 첫마디다.

"여남중고등학교에서는 여교사와 여학생이 안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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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남중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다문화강의 중인 필자와 학생들
ⓒ 오문수

 

 

필자는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을 돕는 여수이주민센터 이사이자 전남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전라남도 초중학생들에게 '다문화이해' 강의를 한다. 하여 교장선생님께 "공부에 부담 없는 시간을 내주시면 학생들을 위해 다문화이해 강의를 하겠다"고 자청했다.

여수에서 20㎞ 떨어진 여남중고등학교는 금오도 중심인 우학리에 있다. 금오도는 천혜의 아름다운 바다와 멋진 산이 어울려 관광객들이 50만명이나 찾아온다. 아기자기한 섬에는 옛날 섬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많아 <인어공주> <도희야> 등 5개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코뿔소처럼 생긴 금오도의 움푹 들어간 포구에 자리한 여남중고등학교 100미터 이내에는 파출소, 우체국, 보건소, 면사무소와 110년의 전통을 가진 우학리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없는 건 노래방과 PC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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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가 끝난 후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불켜진 교실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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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남중고등학교 식당 모습
ⓒ 오문수

 

1966년에 개교해 중학교 6127명, 고등학교 1324명을 배출한 여남중고등학교에는 섬출신 중학생 18명과 77명의 고등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그 중 연도 출신 중학생 3명과 고등학생 77명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거의 모든 교사들이 관사에 기거하고 학생과 24시간 동행하기 때문에 전교생 이름을 다 외우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학교다.   

섬 주민들이 섬을 떠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교육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떠나가는 섬은 일반화된 상식이다. 하지만 여남고등학교는 도회지 학생이 섬에 유학 와 공부하고 있다. 1학년 28명 중 5명만 섬 출신이고 나머지 대부분 학생은 여수시내에서 유학 왔다. 2·3학년 학생 상황도 마찬가지다.

저녁을 먹은 후 강의 시작 전 교장과 함께 학생들이 자는 기숙사와 여교사들이 기거하는 관사를 둘러보았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섬의 관사와는 전혀 딴판이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학생기숙사는 대학교 기숙사와 비슷한 시설을 갖췄다.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여남초등학교 교사들까지 이곳 관사에 거주하는 현장을 둘러보다 "아! 이곳은 섬이 아니라 여남타운이네!"라는 탄성을 질렀다.

교실을 비롯한 교육부대시설을 제외하고 학생 기숙사 6동, 교사용 관사 8동에 111명의 주민이 사는 셈이다. "여교사 성폭력 문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한 정규문 교장이 교사현황에 대해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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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남중고등학교 정규문 교장 모습. 오랜기간 전문직과 교감을 거쳐 올초 공모교장으로 부임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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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니스장 뒷면의 여교사용 관사 모습. 학생 기숙사 6동, 교사용 관사 8동에 학생 80명이 기거해 작은 타운이라고 할 만큼 규모있는 학교다. 학생 80명에 인근 여남초등학교 교사 포함 31명의 교직원이 함께 기거해 성폭력문제는 꿈도 못 꿀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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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학생 80명에 초등학교 교사 포함 31명의 교직원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여수관내에 근무하는 수업선도교사가 8명 있는데 여남중고등학교에 3명이 근무하고, 수업실천교사는 14명이나 됩니다. 교사의 질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죠"

우수교사와 교육하기 좋은 환경 때문일까? 서울 명문대학교에도 진학하고 광주교대에 매년 2명씩 진학하기 때문인지 멀리 인천과 평택에서 왔다는 학생들을 만나 섬으로 유학 온 연유를 들었다. 금오도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기도 평택에서 유학 온 임지선(고1) 양의 얘기다.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할머니 친구가 소개해서 왔어요. 할머니 따라 처음 왔을 때 엄청 좋았어요. 밖에 나가 놀 게 없으니까 공부할 환경이 돼요. 친구들이 착하고 좋아요.

도시에 있을 때는 친구들과 카페에 가거나 친구들과 수다 떨고 놀았는데 섬에 와서 힐링도 되고 혼자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평택에 있을 때는 전혀 공부하지 않았는데 성적이 엄청 올랐어요. 초중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이 제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었는데 이름을 불러주니 좋아요. 가장 불만인 것은 군것질, 특히 치킨을 못 먹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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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 일어난 학생들이 체조 후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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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 아이들은 내적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가족과 종종 충돌한다. 인천에서 이곳으로 유학 온 김수연(고1)양의 아빠는 여남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수연이는 부모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아빠의 모교를 택했다. 지선이와 수연이는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여남중학교에 전학 와 우학리에 방을 얻어 같이 생활한 절친한 친구사이다. 수연이가 입을 열었다.

"가족과 충돌이 생기고 그래서 제가 먼저 보내달라고 요청했어요. 봄방학이나 휴가기간에 집에 가면 애틋한 감정 때문인지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스런 한 가족이 됐어요. 처음에는 학원도 없고 과외해줄 사람도 없어 적응이 안됐어요. 인천에서는 학원공부만 했거든요.

되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가 가르쳐주고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걸 따라하다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했어요."

여남중고등학교는 수업이 있는 주중에 핸드폰을 수거한다. 금요일 오후에 집에 갔다 일요일 오후에 학교기숙사로 되돌아오면 담임교사가 핸드폰을 수거한다. 이 정책은 학생 학부모 교사와 협의해 이루어진 룰이다. 물론 학교에는 학생들이 언제든지 사용가능한 공중전화 부스가 있다. 정규문 교장이 핸드폰 없는 학생들이 겪는 부적응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신입생들이 3월초에 입학하면 핸드폰 없고, 부모와 떨어져 있어본 경험이 없어 적응을 못해 아픈 학생이 나오기도 합니다. 노래방 PC방이 없으니 힘들어하지만 곧 적응을 합니다. 학부모들한테 주말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공부하라며 다그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공부는 학교 공부만으로 충분하니까 놀게 하라고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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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남중고등학교 정문에서 5미터만 가면 남해바다이다. 밤에 바라보는 학교앞 바다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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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장 김용민군이 핸드폰 없는 생활의 장점을 말했다.

"섬에 있는 동안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대화 시간이 늘어나고, 학교폭력이나 집단따돌림도 전혀 없습니다."

교장선생님과 함께 1박을 한 후 비렁길 4코스를 돌기 위해 학교를 나오다 김유리 학생을 만났다. 김유리 학생은 여수 돌산 군내리 출신으로 여수시내 학교와  여남중고등학교의 중간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군내리는 돌산이지만 돌산대교가 있어 여수시내 학교로 진학하는 게 교통은 훨씬 편리하다. 전교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하고 있는 김양에게 여남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유를 들었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 여수시내로 갈까 아니면 여남고등학교로 갈까 고민했었어요. 여수시내에서 경쟁할 자신이 없었는데 이곳으로 오길 잘했어요. 자신감이 생기니까 탄력이 붙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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