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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로를 봉쇄하는 전략적인 섬 연평도 우도

서해5도가 아니라 서해 6도

  • 입력 2016.06.25 12:06
  • 수정 2016.06.25 13:59
  • 기자명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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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서 바라본 북한쪽 바다

서해5도 하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인데 5개 섬중에서 백령도와 연평도 외에는 거의 잘 알지 못한다. 북한과 인접해 있는 이곳은 연평도의 부속섬인 소연편도가 있는데 민간인들이 살지 않는 우도는 서해5도에 넣고 소연평도는 그만 빠지고 말았다.

소연평도와 함께 해서 서해6도라고 불렀으면 좋을 뻔 했는데 아마도 그 당시에 착오가 있는 것 같다. 서해 5도의 다섯 번째 섬은 우도이다. 모퉁이 우(隅)자를 써서 우도인데 이 섬은 물이 빠지면 북한과 갯벌로 연결되어 예전에는 이곳으로 북한 군인들이 종종 귀순을 하는 통로로 이용되었다.

지난 2011년 6월 15일 북한 주민 9명이 우도 해상을 통해 남한으로 귀순을 하였다. 우도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제주도 섬속의 섬인 우도를 연상한다. 그러나 제주도의 우도와는 100% 콘셉트가 다른 우도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 이 우도가 얼마나 중요한 섬인가 살펴보자

연평 우도 방문의 꿈

우도 방문객들

연평도 선착장에서 보면 동쪽에 멀리 보이는 섬이 하나 있는데 서해 5도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우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민간인은 한 사람도 없고 군인들만 근무한다는 저 우도를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만 먹었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지는 나도 몰랐다.

우도를 방문하고 싶은 이유는 우도는 서해 5도 해역에서 전략적 가치가 대단한 섬이기 때문이었다. 백령도는 인천에서 228km이지만 북한 장산과는 12km이다. 연평도 북한의 부포리가 불과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우도는 연평도와 25km, 강화의 말도와는 1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우도는 연평도와 강화도 말도와의 중간에 위치하여 북한의 수로를 봉쇄하면서 우리 군함들이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서해 5도와 그 해역은 영토적 가치와 전략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중요한 섬들이다.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인천 앞 바다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북한의 코앞인 서남쪽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서해5도는 북한의 군사적인 활동 면밀히 감찰하고 북한의 모든 군사 동향을 샅샅이 드려다 보기 때문에 북한쪽에서 보면 어쩌면 서해5도는 목에 걸린 가시 노릇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서해5도는 요세중에 요세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도 방문

이렇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섬을 지난 6월 초에 방문하여 해군과 해병대 장병들을 만날 볼 수 있었다. 인천에서 공기부양정을 타고 조윤길 옹진군수를 비롯하여 옹진군 통합방위협의회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는 행운을 누렸다.

방문의 목적은 국방의 임무에 충실한 군 장병의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이날 방문은 우도 부대장의 브리핑과 초소들을 견학하면서 분단된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도에는 해군의 레이더 기지가 있고, 해병들은 산꼭대기에서 경계 근무를 선다. 우도 정상 곳곳에는 발칸포가 설치돼 있다. 해병은 산꼭대기에서 북한을 바라보면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비도 바로 앞에는 중국어선 10여척이 불법 조업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우도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북한의 곳은 함박도이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의 특성상 썰물 때가 되면 이곳에서 함박도 사이에는 거대한 갯벌 지대로 변한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연평도 오른편 바다의 텅 빈 공간에 이곳은 우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도 곳곳을 돌아보고 식당으로 와서 같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옹진군은 200명분의 짜장면을 즉석조리해 배식하고 튀김 닭과 피자, 과일, 음료수 등을 군 장병들에게 제공했다. 다과회가 끝나고 난 다음 아이돌 가수들의 위문 공연이 있었다.

우도가 군사가 된 시기

해병이 처음으로 우도에 들어가게 된 시기는 1952년 한국 전쟁 중이었다. 당시에는 해병대는 소대 규모로 주둔하였지만 점차 늘어나 이제는 2개 중대 규모가 됐다.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의 해군은 전무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 군대가 서해의 모든 섬을 점령하였지만 한국 군대가 북한군과 휴전 후에도 상호 충돌할 가능성을 염려해 북한에 가까운 섬들을 내 주고 말았다. 그 당시의 대표적인 북한 섬은 평안북도의 가도와 신미도, 남포항과 마주 보이는 초도, 석도, 황해도의 기린도, 순위도, 화도 등을 북한에 내 주었다. 이 시기에 무인도였던 우도가 전략적인 중요성 때문에 군인들이 거주하면서 차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유배지 같은 섬 우도

‘우도 중대’는 연평도 해병부대가 관리하는데 해군들도 같이 근무한다. 연평도는 근무 조건이 그런 대로 괜찮지만 우도 근무는 가장 군인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하는 곳이다. 우도에 한번 배치를 받으면 좀처럼 전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60-1970년대에 연평도 해병들 중에 문제를 일으키면 ‘우도 중대’ 로 보내지기도 했다고 한다. 우도 중대로 근무를 명령 받은 해병들은 멀리 유배지로 보내지는 것처럼 펑펑 울었다고 한다. 지금은 연평 해병부대에서 원칙에 따라 우도 중대에 파견을 하지만 옛날처럼 벌칙으로 가지는 않는다.

해병들이 우도를 꺼려하는 이유는 우도와 연평도는 똑같은 섬이지만 차이가 많이 난다. 연평도 해병은 일요일이 되면 민가가 내려가 차도 마시고 사람들과 접촉을 할 수 있고 면회도 온다. 하지만 우도에는 1년 365일 동안 민간인을 볼 수 없다.

우도가 오랜 세월 동안 모로도(毛老島)로 불렸다는 것이다. 모로도 라는 뜻은 한 번 우도에 들어가면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나올 수 없다는 뜻으로 이 같은 별명이 붙었다. 우도는 물도 없기 때문에 바닷물을 담수화 하여 사용하고, 부식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해군 군함에 실려서 들어오는데 악천후나 바람과 파도가 거친 겨울에는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도에 천주교회와 사찰

우도 천주교회

우도 섬을 한 바퀴 도는 데는 1시간이 충분하다. 우도 부대장의 인도로 우도 초소를 돌아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도 선착장 우측 정상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있는 천주교회와 그 옆으로 돌아가면 절이 하나 있다.

지금은 모두 폐쇄 되었지만 건물은 군인 막사와 똑같은 구조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나라 곳곳 어디에나 교회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 교회는 처음부터 없었고 천주교회와 절이 먼저 선점하여 종교 활동을 벌였는데 아마도 군인들의 숫자가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았다.

앞으로 교회가 들어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도는 민간인도 없는 제한된 공간에서 너무 외로운 섬이다보니 군인들이 자칫하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일요일이 되면 교회와 사찰은 없지만 기독교 군인들, 불교도 군인들이 그룹별로 방에 모여서 종교 활동을 하는데 이런 종교 활동이 정신을 건강하게 하고 우울증에 빠지지 않게 마음에 위로와 도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우도를 떠나면서

우도에 선 이재언 연구원

해병대 하면 동료애가 떠오를 정도로 의리가 있다. 고립감이 오히려 우도 해병들을 결속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도 중대를 거쳐 간 군인들은 한결같이 가족 같은 분위기를 체험하면서 그 힘을 바탕으로 사회로 진출하였을 것이다. 힘이 들 때마다 이런 환경을 견디지 못하면 사회에 나가서도 낙오자가 될 것이다. 우도는 인생을 공부하는데 좋은 스승으로 삼으면 반드시 승리의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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