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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구로구청 폭력진압, 난 지금도 아프다

  • 입력 2016.07.09 08:16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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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관련 사진
ⓒ 영화 <돌 속에 갇힌 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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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돌 속에 갇힌 말> 캡처

 

오늘 아침에야 조해정 전도사(성남열린교회)와 어렵사리 통화가 됐다. 87년 구로구청사건을 참여하며 겪은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구로구청사건은 대선 투표가 한창인 12월 16일 오전 11시 20분경 구로선관위 직원들이 부재자 우편투표함을 옮기던 중 한 시민이 "부정투표함이다"라고 외치면서 시작됐다. 순식간에 많은 시민이 몰려들어 그 투표함을 사수하며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경찰은 농성 사흘째인 18일 새벽 백골단과 헬기까지 동원해 무자비한 진압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천여 명이 연행됐고, 이 중 105명이 구속당했다.

당시 조 전도사는 기여민(기독여민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구로구청에서 부정투표함이 발견됐으니 그곳을 사수하라"는 기여민 지도부 언니들의 지시를 받고 참여했단다. 함께 참여한 기여민 회원은 농성장에서 만난 다른 1명 밖에 모른다고 했다. 서로 연락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고 농성자가 한때 수만 명에 이르기도 해서 서로 만나지 못하면 참여 여부를 알 수 없었다.

조 전도사와 동료는 사흘간 농성장을 지키며 줄곧 함께 있었다. 18일 새벽, 경찰은 전기를 끊고 소방호수로 물을 퍼붓고는 최루탄과 일명 '지랄탄'을 난사하며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조 전도사는 쇠파이프에 왼쪽 갈비뼈를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다.

백골단은 농성자들을 마치 전쟁포로처럼 꿇어 앉히고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때 양김의 단일화를 요구하며 삭발한 홍대의 한 여학생이 "욕 좀 그만하라"고 했다가 작신 두들겨 맞았다. 한 아주머니가 "난 장사하러왔지 농성자가 아니라"고 하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때려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연행돼 밖으로 나갈 땐 "이런 년들은 애낳으면 안 된다, 빨갱이 새끼를 낳을 거니까"라며 백골단이 모두의 배를 쳤다.

그렇게 연행돼 성동 경찰서에서 구류를 살다가 단순 가담자로 분류돼 풀려났다. 조사한 형사가 "구호를 외쳤는지 노래를 불렀는지" 여부를 표하는 곳에 '×' 표시를 해준 덕분이었다. 그래서 다행히 구속되지 않고 일찍 풀려난 것 같다고 했다. 몸에서 최루탄 냄새가 많이 났다. 경찰서 화장실에서 씻으라 해서 그제야 다친 부위를 봤더니 쇠파이프 자국이 선명하고 살이 죽어 있었다.

나와서 모두 구로의원에 모였는데 그때 검진을 받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겨울만 되면 다친 곳이 시리다. 갈비에 금이 간 건지 부러진 건지는 모르나 염좌와 가벼운 디스크 증상이 있고 그 부상 이후로 몸이 약간 틀어졌다.

당시는 지금의 남편인 서덕석 목사와 연애 중이었는데, 연행자 명단을 뒤져봐도 조 전도사 이름이 나오지 않아 죽은 줄로 알았단다. 제2의 5.18이라 할 정도 워낙 무자비한 진압이어서 당시 지하실로 피한 시민들이 여럿 죽었다는 소문도 무성하였다. 서울대생 양원태씨는 옥상에서 떨어져 하반신 장애를 입었고 57명의 큰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한편 오는 14일(목) 오후 1시, 한국정치학회는 종로구 선거연수원 대강당에서 29년 만에 구로구청 부재자 우편투표함을 공개 검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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