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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려고 하는데 양육권을 어떻게 할까요.

2015.8.30. 법륜스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즉문즉설 강연

  • 입력 2016.07.19 22:47
  • 수정 2016.07.20 11:12
  • 기자명 장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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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호주인 남편과 결혼해서 8년 만에 남편이 이혼을 원해 지금은 같은 집에서 별거를 하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양육권 문제입니다. 남편도 아이를 원하고 저도 아이를 원합니다. 호주에서는 변호사가 말하기를 8:2로 양육권을 나누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평일은 한 사람이 주말은 다른 한 사람이 돌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해요. 남편도 더 많은 시간을 원하고 저도 더 많은 시간을 원하다 보니까 아직 서로 합의가 안 된 상황입니다.”

  “서로 아이를 돌보겠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예요. 서로 안 돌보겠다고 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서로 돌보겠다고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예요.”

  “남편은 아이에게 정말 좋은 아빠예요. 아이도 아빠를 더 좋아하고요. 그런데 저는 호주에 저 혼자 밖에 없는 상황이고 아이까지 없으면 여기에서 사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아이를 여기에 두고 저만 한국으로 가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호주는 한국과는 상황이 달라서 이혼을 했지만 아직은 한 집에서 별거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제가 집을 얻어서 밖으로 나가기로 했거든요. 변호사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하는데 아이를 데리고 나가고 싶지만 저도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여서 아이를 계속 봐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주위에서는 직장 다니면서 가끔씩 아이를 보면 되지 않느냐고 해요. 둘째 아이도 2년 전에 하늘나라로 보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 속에 답이 다 나와 있네요. 아이를 서로 안 돌보겠다고 할 때는 문제인데 서로 돌보겠다고 하니까 이것은 좋은 일이잖아요. 서로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첫째, 큰 문제가 없고요. 둘째, 자기는 지금 나가서 살아야 하는데 직장을 다녀야 하니까 아이를 전적으로 돌볼 처지가 안 되잖아요.”

  “그렇지 않고요. 시부모님이 낮에는 아이를 봐줄 수 있어서 저는 밤에만 아이를 돌보면 됩니다.”

  “어쨌든 일주일 내내 전적으로 아이를 돌볼 형편은 못되잖아요. 시부모님 도움을 얻든 아무튼 남의 도움을 얻어야 되는 형편이잖아요. 그러니 자기의 처지와 지금 주어진 조건이 딱 맞잖아요. 내가 전적으로 돌볼 형편이 안 되는데 남편도 돌보지 않겠다고 하면 심각한 문제가 되지만 지금 남편이 가능한 자기가 더 많이 돌보겠다고 하잖아요. 서로 경쟁을 하다보니까 결론이 아직 안 났는데, 나는 지금 객관적으로 돌볼 형편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 아이를 집에 두고 남편에게 좀 많이 돌보라고 양보하는 척 해주면 되잖아요. 양보를 하고 나는 또 내 일을 하면 되고요. 그리고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아이를 아들 집에 두고 돌보는 것이 나을까요? 이혼한 며느리가 이사를 가서 샛방에서 사는데 거기 가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나을까요?”

  “시어머니는 남편 집에 아이를 두는 것이 편하겠지요.”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있어야 해요? 엄마를 위해서 아이가 있어야 해요?”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있어야죠.”

  “그런데 자기는 지금 자기를 위해서 아이가 있길 원하잖아요. 그것은 엄마의 자세가 아니에요. 지금 엄마로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금 호주에서 외로운데 아이라도 한 명 있어야 의지하면서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잖아요. 이런 사고방식은 굉장히 잘못된 거예요. 엄마라면 내가 죽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못 봐서 아무리 가슴이 아프더라도 이곳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낫다면 내 아쉬움을 내려놓고 혀를 꽉 깨물고 돌아설 수 있어야 엄마의 자격이 있는 겁니다. 남편도 문제가 아니고, 서로 돌보겠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자기가 지금 엄마의 자세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엄마의 자세가 된다면 남편이 아이를 돌보겠다고 하면 남편에게 굉장히 감사해 하면서 ‘제가 지금 형편이 안 되는데 당신이 이렇게 아이를 돌봐주겠다니까 감사합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일 하면서 틈나는 대로 찾아와서 아이를 돌보겠습니다. 원래는 엄마가 주가 되어야 하는데 저는 호주 태생이 아닌 이민 온 사람이니까 당신이 주가 되고 내가 보조 역할을 할게요.’ 이렇게 얘기해서 아이를 남편이 돌보게 하세요. 또 시어머니가 돌본다고 하니까 잘 된 일이잖아요. 그래서 자기는 틈나는 대로 와서 돌보는 쪽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외로워서 힘들면 조그만 아이한테 의지하지 말고 큼지막한 남자에게 의지하세요. 왜 조그만 아이한테 의지하려고 그래요? 외로운 문제는 큼지막한 남자를 하나 구해서 해결하세요. (청중들 웃음)

  아이는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좋다고 하면 엄마와 떨어지게 되더라도 거기에 두는 것이 엄마입니다. 엄마가 희생을 해야 됩니다. 엄마가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면 거기에 아이가 희생이 됩니다. 엄마 아빠가 서로 데려 가려고 싸우면 아이가 찢어져야 되잖아요. 엄마가 양보하세요. 솔로몬의 지혜 아시죠? 서로 자기가 엄마라고 주장할 때 솔로몬이 ‘그럼 반반씩 갈라서 가지자’고 하니까 생모가 포기했잖아요. 정말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 문제를 갖고 싸우는 것은 엄마가 아니에요. 남편은 싸울 수 있어요. 그러나 자기는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 갖고 싸우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나와는 맞지 않지만 그래도 아이의 아빠 아닙니까? 그러니 항상 아이의 아빠를 존중해줘야 아이가 훌륭해집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자꾸 아이와 결부시키지 마세요. 외로우면 다른 남자 하나 구해서 살면 되지요. 변호사들은 양육권 문제를 자꾸 권익으로 따지는데 권익으로 따지면 변호사의 말이 맞을지 몰라도 인간 세상은 그런 권익만으로는 해결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엄마의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것이 자꾸 햇갈리게 되는 핵심 이유라는 말씀에 청중들도 큰 박수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 본질을 딱 꿰뚫어 주시니 질문자도 정신이 번쩍 든 듯 “감사합니다”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다음은 취미 생활을 즐기는 남편이 여우 같아 보여서 힘들다는 한 여성의 질문입니다. 질문자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호주에 이민을 온 지 10년 되었고요. 남편이랑 10살, 7살 된 아이들을 데리고 시드니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도 잘 돌보고 참 좋은 사람인데 한 가지 문제점은 야구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일을 나가고 남편도 회사를 나가는데, 저는 직장을 마치고 아이들 픽업도 해야 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아요. 무엇보다 힘든 건 남편이 야구를 하고 돌아와서 자기는 스트레스가 다 풀렸다고 하면서 해맑게 웃는 것입니다. 휴일에는 남편이 인터넷을 보면서 야구 스윙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하는 생각이 올라와서 제어가 잘 안 돼요. 또 얼마 전에는 남편이 정토회 깨달음의장 수련에도 흔쾌히 보내주었는데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깨달음의장에 다녀오면 자기가 편해지니까 그런 것이겠지’ 싶고, 오늘 강연에도 흔쾌히 보내주었는데 ‘내가 좋은 강연 들으면 한 달 동안 자기가 편해지니까 그런 것이겠지’ 싶고요. 이런 남편을 보고 있으면 너무 여우 같아요.”

 “지금 남편이 여우 같아요? 자기가 여우 같아요?” (청중들 박장대소하며 웃음)

 “남편이 여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자기가 여우 같아요. 이렇게 해주면 이걸 의심하고, 저렇게 해주면 저걸 의심하잖아요. 법문 들으러 가지 말라고 하면 ‘자기는 야구하러 가면서 나는 법문도 못 듣게 한다’ 그러고, 법문 들으러 가라고 하면 ‘좋은 법문 듣고 와서 한 달 동안은 잔소리하지 말라는 뜻이지?’ 이러잖아요. 자기가 의심병이 있는 거예요. 자기가 지금 피해의식이 심한 겁니다. 남편은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에요. 그래도 남편이 일주일에 한번 좋아하는 야구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오는 게 좋아요? 야구도 하러 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자기한테 성질만 버럭 버럭 내는 게 좋아요?”

“남편이 야구하러 가지 않고 웃으면서 집에 앉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청중들 웃음)

“야구하러 가지도 말고 집 안에서 웃으면서 앉아 있으라고요? 참나.... 남편이 너무 잘해줘서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겁니다. 저런 여자를 길들이는 방법은 밖에 가서 바람피우고 맨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야구 해도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술만 먹지 마라’, ‘야구는 해도 괜찮으니까 바람만 피지 마라’ 이렇게 됩니다. (청중들 웃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다 해줄 수 없어요. 또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도 없고요. 부부가 너무 서로 옭아매면 스트레스를 자꾸 받아서 가슴이 답답해져요. 그러면 집에 오는 것이 자꾸 꺼려지고 밖을 돌게 돼요. 이것은 크게 보면 나중에 서로 정이 떨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지금 자기의 생각은 위험을 초래하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관계가 좋은 부부라 하더라도 개인의 생활을 좀 열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자기 취향이 있어서 개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법문 들으러 가겠다고 해도 가라고 하고, 깨달음의장을 가겠다고 해도 다녀오라고 하는 겁니다. 만약에 남편이 자기에게 딱 붙어 있는 사람이라면 깨달음의장에도 못 가게 하고 법문 들으러 가는 것도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서로 약간의 자유를 주고 생활을 할 때 훨씬 두 사람의 관계가 오래 가고 좋아집니다. 자기가 지금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일주일에 5일 가는 것도 아니고 하루 가는 정도는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게 약간 열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좀 민감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아 보이니까 남편은 스트레스 좀 풀고 오라고 법문도 들으러 가라고 하고 깨달음의 장도 다녀오라고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까지도 자기는 ‘내가 깨달음의 장 다녀오면 네가 편해지니까 그런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것을 피해의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심보가 좀 나쁘네요. 계속 이런 사고방식으로 같이 지내면 상대가 굉장히 답답해집니다. 이래도 시비하고 저래도 시비하면 나중에 남편이 화를 버럭 내면서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냐!’ 이렇게 나옵니다. 착한 남자가 갑자기 악을 쓰게 되는 겁니다. 그런 꼴을 안 보려면 자꾸 자기중심으로만 보지 말아야 해요. 옛날에 자기 엄마 세대에는 남자가 아이 키우는데 신경을 거의 안 썼어요. 자기 남편이 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옛날 자기 아버지에 비하면 아이들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는 것이잖아요. ‘아이고, 우리 남편 고맙다. 내가 요즘 태어나길 잘했지. 엄마 세대에 태어났으면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자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

  “감사합니다.” (청중들 박수)

  청중들의 박수에 이어서 스님은 질문자가 왜 남편을 자꾸 시비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말해주었습니다.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어때요? 잘해줘도 끝이 없지요. 인생은 끝이 없어요. 인간의 갈등은 꼭 잘해준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꼭 못해준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에요. 서로가 적절하게 수용을 해줘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저렇게 민감한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조금 고려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아내는 이런 것을 조금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 스스로 여가 생활을 즐기니까 자기는 오늘처럼 법문도 들으러 나와 보고, 깨달음의장도 가보고, 한국에 가서 명상수련도 해보는 기회들을 자꾸 가지세요. 남편이 못 가도록 말릴 정도로 자기 스스로 자꾸 이런 기회를 가져서 자기 해탈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남편의 그늘에서만 계속 메여 살면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죽거나 이혼하자고 하면 하늘이 노랗게 됩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내라는 것은 나쁘게 말하면 굉장한 위험 부담을 안고 사는 것이 됩니다. 어떤 불행이든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여기에 늘 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혼자 살 수 있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이것은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지 아내도 남편도 부모도 형제도 자녀도 아니에요. 인생은 하나님도 부처님도 아닌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겁니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가꾸는 방법 중의 하나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면 할수록 내가 나를 더 소중하게 가꾸는 길이 되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집착을 하게 되면 그것은 곧 나를 망치는 길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소중한 줄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자기가 소중한 줄을 모릅니다. 남편을 자꾸 문제 삼는 것은 지금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요. 이것은 앞으로 위험을 자초하게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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