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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일기(16) 상록수의 노래

‘상록수’를 부르며, 페다고지를 읽었던 야학운동

  • 입력 2016.07.19 22:03
  • 기자명 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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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의동

야학의 이름은 ‘계명학당’으로 지었다.

풀어쓰면 ‘닭 울음 배움터(鷄鳴)’가 될 것이다. 닭의 홰치는 소리가 우리의 새벽을 깨울 것이다. 한 밤의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을 기다리는 목마름은 더욱 절실하리라.

우리들의 어둠, 우리들의 무지, 우리들의 게으름을 깨우치는 여명의 불빛, 계명학당에 거는 우리들의 소망이 그와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배움터의 교실은 내가 다니던 교회의 지하실 공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교회의 공간을 사용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우선 반대했다. 나름 진보적 성향을 자처하고 있었던 분들이라고는 하나, 예민한 시국 상황을 비켜가고 싶어 하는 심중이야 짚어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는 권사인 부모님과 부목사로 있었던 형님의 반대를 우선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집을 나가서 달 방을 얻어 살면서 야학을 준비했다. 그리고 교회당 지하실의 방 한 간을 비공식적인 묵인 상태로 사용하기까지는 수월찮은 난관을 더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황의동

‘노동야학’의 대의에 뜻을 둔 일곱 명의 동지들을 규합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강학’이라 불렀다. 그리고 학생들을 불러서는 ‘학강’이라 했다.

강학이란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는 자를 뜻하는 말이고, 학강이란 배우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자를 언명하는 말이다.

가르치는 자인 선생이 배우는 자인 학생을 일방적인 교육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명시적 의미에서, 그리고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둘이 아닌 한 가지로, 지식와 지혜를 나누고, 생활과 경험을 공유하는 양자 간 상호침투의 ‘열린 교육’을 지향한다는 실천적 의도에서, 그렇게 참신한 언어적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던 것일 테다.

학당의 교가는 ‘상록수’로 정했다.

사철 푸르른 나무가 되자, 변치 않는 마음으로 세상에 푸르름을 주는 한 그루 나무가 되자, 는 고귀한 뜻을 담아서.

그런 까닭으로 학당의 수업은 항상 처음과 나중을, 늘 푸른 상록수를 합창하는 것으로, 흥건한 감동을 전하고 있었다.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노래를 부를 때면 언제나, 특히 3절의 마지막 소절을 부르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두의 눈가에 이슬이 축축해졌고, 목이 메곤 했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페다고지.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 혹은 희망의 교육학으로 번역 되었던 페다고지는 브라질의 교육 사상가인 파울로 프레이리가 민중교육 실천 작업으로부터 얻은 자기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우리 시대 학생들의 기본적인 커리큘럼에 들어 있었던 명저였다.

민중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인식하고 재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독법으로, 프레이리는 세계읽기와 글 읽기라는 두 명제 간에 변증법적인 대화를 요청 한다.

“세계읽기는 항상 글 읽기에 선행 한다. 그리고 글 읽기는 계속해서 세계읽기를 내포한다.”

ⓒ 김자윤

민중이 세계읽기를 통해서 ‘세계의 주인’으로 마주 서고, 그리하여 호기심어리고 비판적인 주체로서 바로 설 수 있을 때, 문해(文解)교육으로서의 민중교육은 출발하게 된다.

그리하여 “민중의 세계에 대한 비판적 독해가 깊어질수록, 민중들은 숙명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난을 이해할 수 있고, 여기에 민중해방 교육의 설자리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본래 교육이란 이중적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데, 지배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바가 그 한 가지나, 동시에, 그러한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게끔 하는 바의, 말하자면 사회변혁의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여지가 또 한 가지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아, 문해교육이 억압받는 계급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무기로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김자윤

오일팔 광주 민중 항쟁을 주도하였던 광주의 들불야학(1978-1980)이 바로 그러한 전범(典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박기순이 중심이 되어, 윤상원 박용준 박관현 신영일 김영철 박효선 등 칠인의 강학이 만들어 활동했던 들불야학은, 광주 최초의 노동야학으로서, 3년 동안 4기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해체되었다.

그들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주민운동의 불을 지폈던, 당시 역사의 깨어있는 산증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오월 민주항쟁의 도청 지도부로서,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다 산화, 체포, 수배 되었다.

상록수를 부르던 강학들과 학강들의 감동이, 어찌 파울로 프레이리가 전하는 브라질의 민중교육의 경험과 동떨어진 별개의 경험일 수 있으리오,

뿐만 아니라 역사적 광주의 오일팔의 산증인, 살아있는 정신으로 산화해 간 들불야학의 처절했던 실천과 또 다른 맥락일 수 있으리오.

학원에서의 강의가 끝나자마자 바쁘게 자전거를 몰고 학당으로 달려오는 생활을 그예 계속하면서도, 마냥 즐겁고 행복했었다.

저녁밥을 먹을 새도 없이, 피곤하다는 느낌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조금 어리거나 비슷한 십여 명의 또래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나누었던 이야기, 토론과 학습과정, 밀담들.

학당의 수업은 진지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얼굴들과, 또렷한 눈망울들과 맑은 정신으로 불태웠던 그때의 열정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막걸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인생의 친구로서, 오빠와 동생, 형과 아우로서, 역사와 시대의 동지로서, 삶과 우정을 나누었고, 현장과 지식을 넘나들었다.

이 년 남짓 지속되었던 그때 그 상록수의 인연들이 오늘 따라 그립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을 시샘하는 찬바람이 매섭다.
바람에 실려 오는 빗방울의 갈피 갈피에 스민 그 시절의 우정과 사랑이, 새삼스럽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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