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조차 사라진 KBS여수방송국
여수에서 KBS 방송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건설사가 20층 아파트 285세대를 짓기 위해 방송국 건물을 허물고 있다. 광주 건설사 골드클래스는 2015년 8월 공개 매각을 통해 부지 19,485㎡를 39억여원에 매입하였다. 너무나도 아쉽다.
KBS 여수방송국이 허물어지고 있다
KBS 여수방송국이 처음 세워진 곳은 이곳이 아니다. 김계유 선생님의 '여수여천발전사'를 보면 KBS가 여수에 첫 전파를 보낸 것은 1957년 9월이다. 여수서국민학교 정문 앞에 낯선 봉고형 회색자동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바로 여수방송국 설치를 위한 이동방송차이다.
1967년 여수중앙초교 6학년 앨범
1957년 10월 1일 250V 1360KHZ 호출 부호로 첫 시험 전파를 보냈다. 당시 라디오 방송을 들은 시민들은 열광하였다. TV가 흔하지 않고 라디오에 의지하던 시절, 여성아나운서가 시간마다 전하는 지방 뉴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신기한 기억을 우리도 갖고 있었다.
KBS여수방송국은 1964년 9월 15일 관문동 163번지에 새 청사를 짓는다. 1965년 11월 20일 순천 중계소, 1968년 4월 8일 신월리 송신소를 세웠다. 1971년 4월 4일 630KHZ로 주파수를 변경하고, 4월 14일 남해 망운산 TV중계소까지 만들었다.
KBS 여수방송국과 남다른 인연
여수시 수정동에서 태어난 나는 관문동 첫 KBS 방송국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어릴적 누가 어디에 사느냐고 물어보면 "KBS 방송국 뒤"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 집에서 고개를 넘어 여수중앙초등학교로 다니면서 등하교길에 만나던 방송국이다. 뒤에 현재의 장소로 옮겼을 때, 고정 칼럼 방송을 하고, 여러 차례 방송 출연을 하였다.
우리 여수중앙초등학교 22회 졸업생이 찍은 1967 앨범에도 KBS방송국이 나온다. 몇 명씩 마땅한 장소를 찾아 찍은 사진 중에 건물 벽에 크게 선명하게 써진 'HLCY', 정문 '여수방송국' 간판이 드러나게 찍은 사진이 있었다. 1989년 이사 가기 전까지 늘 오고가며 정겹게 보던 글자들이다.
여수의 아이들이 방송국 견학을 단골로 갔다. 외지에서 여수 오동도로 수학여행을 오던 학생들이 꼭 들려가던 곳이 관문동 'KBS 여수방송국'이다. 그만큼 신기한 라디오 방송국이다.
이제 더 이상 공공시설 폐쇄 방치해서는 안돼
KBS 여수방송국은 1989년 6월 3일 지금의 관문동 88번지 사옥 기공식을 가져 그 해 12월 7일 준공을 하였다. 새 사옥에서 잘 나가던 여수방송국은 날벼락을 맞았다. 2004년 9월 1일 군산, 남원, 공주, 속초, 영월, 태백 방송국 과 함께 폐쇄되었다.
여수시 의회 의원들이 의원직 사퇴 거론, 수신료 거부, 지역주민 서울 본사 항의 방문 등 반대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강력하게 반대 운동을 하였다. 결국 여수방송국은 산하 중계소였던 순천방송국에 통합되었다.
TV 방송 제작을 할 수 있는 대형 스튜디오까지 갖춘 남해안 시대 중심 방송국으로서 면모를 보여주었다. 본사 경영 실패에 따른 구조 조정의 피해를 지역민이 고스란히 보게 되었다. 세계박람회 때 잠깐 활용을 한 이후 시민들은 미디어센터로서 복원을 바랐지만 몇차례 실패한 매각이 이뤄졌다.
방송 시설이 너무 아까워서 KBS 본사와 협의하여 '미디어센터'를 만들자는 시민들의 움직임도 물거품이 되었다. 다른 지역은 정부 기관 시설이 이주를 하면 양도를 받거나 매입해서 공공시설 또는 공원으로 조성을 한다. 그러나, 여수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철거하게 만들었다.
여수시는 학동 여수교육지원청에 이어 KBS 방송국 부지까지 민간 사업자가 매입하도록 방치하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앞으로 문수동 여명학교와 고용노동청 부지를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을 만들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KBS 꼴이 되지 않아야 한다.
1989년 새로 지어진 관문동 새 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