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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공허함...감당을 못 하겠어요.

2015.9.4. 법륜스님 포항 즉문즉설

  • 입력 2016.08.10 10:20
  • 기자명 장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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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걸로 인해서 마음이 공허해져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마음을 저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공허함이 자꾸 커지다 보니까 이걸 제가 감당을 못 하겠어요.”

“몇 살이에요?”

“스물여섯살이요.”

“스물여섯살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고아는 아니에요. 스무살 미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만 남의 도움이 필요하고 스무살이 넘으면 어머니가 살아계셔도 어머니로부터 독립해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아직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프다는 건 이해합니다. 제가 나이 예순이 넘어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슬픔이 있겠죠. 나이 예순에 아흔이 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마흔일 때 일흔인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스무 살일 때 쉰이 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열 살에 마흔인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언제 돌아가셔도 슬픔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일수록 슬픔이 더 크겠지요.

제가 만원 짜리 시계를 15년째 차고 다니다가 얼마전 중국에서 잃어버렸어요. 식당에서 강의할 때 시계 본다고 벗어놓고 강의했는데 잊고 안 가져왔어요. 이튿날 아침에 시계가 없어서 얘기하니까 식당에서는 못 봤대요. 지금도 아니고 15년 전에 만원 주고 사서 쓴 물건이면 본전 다 뽑았지요? 그런데도 섭섭해요. 남이 들으면 그런 고물 시계 가지고 뭐가 섭섭하냐 하지만 이런 시계도 오래 가지고 있던 것이 사라지면 섭섭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만원 주고 시계를 새로 샀어요. 그런데 이걸 오늘 또 잃어버린다면 15년 전에 산 시계와 산 지 일주일도 안 된 시계 중 어느 것을 잃어버린 게 더 섭섭할까요?”

“15년 전에 산 시계요.”

“왜 그럴까요?”

“추억이 있으니까요.”

“값어치 얼마 안 되는 시계도 15년 갖고 있다 잃어버렸다 해서 이렇게 섭섭한데 나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슬프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누구나 다 슬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야기를 해본다면, 시계 잃어버렸다고 계속 시계 타령을 하는 게 좋을까요? 좀 섭섭하지만 한번 가서 물어보고 두 번 물어봐도 못 봤다 하고 전화까지 해봤는데도 못 봤다 하면 포기하고 새로 시계를 사야 돼요, 한국에도 오지 말고 중국 그 식당에 붙어살면서 찾아야 돼요? (청중들 웃음)

섭섭하지 않아서나 필요없어서가 아니라, 필요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단 말이에요. 다들 못봤다 모른다 하는데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깝지만 다른 시계를 사서 대신할 수밖에 없듯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나에게 큰 슬픔이지만 이걸 내가 섭섭해하고 공허해한다고 돌이킬 수 있어요?”

“없어요.”

“돌이킬 수 있다면 한 달이라도 울겠지만 되돌려지지 않는 문제란 거예요. 부처님에게 빌어도 방법이 없어요. 좋은 데로 가는 건 부처님이 도와줄 수 있어요. 하나님에게 빌면 천당에 간다, 부처님에게 빌면 극락에 간다, 이런 건 도울 수 있지만 이리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도 부처님도 못 도와요. 만약 돌아올 수 있다면 좋은 데 간다는 이야기 자체가 나올 수 없습니다. 못 돌아오니까 차선책으로 좋은 데 갔다고 대안을 내놓은 거예요. 헤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헤어진 후 좋은 데 가 계신다 말하는 게 좋아요? 나쁜 데 가 계신다 하는 게 좋아요?”

“좋은 데요.”

“이럴 때 진짜 천당이 있냐, 극락이 있냐 묻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건 따질 필요가 없어요. 좋은 데 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위안이 되니까 이것은 진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효능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해요. 어머니가 좋은 데 가 계신다고 믿으면 내가 마음이 편해져요. 어머니를 자꾸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면 첫째, 그래도 돌아올 수가 없고, 두 번째, 만약에 올 수 있다고 누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문제가 돼요. 어머니가 좋은 곳에 가서 잘 지내시다가 질문자의 욕심 때문에 나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잖아요. 사실은 오시겠다고 해도 좋은 곳에 그냥 계시라고 해야 하잖아요.

게다가 설령 돌아온다 하더라도 돌아올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너무 슬프게 울면 돌아오는 것을 옛날에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돌아올 수 있는 몸이 없으니까 남의 몸에 끼어들어와요.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이 끼어들어오면 그 사람은 정신분열을 일으켜 정신질환자가 돼요. 이걸 옛날에는 귀신 들었다고 표현했고 현대의학에서는 정신분열 혹은 이중인격이라고 표현해요. 그러니까 너무 슬퍼해서 어머니가 질문자 속으로 들어오면 질문자에게 정신분열이 일어나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오면 그 사람에게 정신질환이 일어나요.

그러니 공허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간절히 바라는데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공허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괴롭고, 너무 간절해서 이루어져도 주위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공허함이 좀 덜어지느냐? ‘아이고, 어머니 이 세상에 사실 때 고생 많이 하셨어요. 우리도 키워주시고 아버지와도 여러 문제로 고생하셨는데 이제 편안한 데 가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행복하게 사세요.’ 이렇게 인사를 해주면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실 거예요.”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아니요. 인사하라고요. 가셨는데 질문자가 아직 인사를 안 해서 생긴 문제예요.”

“보고 싶을 때마다 계속 인사를 몇 번이나 했어요.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아요. 저도 그게 말이 안 되는 줄은 당연히 알죠. 그런데 스님은 시계를 잃어버리고 새 시계를 사셨지만 저는 대체할 게 없잖아요.”

“대체할 게 있어요. 딴 남자를 만나면 되죠.” (청중들 웃음)

“어머니를 잃었는데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그걸 대체하라고요?”

“아니요. 어머니를 잃은 대신에 남자친구를 만나면 된다는 거예요. 남자를 만나서 아기를 낳으면 질문자가 다시 엄마가 되거든요. (청중들 감탄) 세상은 이렇게 내려가는 거예요.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영원히 엄마의 딸로만 살 수는 없어요. 어릴 때는 엄마의 딸로 살다가 딸을 낳고 다시 엄마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엄마와 아빠에게 의지하고 관계 맺던 것을 결혼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대체하거나 나처럼 완전히 독립을 하면 돼요. 어느 쪽이 좋아요?”

“둘 다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진 않아요.” (청중들 웃음)

“그건 내가 남자친구를 너무 좋아하다가 헤어졌을 때 어떤 남자도 눈에 안 들어오는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그건 그 남자를 사랑해서가 아니에요. 지금은 다른 남자가 눈에 안 들어와서 본인은 영원히 다른 남자를 안 볼 것처럼 이야기하죠. 그렇지만 우리처럼 오래 산 사람은 세월이 약인 줄 압니다. (청중들 박수)

그러니 지금은 해결이 안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돼요. 돌아가신지 몇 년 되었어요?”

“4년이요.”

“그러면 10년 되면 지금보다 나을까요, 못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20년 지나면 지금보다 나을까요, 못 할까요?”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30년 지나면요?”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거짓말하면 안 돼요. 지금은 그렇게 슬프지만 그래도 10년, 20년 지나면 지금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안 돼요?”

“그런데 4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이러니까요. 그 시간의 두 배가 8년이잖아요. 그렇다고 과연 괜찮아질까 싶어요. 처음에는 저도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게 없이...”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으면 그걸 보통 정신질환이라 해요. 시간이 지나도 남자를 잊지 못하면 상사병이라 하죠. 어떤 하나를 좋아했는데 나중에도 놓지 못하고 계속 집착하는 걸 편집증이라고 합니다. 질문자가 어머니와의 추억이 좋아서 생긴 것이겠지만 거기에 대해 편집증이 있는 거예요. 이 편집증을 안 고치면 나중에 어떤 남자를 좋아했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데 그럴 때 다시 편집증이 생겨서 그 남자를 못 잊고 또 몇 년씩 시간을 보냅니다. 자식을 낳아 기른 뒤 시집 장가보낼 때도 또 편집증이 생겨서 떠나보내질 못해요.

그래서 지금이 그 편집증을 고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예요. 어머니를 떠나보낼 수 있으면 질문자는 나중에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혹시나 헤어질 때 그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녀를 낳아서 키울 때도 아이가 커서 독립할 때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니 지금 이것은 공부거리로는 아주 좋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잘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하세요. 그리고 ‘어머니 걱정 안 끼치고 저도 잘 살겠습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서 기도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져요.

어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셨는데 자기 옆에 오라고 계속 잡아당겨야 되겠어요? ‘엄마, 내 나이가 스물여섯인데 이제 안 와도 돼. 그러니 거기서 살아.’ 이렇게 인사하고 놓아드려야 되겠어요? ‘엄마, 안녕’ 하고 영원히 인사할 자신이 있어요?”

“아직은 좀 자신이 없어요.”

“어차피 인사 못 하고 계속 울어도 어머니가 돌아오실 수 있어요?”

“아니요, 안 돌아오시죠.”

“그러면 어차피 안 돌아오실 거면 인사를 확실히 해버리는 게 낫지 않아요?”

“나을 것 같긴 한데......”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한번 해봐요. ‘엄마, 안녕. 잘가!’ 이렇게 한번 해봐요.” (청중들 박수)

“말이 안 나와요.”

“그게 편집증이란 거예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너무 쉽지만 본인은 심리적인 이유로 입이 안 떨어지는 거잖아요. 헤어짐을 아직 못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니까, 억지로라도 한번 따라 해봐요. 엄마, 안녕, 잘 가!”

“엄마, 안녕. 잘 가.” (질문자는 다시 울먹였고, 청중들은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박수치면 안 돼요. 이건 ‘엄마, 안녕. 잘 가’ 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가면 안 돼!’ 하고 붙잡는 거예요. 그건 헤어지는 게 아니에요. 나처럼 상쾌하게 ‘엄마, 안녕. 잘가!’ 하고 뒤끝이 올라가야 돼요. 그렇게 한번 해봐요.”

“엄마, 안녕. 잘 가!” (청중들 박수)

“지금도 감정이 실려서 ‘엄마, 안녕. 잘 가!’ 하고 소리를 질러요. 이것도 안 돼요. 하나는 가지 말라고 붙들고 하나는 ‘못 올 바엔 꼴도 보기 싫어. 가!’ 이러는 거예요. 아까보다는 낫지만 둘 다 안 돼요. 입 앙 다물고 각오하지 말고 편안하게 다시 말해봐요. ‘엄마, 안녕. 잘가!’ 이렇게.”

“엄마, 안녕. 잘 가...”

“아직 안 돼요. 악 쓰지 말고 좀 더 편안하게.

그 소리 듣고 엄마가 어떻게 가겠어요? 여기 나이드신 분들에게 물어볼까요? 저 소리 듣고 갈 수 있어요? 못 가요. 다시 해봐요. ‘엄마, 안녕. 잘 가!’ 이렇게. 마음을 탁 내려놓고.”

“엄마, 안녕. 잘 가”

“거의 다 됐어요. 50점은 됐어요. 한번 더 해봐요.”

“엄마, 안녕. 잘 가!”

“100점은 아니지만 봐 줄게요. 박수쳐 주세요.”

청중들이 큰 박수와 함께 응원의 마음을 담아 환호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밝아진 질문자의 얼굴을 보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인간 세상이라는 게...참... 부모 자식이 만나서 부모가 먼저 돌아가면 자식이 울고, 자식이 먼저 돌아가면 부모는 더 웁니다. 부모가 돌아가셔서 4년을 저리 못 잊는 사람도 있는데 세월호를 생각하면 고등학교 아이들을 잃은 엄마들은 스님이 잊어라 한다고 잊어질까요? 안녕 하라 한다고 안녕이 될까요?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고 하죠. 정치인들이 이걸 알면, 물론 시신을 찾는다고 살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이럴 수밖에 없었고 구조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었다고 밝히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해주면 좋지 않겠어요?

그러니 우선 진상을 규명해주고, 책임자들은 책임을 좀 더 깊이 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하겠다고 재발방지 약속도 해줘야 해요. 그래도 또 이런 일이 생기겠어요, 안 생기겠어요? 또 생기더라도 이렇게 해주면 한이 좀 풀린다는 이야기에요. 그렇게 좀 해주면 좋을 텐데 다들 황소고집이라서 이렇게 아프게 하잖아요. 저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머니 돌아가신 것도 저렇게 가슴에서 못 놓잖아요.

질문자도 이제 어머니를 좀 내려놓고 좋은 데 가셨다 믿고 행복하게 사세요. 엄마가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웃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할까요? 우는 모습 보는 걸 좋아할까요? 웃는 걸 보기 좋아하겠죠. 그러니 질문자는 살아서도 불효하고 죽어서도 불효하는 셈이에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웃어주는 것이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웃으며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이제 자기 인생 살아야 해요. 어렵지만 그렇게 해야 해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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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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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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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0 00:19:12
저런것도 스님이라고 저게 웃길려고 하는거지 어떻게 스님이냐 말하는것마다 못배워먹은티 내네 부모를 무슨 시계에다 비유를 하나 그럼 나도 비유하나 할게 스님아 너는 쓰레기통이랑 마찬가지니까 쓰레기통도 대체가 가능하니까 너 죽으면 다른 스님으로 대체해야겠다 ^^
ㅇㅇ 2021-03-23 22:13:38
법륜스님 쓰레기네 말을 저딴식으로밖에 못할까
. 2017-01-04 23:13:28
더 두려운것은 저만 그런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른채 어른이 되서야 후회하고 그 고통을 받아야하며 공부잘해서 호강 더 시켜드린들 안아프진 않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더 잃어야 하고 또 비웃음당하고 모르는이들한테 낮잡여보여야 합니다. 제가 나이가 적다한들 너무도 가슴아픈건 모를래야 모를수가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공부하면 모두가 더 힘들뿐이죠. 기성세대분들이 이런 사회를 물려줘서 미안하다 해도 막상 조금더 젊을뿐인 세대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에 우리는 이처럼 사랑하고 미안해하며 결국 보내주는 삶을 살까요?
. 2017-01-04 23:08:22
저는 흔히들 말하는 '교육과열지구'에서 예비고1을 지내며 입시지옥이란 단어를 진심으로 체감하는 중입니다. 왜 이렇게 공부하기 싫을까 왜 이렇게 두려울까라고 생각하다 만약 니가 이대로 대학을 못가고 그스트레스를 가족들한테 화푸는걸로 지내다 어느날 어머니를 떠나보낸다면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자신이 죽는것보다 더 두려운게 어머님아버님이 돌아가시는것인데 그렇게 속만썩히다 보내드리면 어떤 후회를 할까... 정말 너무오래앉아있어서 다리가 안움직이든 수면부족에 나날을 이어가다 어느날 쓰러지든 그것보다 두렵지는 않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