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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일기(19)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입력 2016.08.18 11:46
  • 수정 2016.08.25 11:12
  • 기자명 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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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자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 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달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 지를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흥얼거리며, 귀촌 후의 첫봄을 맞아 마당을 만들고 꽃밭을 조성하며 나무와 꽃들을 심느라 분주한 나의 뇌리에, 숭악한 생각머리 하나가 스치는 것이었으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꽃보다 아름다워 꽃이더 아름다워 꽃이더 아름다워------)

마치 중3 때 작은 형이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그 신기막측한 야외 전축을 틀어놓았을 때 울려나오고 있었던 배호의 명 음반에서, “삼각지 로타리에 삼각지 로타리에 삼각지 로타리에-----”를 무한 반복하며 한 소절 한 발자국도 전진 앞으로를 하지 못한 채 주절주절하고 말았던 그 시절 그 가사와 하나도 다르지 않게.

차이가 있다면 가사의 변형이겠지. 꽃보다, 보다 ‘꽃이 더’가 백번 천번 더 낫다고 생각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상당한 기간 동안 나의 사고의 기저에 변치 않은 상태로 깔려있게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말을 다 알지 못했던 까닭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보단 일부러라도 다른 가사를 무시하고서 내가 시비를 붙이고자하는 바로 이 대목,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 일격을 가하고픈 정서적, 심리적 동기가 더 크진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귀농 초자들의 잦아진 술자리마다 나의 단골 시비 거리가 된 구절이, 이 “꽃보다 아름다워”였을 테니, 분명 확실치 않으나 내게 이 노랫말은, 목 넘김이 석연찮은,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봐라, 메뚜기 떼가 한번 지나간 자리엔 남아난 곡식이 없다. 이 지독한 놈들을 당해낼 곡식이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불개미 떼는 어떤가, 그놈들이 쓸고 간 자리는 아예 흔적이랄 것도 없이 싹쓸이 해버리지 않는가.

그런데 사람은 어떠냔 말이다. 산이건 바다건 관광지건 간에 사람의 떼가 지나간 자리는 폐허가 되어 버리고 만다.

지상의 숲과 강, 원시림들이 한번 이 사람의 떼에 걸리는 날엔 작살이 나버리고 만다. 아마존 유역이란 무엇인가? 지구의 허파와도 같은 산소탱크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지금 인간과 문명이라는 떼가 마구 달겨들어 어떻게 만들었고 만들고 있는가.

땅속의 석탄이니 석유니 가스니 하는 화석연료들도 몇 십 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말한 지 오래다.

그것도 모자라니 원자력을 개발해서 경쟁적으로 핵폭탄을 만들지를 않나, 원자력의 평화적인 이용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핵발전소를 짓고서, 마치 그것이 인류의 오랜 꿈의 연료, 꿈의 자원이나 되는 냥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판국이니, 잘 보라고,

지금 인간이란 작자들이 도대체 어떤 존재들인가 말이야.

수백만 개도 넘는 저 핵발전소의 부품들이 “우린 완전무결한 부품들이 결코 아니다.” 라고 언젠가 말을 하게 되는 순간, 그래서 사고라도 일으키게 되는 날, 그때는 참으로 비극 그 자체가 될 것이고, 곧바로 인류의 최대의 재앙이 될지도 몰라.

난 무지의 인간이 스스로 오만에 빠져서, 우리 자신인 인간과 문명에 대한 바르고 겸허한 성찰을 하지 못한 상태로, 욕망과 분노의 수레바퀴를 그치게 할 의사도 능력도 상실하게 되는 상태가, 불을 보듯 번연한 것이 아닌가 하고,

기회가 있을 때면 넋두리하듯 말주변을 풀어놓고 있었던 터라

그것뿐인가.

히틀러나 뭇솔리니나 일본의 전범들이나, 우리 역사의 독재자들, 그들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쓰고 자국과 세계를 전쟁과 폐허의 참혹한 상황으로 내몰았던, 아수라의 상태로,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몰고 갔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자녀들의 아버지, 여인의 남편, 공동체의 일원이었을 것이므로, 하여 인간이란 참으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결에, 난 봄이 되고 꽃을 심을 때면 언제나 흥얼거리게 되는 이 노랫말의 마법과 같은 부정의 만트라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었고, 다시 이 노랫말의 참뜻을, 아무런 편견 없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사람이란 마음이다.

그 마음에 육신을 품고, 그 마음에 감각을 품고, 그 마음에 생각과 감정을 품고, 그 마음에 하늘님을 품고, 그 마음에 온우주를 품을 때,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니다.

그 마음은 티끌이고, 그 마음은 수선화이고, 그 마음은 상사화이고, 그 마음은 꽃매화이고, 그 마음은 바람, 그 마음은 흰 구름, 그 마음은 푸른 산, 그 마음은 저 가믈한 하늘이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의 마음 구멍을 통해서 울려나오는 피리소리는 하늘이 부는 피리소리가 되고, 하나도 아닌, 둘도 아닌, 소리 없는 소리가 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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