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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엄한 검문 뚫고 네팔 국경 넘다

인도-네팔 우호관계 돈독 활발한 물자수송

  • 입력 2016.08.28 00:09
  • 수정 2016.09.02 05:47
  • 기자명 정금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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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에서 행복의 길을 묻다 (6)

인도와 네팔의 국경도시 수놀리, 국경이라 해야 나무 바리케이트가 전부다. 긴장감은 높지만 주변은 여느 도시 야시장을 의심케 한다.

순례단은 1시간 남짓의 수고를 판 뒤에야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밤 8시55분!


늘어선 상가에 전기 불 간판이 인도와는 사뭇 달랐지만 거리의 어둠은 매한가지였다.

차량이 줄고 생동감 넘치던 거리에 어둠이 내리자 여정에 지친 순례단에게 다가선 고요는 피로를 몰고 왔다. 검문통과와 성취(?)가 주는 긴장감 해소는 허탈 무게를 가중시켰다.

쉴새없이 울어대던 경적소리 간극이 멀어지고 인적 마져 뜸해지면서 생애 첫 네팔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네팔의 쌀과 식품, 그리고 석유 등 원료들 대부분은 인도를 포함해 외국에서 수입, 공급되고 있다. 그러기에 물가는 비싼 편이다. 두 나라 사이는 친분이 매우 두텁다. 한때 인도와 네팔사이가 급격히 악화된 적도 있다. 중국과 네팔의 관계가 호전되면서 상대적으로 인도와의 친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2년 전 인도 무디 수상이 취임한 이후 관계가 매우 호전된 상태다. 출국수속과 개별 검문 검색에 1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신뢰관계의 상징이며 8시간 남짓 소요되었던 인도에서의 네팔 룸비니 동산 구간을 4-5시간으로 단축시킨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국경을 두고 양국의 풍습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인도에서 남자는 열심히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지만 네팔의 남자들은 반대다. 인도의 여자는 결혼 시 한화 3천 만원 상당의 지참금이 필요하지만 네팔 여자는 지참금이 필요 없는 대신 열심히 일해야 한다.

부처 탄생지 룸비니, 나보다 너를 보는 참 알아차림 법회
하루 평균 3만 여명 참배, 일체중생구제 참뜻 새겨

6일째 첫 순례 지역은 부처님의 고향이자 태어난 곳, 룸비니 동산이다. 나무사이를 경쾌하게 그네 뛰는 원숭이가 순례단을 반겼다.

룸비니 동산은 1993년 발굴을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발자국 블록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이 자국이 부처님 발자국이다.

발굴단은 2000년에 이 발자국을 세상에 공개했다.

마야데비 사원은 2002년에 건축했으며, 하루평균 3만명의 참배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은 2250년경 룸비니 동산을 참배, 자신의 상징인 석주를 세우고 이 자리가 붓다의 탄생지라 밝혔다. 특히 석주에는 한글 영향을 주었다는 산스크리트 글자가 선명해 순례의 의미를 더하게 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통해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설했다.
혹자들은 이를 독선, 아집으로 해석, 참의미를 잘 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설의 참뜻은 '이 세상은 신에 의해 지배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이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부처님이 일생 동안 일관되게 주장하고 이어져온 것 중 핵심은 ‘어떻게 하면 일체중생의 고통을 어떻게 덜어줄 것 인가’이다.

룸비니 동산 호숫가에 둘러 앉아 듣는 법문이 보리수나무(무우수나무)에서 피어오르는 향과 함께 짙게 퍼져났다. 룸비니 동산의 평화로움을 뒤로한 채 순례단은 다시 국경으로 길을 잡았다.

오전 9시, 국경 검문소에 도착하자 인도 사복 군인이 버스에 올랐다. 한국인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국경지대 긴장 연속은 네팔에 물자를 수송하는 트럭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네팔에 문제가 있을 경우 국경 검문소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물자 수송행렬이 5키로 정도 늘어서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대기한 적도 있다.

국경지대라 해서 교통노선이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델리까지 운행되는 버스도 있기 때문이다. 오전 9시 탄다면 다음날 저녁 쯤에야 도착하는 길고 긴 여정이지만 버스는 있다.

국경은 긴장과 기다림의 연속이다. 한 나라에서는 출국이며 또 한 나라에서는 입국이다. 사람사는 세상에 죽고 죽이는 전쟁의 공포와 테러의 위협이 없다면 이러한 불필요한 연속은 없을 것이다.

기대감이 통했을까 40여 분만에 순례단은 인도에 안착했다.

처음 여행은 멋모르고 나선여행이다. 신비롭고 마냥 즐겁다. 이른바 눈의 여행이다.
두 번째 여행은 조금 알게하는 여행, 세 번째 여행은 반대로 아는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 오감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때는 네 번째 이후 부터다. 잦은 여행이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은 이 때문 일 것이다.

부처의 고향 카필라성 엄존, 해초스님 성지순례 기록

순례단은 국경을 멀리한지 2시간 만에 왕궁을 개조해 호텔과 식당으로 영업중인 정원같은 식당에서 오랫만의 여유를 즐겼다.

카필라성은 부처가 출가한 29살까지 생활하던 집이자 고향이다. 이곳에는 부처의 사리 8개 중 한개가 1897년에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 진신사리는 현재 델리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인도의 카필라성에 대한 가짜 논란을 잠재운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논란의 대상인 또 다른 카필라성은 네팔에 있다

지금도 탑 주변에서 타고 남은 쌀이 발견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8세기 해초스님은 카필라성을 순례하면서 '성은 무너졌고 스님도 신도도 없다'고 언급해 이곳을 다녀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카필라성의 관리는 부처님 사리 발굴과 역사를 알리는 현판 하나에 참배객을 안내하는 관리인 몇명이 전부이다. 사리탑이 있는 카필라성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활하셨던 집터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쉼없는 경적소리 위험알리는 공존의 소리, 삶의 맥박
무질서속의 질서 12억 인구의 일상 확인

현지 시각 오후 1시 30 분,
다음 순례지역 도착 예정시간은 6시30분! 장장 5시간을 버스로 이동한다.

여느 나라 어느 도시든 도로는 지역을 연결하고 문화를 이으며 사람과 문물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혈관이다.

인도의 도로 여건을 신체 질병에 견준다면 동맥경화가 심각한 상태로 비유될 수 있다. 3,4거리 교차로에는 어김없이 시장이 형성되고 사람이 몰려든다. 팔 수 있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팔고 또 산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릭샤, 오토 릭샤가 뒤엉켜 혼잡의 극치를 이룬다.

교차로와 도로 위 혼잡의 절정은 경적이다. 주행방향이 우리와 반대인 인도에서는 경적을 마치 악기 다루듯 울려댄다. 지금까지의 여정동안 수없이 만나고 지나치는 모든 교통수단, 그리고 도로위의 사람 사이에는 경적이 있다.

필자의 메모 순간에도 경적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필요 없이 경적을 울리거나 금지된 장소에서 경적을 울릴 경우 이에 상응하는 교통 범칙금 내야하지만 인도는 이런 상황에 연연치 않는다.

인도의 첫날, 울어대는 경적소리로 긴장의 연속이 상기된다. 창문 밖 사정이 궁금해 시선을 두리번거렸지만 이제는 많이 무뎌지는 것을 보면 적응하고 있다는 것 일 것이다.

장시간의 이동과정에서는 많은 에피소드를 생산한다. 생리현상 해결은 많은 웃음을 남기며 함께하는 사람들을 단합시키는 자양분이다. 공중화장실은 전무하고 휴게소 역시 없다.

그러기에 시골길을 달릴 때면 한번쯤은 노상방뇨를 할 수밖에 없다. 버스를 중심으로 성별이 나뉘고 적정한 엄폐물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생태화장실’은 어쩌면 미리 정해져있는지 모른다. 자연생태화장실 부근에서는 지뢰(?)를 조심해야한다. 이 지뢰는 밟은 사람이나 밟지 않은 사람이나 심각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인도여행길 경험해야 할 또 하나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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