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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시간 달린 열차, 델리에 도착

India에서 행복의 길을 묻다. (12)

  • 입력 2016.09.03 09:56
  • 기자명 정금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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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2등실 열차 침대

2층 침대였지만 불편한 것은 여전하다. 일찍 눈을 뜬 것이 럭나우에서 찬디가르까지의 불편 보다는 좀 나았나 보다. 짜이 파는 청년의 반복소리가 차안의 고요를 깨운다.

몸을 실은 기차의 차량대수는 대략 50여칸 쯤으로 추정된다. 파탄코트 캔디역(구 차키뱅크역)플랫폼은 길다 못해 아득하다. 움직이는 기차에 뛰어들어 몸을 싣는 광경은 다반사이고, 표없이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의 월담도 눈에 띈다. 월담 무임승차는 시골로 갈수록 용이(?)하다. 월담 목도는 필자가 중학시절 한번 쯤 경험했을 '공짜기차'를 묻힌 기억에서 상기 시켰다.

2등실이어서 일까..? 볕 들어오는 창문이 큼직하다. 통로에 커텐이 드리워져 혼자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어둠속을 달리며 얼마나 많은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연을 맺었을까?

다리도 건너고, 나무도 만나고 갈대 숲도 지났을 것이다. 수많은 초목들을 흔들어대며 살아 있음을 알리게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에 왔고, 또 그러면서 인도의 대륙을 달렸을 것이다.

도시와 도시, 지역과 도시,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원, 물자, 풍습을 연결해 문화를 만들고 일상을 꾸리는 인도 대륙의 동맥이 되어 맥박 치게 할 것이다.

어제 남긴 생수 반병으로 양치와 '토끼세수'를 마치고 오니 아침이 왔다. 도시락이다.

거리 목욕

커텐이 쳐진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의 아침'이 주는 복잡한 의미가 변화무쌍 한 창밖에 광경에 투영된다.

일정이 꾀 조급해지려나 보다. 당초 10시간 남짓 소요될 것이라는 기차 이동이 12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다.

아침이 끝나자 기차 안은 사람 사는 공간으로 점차 활기를 찾아갔다. 휴대용 전기포트에 물이 끓자 진한 커피향이 기차내 잡 냄새를 싸잡는다. 인도기차 안의 '마음여행' 카페다. 커피 메니아들의 열성에 차안이 즐겁다.

델리 역

기차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30분 가량을 더 소비하고야 델리역에 도착했다. 꼬박 11시간 30분이 걸렸다.

델리역은 기차역 주변이 주는 혼잡의 전형이다. 짐꾼, 잡상인, 노점상, 승객, 택시, 버스, 심지어 노상에서 목욕물을 끼엊는 사람도 있다.

인도에서는 관광객 전용 버스를 제외하고는 버스를 포함해 전 차량에 커텐을 설치하지 못한다. 선팅 역시도 금하고 있다. 차량 속에서 각종 범죄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순례단을 태운 버스가 인도 경찰청을 지나 인도 심장부로 파고들자 인디아게이트가 눈에 들어 온다.

인디아 게이트

뉴델리의 녹음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교통신호가 없이도 교통흐름이 자유스럽다는 것이 특징이다. 거리 이름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따 칭했고, 영국의 고풍스런 건물이 눈길을 잡았다.

기차지연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 순례단은 인도 국립박물관를 방문, 불상, 그림, 각종 조각상, 보석 등 인도 고대 문화들을 관람했다. 특히 순례단은 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진신사리를 친견했다.

인도 국립박물관 앞 사자석탑

인도는 현대 16개 공용어, 3200개 방언을 사용하고 있으며 고대부터 아쇼카 대왕은 ‘살생금지, 장유유서, 병자보호, 권선징악’을 강조했다.

델리에서 아그라까지 대략 200여키로 미터, 인도에서 유일한 고속도로다. 그래도 5시간 남짓 소요된다. 한국 같으면 규정 속도라도 2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이 고속도로는 인도의 시멘트회사 사장이 사비를 들여 건설, 5년 전부터 운행중이다. 우리로 말하면 기부채납이다. 도로가 비교적 한산한 것은 통행세가 비싸기 때문이다.

인도 여행하다 보면 드넓은 들녘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굴뚝을 자주 만난다. 인도에서 벽돌은 건축의 전부이자 삶이다.

인도인들이 벽돌과 연을 맺게 된 것은 시기적으로 기원전 3-4천년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장 왕성한 때는 기원전 600년 쯤이다. 인도인들이 벽돌을 건축자재로 활용하게된 것은 전적으로 환경적 영향이 크다.

나란다 대학 터. 인도에서 벽돌은 건축의 전부이자 삶이다.

인도북부에는 돌이 많고 남부에는 나무, 중부에는 양질의 흙이 많다. 돌을 건축자재로 활용 하는 데는 석재가 무거운데다 가공이 힘들기 때문에 기피했으며 특히 다방면의 활용에 있어서는 한계였다. 아쇼카왕의 석주는 왕의 위엄과 절대적 영향력을 확고히 하고자 멀리서 볼 수 있도록 석주를 높게 만들었다.

인도인들의 벽돌은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지혜가 담겨있다. 고온 다습의 환경을 슬기롭게 이겨내기 위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온기를 오래도록 보전해줄 건축자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는 벽돌만한 자재가 없다.

순례성지 탑이나 건축 터 대부분은 하나같이 붉은 벽돌을 이용했다.
수자타 보살의 생가터, 나란다 승가대학터, 출가지, 다비장, 진신사리 탑, 기원정사 터 등 모두가 붉은 벽돌로 축조한 것 들이다.

델리에서 2시간 남짓 빠져나오면 마트라 지역이다. 이 지역에 이르면 드넓은 평야에 벽돌 공장 굴뚝이 눈에 자주 띈다.

인도에서 교통사고시 특히 인사사고가 나면 마을주민들이 도로를 점거한다. 교통관련 공무원이 나서서 보상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점거가 풀린다. 사고 운전자는 현장을 피해야한다.

휴게소를 막 출발한 3호차가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 다시 분승 했다. 어둠이 짙어지고 불빛이 강해지는 9시 40분이 되어서야 인도의 마지막 날 여장이 쉼을 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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