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귀농일기(4) 논두렁 건달들 이야기

  • 입력 2016.10.01 06:48
  • 수정 2016.10.04 09:08
  • 기자명 민웅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자윤

귀농 선배란 작자들이, 귀농을 꿈꾸는 자들에게 늘상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말이 있거든, 글쎄 이런 말이라,

흠, 일단 귀농이란 좋은 것인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이, 그러고자픈 맘이 굴뚝같더라도, 심하게 서둘지는 말더라고이,

그라고, 진짜 확실히 맘이 잡혀부렀다 그라믄, 그냥 확, 저질러뿔고, 그랑께 거 뭣이냐, 말하자면 서둘지 말고 서둘러라, 이런 말이제, 인자 알아묵겄능가.

논두렁건달과 밭두렁건달들 모여봤뎄자 따로 특별한 놀이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런다고 화투잽이같은 건 애시당초 우리들의 쏘우셜 포지션에도 안 맞는 얘기고.

쬐끔 안다고 먼 데서 이곳 산골 구석대기까지 놀러온 양반들한테야, 접대랍시고 어느 넘 삼겹살이나 목살을 장작불에다 기냥 노릇노릇 구워갖고 폼나게 내놓기도 하고,

그뿐 아니여, 논두렁을 무신 무릉도원이나 되는 냥, 땅을 사 달라 어째라 하면서 무시로 건달들을 괴롭혀쌌는 작자들한테는, 한번 떴다하면 오십 미터쯤은 족히 일직선으로 비행하는데 능한 진짜배기 날렵한 토종닭으로다가, 푸욱 고와 내어주기도 하니까, 인심이 사납다고는 할 수 없겄지라우.

우리 논두렁 밭두렁들끼리야 날이면 날마다, 명분과 구실들을 만들어갖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마실 댕기는 처지가 아닌가벼. 어쩌다, 별이 반짝거린다거나 달이 무지 둥글 때, 그라고, 어느 건달 회원이 노가대 일당을 받았다거나(당시 일당 오만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유기농 협회니 생협이니 해서 특강이라도 나가 강사비를 타왔다 하면, 고것이 왠 특별 보너스나 되는 줄 알고, 그 기념으로다가 곧바로 마을잔치를 벌이고 마는 것이라.

말이 건달이지, 한때는 다들 한가락 내노라 하는 처지가 아니었는감. 뭐 광산김씨 몇 대손이라나, 혹은 예전 한때 노동운동의 깃대를 꼽은 선봉장 이었다고를 안하나, 말만 들어도 세상을 쩌렁쩌렁 울렸던 유명한 소설가의 소설 속 주인공이 댕겼던 바로 그 교회의 목사였다 고를 안하나,

쌍팔년 유월항쟁 때 계림동 오거리에서 장렬하게 싸우다가 최루탄에 쫓겨 죽자사자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는데, 그때 튀어나온 치질 때문에 여태껏 쌩고생을 하고 있다고 두 눈에 쌍심지를 치켜들고 말끝마다 신경질을 냅다 부리는 건달도 있고, 자신들의 화려했던 한때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거품을 물고 마는 잘난 표정들이라니.

무엇을 먹 것인가, 가 이곳 마실에 군집한 건달 공동체의 화두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겠다. 아무도 못 말리는 유별난 개성의 소유자들인데다, 천부적인 웅변가인 이들의 한 끼 식단 문제를 결정하는 일은 솔찬히 중요해서, 까다롭고 다단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럴싸한 명분과 희생의 문제가 부수되기 때문이다.

ⓒ 김자윤

팥죽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이가 궁물파 장문인이다. 팥죽은 완전 질색이라는 이는 전직 빈민목사다. 허나 목사부인이 팥죽파라 일단 빈목은 어쩔 수 없이 꼬랑지를 내리고 부인의 기호에 한 표 보탠다.

다산선생과 녹두장군을 사무치게 존경해서 별명이 다록인 김 시인은 광산 김씨의 혈통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일단 선비를 자처하는 작자들이 허구헌날 무엇을 먹을까에 매달리기 보단 어떻게 살 것인가 에다 천착하라, 고 나불거리니, 기권표를 던지는 것과 진배없다.

대의에 살고 명분이 아니면 죽지 않는 다록과 빈목의 위대한 결단과 뼈아픈 희생을 딛고 나니, 건달 공동체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이들의 눈물겨운 자축의 탄성이 울리고, 자연스레 궁물파 장문인의 세심한 지도에 따라, 나름 멋드러진 팥죽 잔치가 벌어진다.

소싯적부터 팥죽을 좋아해서 팥죽귀신이란 별명을 달고 살았던 장문인은, 전날 배가 터지도록 팥죽을 먹고도, 다음날 아침이면 일어나자마자 어김없이, 팥죽 남은 거 없냐고 부엌부터 뒤진다.

해장죽이라니. 어젯밤 목구멍까지 차오르도록 리필을 계속한 댓가로 속앓이를 하는 서방님을 보다 못해, 입이 반쯤 나온 표정을 한 그네는 가스불을 켜고 뜨겁게 냄비를 끓여 팥죽 한 대접을 가득 퍼서 내놓는다. 물끄러미 서방님의 눈치를 살피는 그네의 눈망울에 측은지심의 기미가 일었다 사라지고.

아따, 내가 금생에 팥죽 맛을 몰랐다먼 먼 재미로 살겄능가, 그런데, 막 끓여낸 팥죽하고, 다시 끓여 재활용한 이넘 하고는 근본적으로다가 맛이 다르당께.  막 끓인 팥죽 맛이 팔팔한 처녀의 봉긋한 그것처럼 탱탱한 맛이라먼, 재활용한 이넘은 아지메들의 그것 맹키로, 축 늘어져뿐 것이, 쫄깃쫄깃한 데가 하나도 없단 말이시.

그것도 아쉬운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고는 허나. 입을 쩝쩝 다시며 허튼 소리를 중얼거리는 장문인의 뒤태가 오늘따라 헛헛하다.

건달들이란 본시 놀고먹는 것이 본업이라, 건수만 생기면 천지사방으로 출입하느니.

도시와 문명을 뒤로한 채, 때론 정치판을 씹다가, 때로는 은자의 결 고운 지조를 읊조리기도 하느니, 때로는 노장과 불교의 현현처를 동경하나, 오매불망 제 사는 21세기의 문명과 정신을 놓지 못하더라. (계속)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