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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 값 좋았을 땐 노화도를 돈섬이라고 불렀죠"

연간 1200억 소득 올리지만 과잉공급이 문제

  • 입력 2016.10.19 09:54
  • 수정 2016.10.20 02:59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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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본 노화도 전경
ⓒ 이재언

 


지난 주말 지인과 함께 완도군 노화도를 방문했다. 완도군 서남부에 위치한 노화읍은 동쪽으로는 소안도, 남쪽으로는 보길도와 근접해있고 북동쪽은 멀리 완도와 신지도가 보이며 해남군의 남쪽 끝인 송지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노화도 역사를 간략히 보면 1896년(고종 33년)에 영암군으로부터 24개 도서가 분리돼 완도군이 됐다. 노화군은 1980년 노화읍으로 승격이 됐고 680m 길이의 보길대교(2008년 준공)가 설치돼 언제든 교통이 가능한 보길도는 1986년에 분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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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위에서 바라본 해남 땅끝전망대와 하늘이 정겹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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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화농협에서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운영하는 여객선. 16년간 '한정면허'로 묶어놔 매년 3억씩 적자가 났지만 작년(2015.7.7)에 '일반면허'를 얻어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 한정면허란 조합원차량과 화물자동차만 이용하도록 허락한 면허제도이다.
ⓒ 오문수

 


해안선 길이 119.75㎞인 노화읍은 장사도, 구룡도, 노록도 등의 13개 유인도와 송도, 잠도 등 38개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노화읍은 인근에 비교적 규모가 큰 도서인 소안도와 보길도, 넙도가 있고, 작은 규모의 도서들이 군집해 있어 인근도서들의 중심도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노화에서 외부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량은 해남군 토말축이 전체의 60%, 동천리를 이용하는 완도읍(화흥포)축이 40%를 차지한다. 인근 도서지역은 노화 이목항을 중심으로 생산물 판매, 선박건조 및 수리, 의료활동과 생필품을 구입한다.

때문에 노화의 5일장은 오랫동안 번성했다. 해상교통을 통해 목포와 왕래가 활발했던 70년대까지는 이목리가 '제2의 목포'라 불릴 만큼 장사가 잘 됐다. 이목리 중심에 서면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상점가가 즐비하다.

2605세대에 주민 5669명이 사는 노화도에 학생 653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고등학생이 131명이 재학하는 걸 보면 다른 섬에 비해 젊은 층 인구가 많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노화도는 완도군내 대형도서 가운데 임야 면적 비율이 가장 낮아 해안선을 간척지로 조성해 넒은 들과 염전을 가지고 있다. 산악이 발달되지 않아 큰 하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수원이 매우 빈약해 인근 보길도에서 식수를 공급받고 있다.    

전복대량양식에 성공해 돈섬이라 불린 노화도, 과잉공급으로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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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식하고 있는 전복을 김관수씨가 들어보이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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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전복인 '치패' 모습으로 3년쯤 자라면 상품화가 가능하다
ⓒ 오문수

 


노화 해안은 북쪽 해안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굴곡이 매우 심하게 이뤄진 만과 풍부한 이질로 구성된 간석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포리에서 마삭도에 이르는 지선은 겨울에 북동풍, 그리고 여름에 남풍의 영향을 받으며 수심 4~8m, 유속 7~14m/s로 비교적 빠르고 뻘로 구성되어 해조류와 패류가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다.

때문에 김, 미역, 톳, 뜸부기, 우뭇가사리, 파래, 청각, 굴, 대합, 바지락, 나박 및 꼬막, 소라, 성게, 전복 등의 해조류 및 패류가 서식하고 있다. 

동행했던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이재언씨의 고향인 미라리를 방문하자 이씨의 지인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전복양식을 위해 '전복하부 틀'과 어린 전복인 '치패'를 붙일 '셀타'를 조립중인 김관수(54세)씨를 만나 전복양식 현황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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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업을 하다 고향인 미라리에 귀촌해 6년전부터 전복양식을 하는 김관수씨가 전복양식 도구인 '전복하부틀'과 '셀타' 작업을 하면서 전복양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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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복양식 작업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오는 배와 사람들 모습
ⓒ 오문수

 


"전복양식을 시작한 지는 6년째입니다. 건축일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귀촌했습니다. 2.2미터짜리 전복양식 틀 400~500개에 치패를 입식해 양식하고 있습니다. 3년 정도 미역과 다시마를 줘서 기르면 상품가치가 있어 출하해요.

전복은 특별한 병이 없지만 연작하면 출하량이 떨어집니다. 옛날에는 수입이 좋았는데 지금은 과잉생산이 되어 옛날 같지 않아요. 귀촌해서 고향을 지키고 주민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게 보람입니다. 신선하고 건강에 좋은 전복이기 때문에 많이 애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전복양식으로 인해 소득이 증가하자 인구가 늘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읍사무소에 들러 인구변화현황을 살펴보았다. 2011년 2164세대, 4798명이던 인구가 2015년 2605세대 5669명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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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화도 항구에 정박한 배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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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화농협 강홍구 조합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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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는 "유입인구 대부분이 전복양식사업을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요즈음 전복양식이 보편화되어 값이 떨어지고 인구증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전복대량양식에 성공해 노화도가 부유한 섬이 된 역사를 아는 농협조합장 강홍구씨를 만나 현황을 들었다.

"15년 전에는 김, 톳, 파래가 전복보다 수입이 좋았어요. 하지만 전복의 가치에 일찌감치 눈을 뜬 5명의 젊은이들이 합작해 전복양식장을 시작했어요. 초기에는 뭘 모르니까 먹이로 배추, 칡넝쿨, 해초, 파래, 청각 등을 줬지만 실패하자 최아무개씨에게 위임하고 떠났어요. 최씨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꾸준하게 연구해 대량양식에 성공했어요.

하지만 당시는 전복이 너무 비싸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부산으로만 출하했다가 노량진수산시장까지 진출했고 '완도군전복유통주식회사'까지 설립했죠. 돈이 된다니까 너도나도 뛰어들어 지금은 과잉공급이 문제입니다. 전복 값이 좋았을 때 행정기관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순수익이 1억이 넘는 가구가 300세대가 넘었고 우리나라 전복 생산량의 80%를 노화도가 차지했어요. 그 때는 노화도를 돈섬이라고 불렀죠." 

조합장에게 노화도농협의 애로사항을 묻자 농협에서 운영하는 배를 예로 들었다. 18년 전 주민편의를 위해 농협에서 배를 운영할 때 '한정면허'를 허락했다. 한정면허는 조합원차량과 화물자동차만 배 이용이 가능해 매년 3억씩 적자가 났다.

조합에서는 관계당국에 지속적으로 제도개선을 요구해 지난해(2015.7.7.)에야 일반면허를 취득했다. 올해부터는 회원과 관광객 누구나 이용 가능해 흑자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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