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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와 잡초 이야기

귀농일기(6)

  • 입력 2016.11.04 09:10
  • 기자명 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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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만 해도 서른다섯 호가 넘었다는 야동 마을이 지금은 비어있는 집을 포함해도 여덟 가구밖에 안 된다.

 ⓒ 김자윤

모후산 서쪽의 자그마한 골짜기에 자리 잡은 야동은 삼면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마을 위쪽으론 모후산에 겹겹한 지봉들로부터 흘러들어온 골짝의 물을 가두어서, 보기에도 아담한 못 하나 정겨운 풍광을 드러내고 있는데, 한 눈에 보아도 농사용 저수지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저수지를 타고 내려와서 마을 앞으로 실개천이 흐른다.

이곳에는 어렸을 적 동무들과 함께 뛰어놀았던 그 시절의 동심도 따라 흐른다. 재너머 산골의 얕은 개여울에 첨벙대며 가재를 잡기도 하고, 돌 밑과 틈 사이를 교묘히 뒤져가며 붕어와 미꾸라지 등을 건져 올리던 제멋에 겨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들이 하이얀 물거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물속에는 수초 속을 헤집고 다니며 바지런을 떠는 피라미들이 그네들의 한 때를 유유히 노닐고 있고, 바위들에 얹힌 묵은 이끼와 다슬기들은 수 없는 생의 인연인 듯 사이좋은 공생을 나투고 있다.

마을 초입의 널따란 공간이, 주차도 하고 곡식을 널어 말리기도 하는 다목적 마을 건조장이고, 바로 그 뒤로 대숲을 배경으로 소담하게 정남향으로 자리한 옛집, 이곳이 나와 가족이 새로 둥지를 튼 보금자리가 된다.

굴곡지고 난만한 세월의 손때가 낱낱의 들보와 기둥의 벌어진 틈새에 밀밀히 묻혀있는 듯한 옛날식 한옥 두 채와, 허물어질 듯 비틀하고 녹슬은 철대문을 끼고 있는 헛간채, 그리고 위아래에 층을 이루어 아기자기한 돌담이 사방으로 둘러친 너른 마당과 담벼락 밑의 오밀조밀한 꽃밭이, 이제부터 나의 새로운 터전과 친구들이 될 것이다.

단순 소박한 삶!

언제부턴가 나는 사상이라든가 이데올로기라는 말보다는 ‘삶’ 이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 거기에다 단순하고 소박한 뜻을 담아서, 지난 시기에 얽매었던 당위와 명분을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은연중에 찾고 있었을 것이다.

하여, 자연을 닮고자하는 삶의 방식의 뜻으로 어느 순간부터 즐겨 쓰기 시작한 ‘단순 소박한 삶’이란 말은 내게 들어와서, 바야흐로 나의 새 길을 안내하는 말머리로 새겨졌고, 그리곤 훗날 새집의 상량 문구에 가훈처럼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마을 이장이 논밭을 살 거냐, 고 물어 와서, 두 말 없이 샀다. 두 마지기가(375평) 조금 못 되는 논뙈기와 집의 돌담을 사이에 두고 바깥쪽에 붙어 있는 널따란 밭 한 다랑이를(465 평) 샀다.

전문 농사꾼의 시각으로 보면 한 살림의 밑천을 삼기엔 가당찮은 면적이겠다. 하지만 농사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빼놓고는 갖춘 게 전혀 없는 나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지어먹기엔 만만찮은 면적이었다. 자급자족의 의미로만 보면 그 정도로도 한 가족 식량은 너끈히 해결하고도 남으려니.

ⓒ  김자윤

자, 이제부터다. 그토록 꿈꿔왔던 농부의 길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 쌀농사가 가장 중요하다. 인류가 농업적 삶의 양식을 개발해온 이래 생명을 기르고 지탱해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해온 것이 바로 이 쌀농사가 아니던가.

우리 아시아인들의 주곡으로서 동방인들의 DNA의 기저에 뿌리깊게 관여해온 곡식이 바로 이 쌀이다. 그러므로 쌀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생명과 문화에 관한 철학적 입장과 관련되어 진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철학이란 다름아닌 실천의 영역에서만 자신의 진실을 확연하게 방증할 수가 있다. 우리가 지향하고 개발해야할 농법이란 어떠해야 할 것인가?

그런 까닭에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농사짓는 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마음만 미리 농부가 된, 초보 귀농 건달의 명예가 달린 첫 농사의 시험대가 목전에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이곳 골짝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어디선가 요란한 트랙터나 경운기 등의 발동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마치 기계문명을 처음 접한 아마존 유역의 원주민들처럼 뜨악하게 반응했었다.

  ⓒ 김자윤

내가 동경했던 나의 귀농의 장면은 어떠했을까.

“새벽이면 닭 울음소리가 마을의 아이들과 어른들의 단잠을 깨우고, 삽자루를 둘러맨 농부들이 새벽이슬 떨치며 들판을 순찰하니, 개구리들과 풀벌레들의 육성만 듣고도 그 해의 풍년을 예감한다.

들판의 논밭에선 미꾸리와 붕어들이 두루미의 공습에 대비하여 날렵한 출입을 일삼으며, 가을이면 메뚜기들이 나락이 무르익는 황금들판을 폴짝거린다.
종달이는 하늘 높이 날으니 이들의 행적을 쫓는 솔개들의 낮은 비행이 허허롭다. 개여울엔 다슬기들이 투명한 물빛에 비추이고, 반딧불이는 제 밝기만으로도 별밤의 푸른 하늘을 마음껏 비행하기에 충분하다"

다시 장면이 바뀌어 눈앞은 여전히 생생한 현실이다.

첨단을 달리는 농업형 기계들의 터프한 굉음소리에 섣부른 농부는 본능적으로 몸을 사린다. 드디어 외계인들의 공습이 시작됐군.

놀란 경기가 한바탕 소스라치게 지나간 자리엔 공포에 질린 지렁이들이 눈만 껌벅 껌벅 하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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