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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살아있고, 시민은 위대했다”

[서울광화문촛불집회 참가기]

  • 입력 2016.11.14 20:05
  • 수정 2016.11.14 20:37
  • 기자명 한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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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명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고 뭐가 달라질까?

광화문 세종대로에 앉아있는 여수시민은 그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 흥분이 되었다. 여수에서 보기 드문 그 많은 사람들이 무섭도록 밀물처럼 몰려드는 모습은 나도 모르게 감동이 되었다. 옛날 조직이 동원한 사람들은 깃발 아래 지휘하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 앉았다. 11월 12일 100만 촛불은 그러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깃발을 흔들지 않았다. 촛불을 들고 무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맞춰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는 가만히 있어라”,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는 방 빼라”, “박근혜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구호에 맞춰 손을 들어 외쳤다.

그들은 총을 들지 않았고, 화염병도 없었고, 하다못해 막대기 하나 없었다. 있다면 촛불 하나였다. 그렇게 격앙되지 않았다. 오직 100만 명이 모이면 민심이 모아져 “박근혜 퇴진”이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었다.

 

절대 박근혜는 촛불 앞에 물러서지 않을 거야

광화문 미국 대사관 건너, 무대 뒤쪽 커다란 모니터를 보면서 사회자의 지시대로 따라서 하는 곳에 우리는 앉았다. 광화문과 청와대는 가까워도 광화문 무대 뒤편이다. 박근혜는 내란 음모 죄로 처벌해야 한다면서 조목조목 이야기 하는 김제동 연설은 열기를 끌어올렸다.

박근혜 후배라는 성심여고 발언, “정유라 말 훈련비 주려고 마사회가 학교 앞에 화상경마장을 만들었다.”는 것과 후배들은 박근혜 퇴진을 바란다는 말을 하였다. 그 때 종로 사방으로 뻗은 100만 촛불, 서울시청, 청계광장, 서대문에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촛불 파도타기는 환상적이었다.

청와대를 향해 모두가 7초 동안 함성을 지를 때, 그 소리가 거리 시차 때문에 울림으로 들려올 때는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청와대로 거침없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느끼지 못하였다면 박근혜는 냉혈녀이다.

구호 외치고발언과 노래 들으려 여수에서 서울까지 갔다고?

먼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6시에 여수에서 전세 버스를 탔다. 한 번도 서울 촛불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시민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짰다. 지난 16년 동안 매주 토요일 여수시내 산과 들, 바닷가를 걸어 다니는 여수풀꽃사랑 회원들을 모았다. 나무와 풀에 핀 꽃들이 좋아서 모인 그들, 토요일 답사를 서울로 바꿨다.

올라가는 길에 경기도 곤지암 화담숲을 들려 구경을 하고 어렵게 광화문으로 갔다. 혹시 늦지는 않을지,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가슴 조마조마하여 밀리는 차 때문에 양재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경복궁역으로 갔다.

지하철역에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고, 경복궁쪽인 6번 출구는 경찰이 계단을 막았다. 7번 출구로 나와서 우리는 녹색 “여수풀꽃사랑” 깃발을 높이 들고 광화문으로 향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여수에서 왔다면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종문화회관 앞 본무대까지는 도저히 진입을 할 수 없어 깃발을 들고 세종대로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여수에서 시국대회에 참여하면 그보다 나을 텐데?

혹시나 서로 잃어버릴까봐 저쪽까지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혹시나 하고 세종문화회관 계단까지 가보았다가 포기를 하였다. 도로뿐 아니라 계단, 건물 사이 공간, 어느 빼꼼한데 빼놓지 않고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항공 사진에서 잡히지 않은 인원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더욱 사람들이 늘어났다. 바깥쪽에서 시위를 하던 대열들도 광화문쪽으로 몰려들었다. 그 많은 사람들로 빈 틈 없이 꽉 찼는데도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데도 누구하나 밀치지 않고,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쳐다보기만 하는 그들, 오로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박근혜 퇴진”이라는 공통 목적으로 나왔다는 것이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는 여수처럼 촛불도 나눠주고, 손팻말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따로 양초와 종이컵을 사서 촛불을 만들었다. 손팻말을 구할 수 없어 촛불만 들었다. 그 촛불을 구하지 못해 손을 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촛불 사이로 시커멓게 보인 것이다.

저녁을 먹을 시간도 없어서 배를 쫄쫄 굶고 있었다. 근처에 김밥을 사려갔다가 편의점에 남은 빵과 우유로 나눠먹고 있을 때 옆에서 감자떡을 건네준다. 커다란 비닐부대를 들고서 쓰레기를 주우려 다니는 청년을 보고서 숙연해졌다. 이미 우리는 이렇게 100만 촛불로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잊고 지금 상태가 더 감사할 뿐이다.

진짜 100만이 모였을까?”

광화문 세종대로에만 앉아있다가 지하철을 탔으면 그런 의심을 할 뻔 했다. 내려가는 차편 때문에 행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는 9시가 넘어서 조용히 일어섰다. 세종문화회관 뒤쪽에서 덕수궁, 서울시청, 서울시청 별관, 정동길을 지나 농업박물관 서대문역까지 걸었다.

서울시청앞 광장은 광화문 못지않은 구름떼같이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도 따로 무대가 있었다. 그 뒷길에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항공 사진 속에 포함되지 않은 인원이었다.

덕수궁, 대한문 앞, 작은 공원에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작은 집회를 열고 있었다. 가족이나 아는 사람들끼리 촛불집회를 즐기고 있었다. 진짜 ‘100만 촛불집회’는 ‘하야 페스티벌’이었다. 누구 하나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

오죽하면 여수에서 올라온 여수풀꽃사랑 회원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구호를 외쳤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새누리당은 해체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하면서 행진을 하였다. 행사에 늦어서 부문별 가두 행진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버스 타러 가면서 경험하였다. 이를 지켜본 시민들은 여수에서 온 것을 확인하고 박수로 보내거나, 구호로 응답을 하였다.

서대문역이 가까운 충정로에도 사람들이 가득 찼다. 100만 민심은 이렇게 곳곳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서울까지 가서 얻은 것은?

10시가 넘어서 버스를 타고서 서울을 빠져나왔다. 새벽 밤공기를 가르고 여수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이었다. 21시간을 걸려서 서울 촛불집회를 가서 얻은 소득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몸은 피곤하지만 우리는 커다란 것을 얻고 왔다.

바로 정의는 살아있고, 시민은 위대하다는 사실이다. 누가 지휘하는 사람이 없어도 모두가 한 마음으로 국정을 농단한 무능한 박근혜 정권을 향해 “내려와라”고 외쳤다. 정권은 썩었어도 국정은 엉망진창이어도 시민의식은 세계 최고임을 보여주었다.

잘못된 언론이 시민을 호도하였고, 시민을 우민으로 보았지만 꼼짝달싹 못하고 포위된 KBS 중계차, 그 차에 온통 붙어있는 쪽지를 보면서 시민은 살아있음을 보았다. 박근혜가 대통령을 사퇴해도 국정은 중단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위대한 시민이 어떤 음모 세력을 용서하지 않을 것 같다. “시민의 힘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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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꽃 2016-11-15 05:45:54
정말 수고하셨어요.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