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에 세워진 동상 다리에 붉은 스프레이로 ‘독재’라는 글자와 기념시비와 국민헌장비에는 '독재자가 새겨져 있다.
ⓒ 대학생 류군 제공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에 있는 '박정희 동상'에 '독재'와 '독재자'라는 빨간색 스프레이 낙서가 발견돼 일이 화제가 되고 있다. 동상에 낙서를 한 이는 A대학 1학년생 류아무개씨로, 여수가 고향으로 알려졌다. 

류씨는 4일 새벽 박정희 생가에 뛰어들어 박정희 동상 왼쪽 다리 부분에는 '독재'라는 글자를 썼다. 또 기념시비와 국민헌장비에는 '독재자'라는 글자를 썼다.

그는 19일 경북 구미경찰서에 출두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동상 등을 훼손한 혐의(재물손괴)로 조사를 마쳤다. 조서에 응한 그는 "역사책을 보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천황에게 굴복하고 이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는데도 동상을 세워 찬양하는 점을 참을 수 없었다"라고 경찰 진술서에 썼다. 그는 검찰 기소를 앞두고 있다.

페이스 북에 제자응원 요청한 '스승'
 

22일 페이스북에 제자의 이 같은 행위를 알린 한 교사가 있다. 여수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박상진 교사는 SNS에 짧은 글을 남겼다.

"제자입니다. 여수**고 역사의식 강한... 응원이 필요합니다!"

박 교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상한 일을 이상하다고 얘기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형법상 재물 손괴죄를 적용하는 것은 어쩔수 없지만 이 일로 인해 제자가 걱정이 많을 텐데 두려워 말라"라고 격려했다.

학교에서 2년 동안 법을 가르쳤던 박 교사는 류씨에 대해 "생각이 깊고 역사에 관심이 많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합리적인 사고가 깊은 제자였다"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제자의 행동에 대해 "아직도 아이들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잠재되어 있으므로, 우리 사회에 미래가 있다"라며 "제자가 물꼬를 터줬으니 위축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제자를 위로 했다.

23일 류씨와의 전화인터뷰는 박 교사의 설득으로 이뤄졌다. 딸이 현직 대통령인데 독재자라고 쓴 (일명 스프레이 테러)행동이 겁나지 않았냐는 물음에 류군은 "겁이 났다기보다는 이런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를 외면하는 나라가 더 무서웠다"면서 "겁이 났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독재자라고 쓰기 위해 구미까지 일부러 갔다"면서 "비정상적인 것에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라며 "이번만큼은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학생들이 계속 투쟁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지난 23일 류씨와 전화상으로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독재자 동상 세우는 나라 무서워"
 

▲  22일 페이스북에 여수H고 박상진 교사는 "제자입니다. 여수**고 역사의식 강한...응원이 필요합니다!"라고 알렸다.
ⓒ 박상진 페북 갈무리

- 어떤 계기로 이 같은 행동을 하게 됐나?
"우리나라는 헌법 1조1항에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되어있다. 그런데 아무리 업적이 있더라도, 헌법 이념에 반하는 행동을 했던 사람을 개인이 아닌 시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독재자라고 하게 됐다."

- 겁나지 않았나.
"겁이 났다기보다는 이런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는 나라가 더 무서웠다. 겁이 났다면 애초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 학교에서 연합동아리 활동을 했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역사는 그냥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강자에 의해 쓰여 왔기 때문에 그만큼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진실을 보려고 노력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정규교육과정에서는 배우지 않은 그런 것들을 찾다보니 부당하고 옳지 않은 것들을 많이 알게 됐다."

- 촛불집회 때 가서 자행한 것인가?
"촛불집회와는 별개로 했다."

- 경찰조사는 받았나?
"지난 토요일(19일)에 구미경찰서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 조사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나의 행동에 대해 경찰이 왜 이 같은 행동을 했냐고 묻길래 '비정상적인 것에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은?
"모든 분들이 다 아실 것이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 사건뿐 아니라 잘못 인식되어온 역사에 대해서도 진실을 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그냥 포기하지 않고 학생들이 계속 투쟁했으면 좋겠다. 이번 만큼은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끝까지..."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많이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다. 사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저보다 진실을 찾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이번 일은 나뿐 아니라 누구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 단지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제 행동의 뜻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면 벌을 받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