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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홋카이도 양조장 견학기 (2)

니카위스키 양조장을 가다

  • 입력 2016.12.04 10:33
  • 수정 2017.01.13 16:34
  • 기자명 장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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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맥주 방문을 끝내고 삿포로시로 들어왔다. 삿포로는 1972년도에 동계올림픽을 치룬 도시다. 홋카이도 인구가 530만인데 삿포로에만 200만이 산다. 일본의 5대도시에 들어가는 큰 도시 홋카이도는 면적이 8만3천 제곱킬로미터로 남한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둑해지는 거리를 달려서 일단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식사의 메뉴는 불판에 각종 구이를 해먹는다고 한다. 이것은 일본의 전통음식도 아니고, 불판에 구어먹는 음식문화는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의 음식문화가 일부 접목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막상 음식점을 들어서보니 중국인들로 바글거린다. 우리 일행도 적은 수는 아니지만 중국인들의 숫자는 거의 몇 배에 달했다. 여행을 와서 이런 단체 여행객들이 다니는 음식점을 들어가보면 항상 짐짝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이다. 좀 고즈녁하게 할 수 있는 식사자리는 없을까. 여행에서 이런 아쉬움은 항상 갖는다. 단체여행이 갖는 어쩔 수 없는 속성이리라.

음식은 육류에서 해산물까지 무제한이라고 한다. 식탐보다는 주로 '술탐'을 하고 있는 우리 일행에게는 그런 음식들이 안주와 같은 역할을 했다. 바로 일본술의 술탐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우리 일행이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한국에서 하듯이 술마시고 소리높여서 왁자지껄 떠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한 순배씩 돌리면서 술맛을 음미하고, 분위기에 맞게 이야기 하고, 때로는 약간의 상기된 언성과 주변의 시끄러움 때문에 생기는 톤 조절 정도가 따를 뿐이다.

식사자리의 술은 반주와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 것이다. 음식문화는 독특한 기류를 형성하는 것 같다. 이 국적불명의 음식은 아마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생긴 것인 듯 싶다.

홋카이도 구도청사,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의회 건물을 본따서 지었다.
구청사 바로 옆에 있는 신청사, 초저녁인데도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구 본청사를 갔다. 붉은 벽돌 건물로 메이지유신 때 미국의 메사추세츠주 의사당을 모델로 한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쓰인 자재는 모두 홋카이도에서 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을 보고 있으니 마치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일제시대 지어진 건물의 모습을 연상했다.

현재는 이 건물이 청사를 사용하지 않고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내부는 당시의 사용하던 가구와 기타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개척 당시의 총독의 사진과 그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 건물은 홋카이도의 상징적인 건물이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 옆으로는 현재의 청사가 밤인데도 불이 훤하게 켜져서 버티고 있었다. 개척 당시에는 홋카이도가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에조티 공화국이 있었다고 한다. 에조티 공화국의 잔재는 없고, 또 아이누족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홋카이도 구도청사의 내부 모습

일본의 메이지유신 때 홋카이도의 개발이 시작되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와 한참 갈등을 빚은 시기와 일치한다. 일본의 팽창정책으로 홋카이도를 공략해서 원주민의 에조티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일본인을 이주시켜 개발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주한 일본인의 숫자가 자꾸 많아지면서 결국은 홋카이도는 완벽한 일본이 되고, 원주민도 자기들의 공화국은 기억 속으로 묻혀버리고 일본화가 되면서 부유한 일본인으로서 변질된 것이 것이 아닐까.

시내 곳곳에 당시 총독이었던 육군준장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물이 즐비하다고 한다. 아마도 홋카이도의 개발을 부각시킴으로써 현재의 풍요로움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을 저변에 심어놓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원주민의 민족성을 아예 말살시겼던 것은 아닐까. 침략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지나친 비약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헛 웃음치고 말았다.

호텔은 중심지에 위치한 Century Royal 호텔이다.
호텔 로비에는 홋카이도 지도가 있고 벽에는 최초의 일본인 총독인 육군준장이라는 사람의 사진이 붙어 있다. 총독이라고 하면 식민지를 지배할 때 파견된 관료를 말하는데, 홋카이도를 개발할 당시는 홋카이도가 일본의 식민지였고, 그들의 땅이 아니었던 셈이 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바쁘게 뛰어다니고, 모질게 살아야 부자가 되듯이 국가도 역시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모질게 하고, 끊임없이 여기저기 뒤지고 관리하던 국가들이 잘사는 나라가 되어 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요이치 증류소>

오타루로 가는 고속도로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있다. 일본의 고속도로는 눈이 오면 바로바로 제설작업을 한다고 한다. 특히 이 홋카이도는 개인이 제설차량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2-3미터까지 쌓여서 녹지 않는다고 한다.

둘째날은 오타루로 향했다. 오타루는 삿포로에서는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우리나라의 동해와 닿아 있는 곳으로 꼭 동해는 아니고 러시아를 바라보는 오오츠크해에 해당되는 곳이다.
 

오타루는 옛날에는 홋카이도 무역항으로 홋카이도에 들어오는 물자들이 오타루 항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현재는 육상교통이 워낙 발달하다보니 항구의 기능을 상실한 지역인데 그 항구의 자리에 있는 운하와 창고들을 이용하여 오르골과 유리공예를 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홋카이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빠지지 않고 방문한다는 것이다.

니카위스키 공장 입구

우리 일행은 일단 오타루의 끝에 위치한 요이치의 니카위스키 공장으로 갔다. 밤새 눈이 내렸다. 요이치로 가는 길목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 있지만 고속도로는 제설작업이 곧장 이루어져서 이동하는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 정도 눈이 오면 아마도 모든 교통이 마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곳은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눈이 끊임없이 내리다보니 이 정도의 눈은 눈도 아니라는 식이다.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겨울에 스노우 타이어를 끼지 않으면 벌금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차량들이 기본적으로 스노우타이어를 끼고 다니므로 눈길을 달려도 미끌림은 없다.

니카위스키 공장 입구에 있는 로고

요이치는 일본의 스코틀랜드라 부른다. 창업주인 타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는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냉량하고 습윤한 기후인 이곳에 공장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이 창업자의 술에 대한 열정과 창업자 부인과의 사랑이 더더욱 유명하게 한 듯 싶다. 

타케츠루의 부인은 영국인이다. 타케츠루는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위스키 제조법을 습득하기 위해 온갖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부인과의 사랑을 쟁취한 이야기들이 요이치 양조소를 명소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한 듯 싶다.

석탄을 이용한 증류가마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전통을 고수하는 이들의 정신은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이치 위스키는 1936년에 세워졌다. 공장내에는 창업당시 사용한 증류가마가 남아 있다. 또한 이 증류소는 전통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구리로 된 증류기에 아직도 석탄으로 증류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을 고수하는 그 장인정신은 참으로 존경할만하다. 공장내에는 석탄증류가마가 죽 늘어서서 가동이 되고 있었다. 온도계도 80도가 유지되게 한다.

증류온도는 80도이다. 증류기에 붙은 온도계

위스키는 증류주 중의 하나이다. 물이 100도에서 수증기가 된다면 알콜은 80도 정도에서 수증기가 된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곡류나 과일 등의 각종 재료로 술을 만들어서 이것을 80도씨에서 수증기로 만들고 이 수증기만 받아서 냉각시켜서 다시 알콜로 환원하는 것이 증류주가 된다.

증류주는 위스키류, 프랑스의 브랜디, 러시아의 보드카, 멕시코의 데킬라, 서인도제도의 럼, 브라질의 카샤사, 중국의 고량주, 일본의 소주, 이탈리아 그라빠, 우리나라의 안동소주, 문배주, 이강주, 진도홍주, 그 외에도 진, 리큐류 등이 증류주에 해당한다.

니카 위스키의 제조공정

위스키는 대표적인 것이 스카치위스키(영국), 아이리쉬 위스키(아일랜드), 아메리칸 위스키(미국), 캐나디안 위스키(캐나다) 자패니스 위스키 등과 같이 지역이름을 붙이고 있으며, 곡물은 보리, 밀, 옥수수 등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오크통은 백참나무로 만든다. 이 백참나무로 만들어서 통 안을 불로 태우게 된다.
니카위스키에서 사용하는 오크통

위스키는 그 제조과정이 일반화 되어 있다. 원료를 당화하고 발효시켜서 여과하고 압착하고 증류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특별하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그 제조원료의 종류, 제조과정 중의 첨가물, 숙성의 방법과 기간 등 다양한 조건을 부여하면서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이다.

숙성기간에 따라 위스키 량은 변한다. 기간에 따라 색깔도 점차 변해간다.

술이라 무엇보다도 발효라는 변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의 결과물로 인해 생기는 상이한 느낌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이런 다양성의 여러 가지의 현상들이 주는 것이 바로 매력이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은 알코올의 쾌락에서 점진적으로 자신을 추스르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스키 숙성보관중인 창고

술은 숙성을 어느정도 시키는가에 따라 그 가격이 달라진다.

17년산이면 17년을 숙성을 시키는 것이다. 21년산이면 21년을 숙성을 시키는 것이다. 보통 숙성은 오크통을 사용하여 숙성하고 있다. 오크통은 백참나무를 판재로 만들어서 내부를 탄화시켜서 만든다.

이 오크통을 저온에 보관하는 것을 숙성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발렌타인의 경우는 포르투칼 와인을 2년간 숙성시키고 난 오크통에 위스키를 다시 담아서 숙성을 시킨다. 이와 같이 숙성의 방법도 다양하게 하고 있으므로 위스키라도 만들어진 제품이 수없이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니카에서 생산한 다양한 위스키 종류

일본은 세계 5대 위스키 생산국이다.
이 홋카이도 외에 일본 본토에 가면 다른 증류소가 많다. 일본의 위스키 하면 대표적인 것이 이 니카 위스키 외에도 '산토리' 위스키가 있다. 산토리는 주류시장에서 맥주로도 유명하지만 위스키로도 유명하다.

위스키는 원료와 제조방법 가열온도 증류방식 등 여러 가지의 조건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달라지지만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숙성기간이 될 것이다. 제품을 만들고 이를 장기간 보관하면서 안고 있는 비용적인 부담이 바로 가격결정의 중요한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니카 위스키 박물관, 창업자의 개인용품과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

니카 위스키의 박물관은 창업자와 그 부인의 이야기, 기타 여러 가지의 사용하던 가재도구, 위스키의 원류인 스코틀랜드의 소개 등 상당히 세련된 전시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사용하던 것으로 보니 그 당시에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생활했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양조업을 했다면 아마도 부유했던 만큼 생활이 풍족했던 것은 짐작을 하겠다. 아마도 그런 풍요로움으로 창업자가 영국까지 유학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넓은 공간을 이리저리 지나면서 유도된 곳은 시음장이었다. 시음장에는 우리 일행뿐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가득 차 있었다. 특히나 중국인의 목소리가 상당히 크게 들렸다. 요즘 여행을 하면 중국인들의 시끄러움 때문에 한국인 여행객들이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과거에 우리도 여행 자유화가 되었을 때만 해도 해외에 나가면 상당히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말투의 톤이 높았는지, 여행에 대한 신기함이 사람을 더욱 들뜨게 했을까. 아무튼 요즘은 중국인에 비해 한국인은 비교적 조용한 관광을 즐기는 편이라는 것이 가이드의 이야기이다.

니카 위스키 시음장에 가득찬 사람들

시음장에서는 3 가지의 술을 맛보여주 고 있었다. 10년된 몰트위스키, 5년산의 브랜디, 포도주이다. 시음은 개인별 1종류씩 하지만, 시음을 위해 따라놓은 술잔을 보면 군침이 안 넘어갈 수 없다. 세가지 술을 모두 함께 모아놓고 조금씩 조금씩 시음을 했다.

술은 맛과 향이다. 향이야 좋다 나쁘다. 또는 무엇 같다는 등의 표현을 하지만 맛은 오미에서 출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다섯가지의 맛의 조화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지만 우리는 통상 보편적인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편성도 따지고 보면 주관적인 개념의 표현과 상호간의 의사소통으로 빚어지는 공감대일 뿐이지 절대적인 개념은 아닐 것이다.

시음장에서 내주는 술, 왼쪽부터 몰트, 애플와인, 브랜디

위스키는 역시 오래묵은 것이 좋다. 좋다는 것은 지극히 객관적이기도 하지만 일단 술잔을 기울이면 입안으로 퍼지는 그 야릇함과 혀 끝에 스치는 이상야릇한 긴장감, 목젓을 타고 넘어가는 짜릿함 등등 몸으로부터 오는 느낌에서 머리로 전달되는 흥분감이 바로 위스키가 갖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술꾼들은 또다른 느낌이 있을 테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표현이 전부인 셈이다.

시음장에서 서비스 하고 있는 점원과 시음잔들 시음은 자유로이 가져다 먹을 수 있다.

5년산의 브랜디가 목에 걸린 것에 비하면 10년산의 몰트위스키는 그래도 좀 나았다. 그러나 이들은 정말 좋은 술은 시음장에 내놓지 않는다. 한잔에 얼마씩 주고 마시라고 한다. 비교해보면 그 맛과 느낌이 틀리다고 한다. 그러나 위스키를 잘 모르는 나에게는 극히 그 감상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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