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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라는 이름...건달(?)들의 아호 갖기

귀농일기(7)

  • 입력 2016.12.11 23:06
  • 수정 2016.12.12 23:06
  • 기자명 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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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윤

장문인은 깨어났다. 회복실엔 투명한 창문을 투과한 새벽의 미명이 은은하게 비추어 들어오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사방은 태허의 혼돈을 방불케 하듯 고요했다. 적적한 의식의 경계만이 한 생명의 회복을 묵연히 지켰다. 그 빛은 점점 밝아졌다. 눈을 뜨니 새로 열린 세계는 맑고 투명했다. 또렷하고 명징한 의식 속에서 퍼 올린 하나의 이름, 그것은 다름 아닌 ‘보리’였다.

보리.

몇 해 전부터 아호로 쓰기 시작한 말이다. 도시와 문명으로부터 스스로 유폐한 이방인들의 상실감을 달래주기 위해 건달들은 한 가지 자구책으로 서로 아호를 짓자고 의견을 모았고, 그때부터 작명에 능한 장문인의 이름은 ‘보리’로 하기로 했었다.

보리라니,
처음 그 말을 생각했을 때는 보다, 관하다, 알아차리다, 뭐 이런 뜻으로 가볍게 ‘보리’, 라고 지었을 뿐이었다.

‘나’라고 생각되는 것들, 이를테면 몸, 감각, 마음, 이법 등을 보자, 알아차리자, 유식한 말로 통찰하자, 뭐 이런 뜻을 담아서.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왕이면 발음도 매끄럽게 나오는 걸로, 보리, 라고 부르니 듣기에도 좋았다.

이 보리란 이름을 바야흐로 시장에 내어놓으니, 어떤 이들은 겉보리라고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부인이 ‘쌀’이냐고도 물었다. 그런 와중에도 공부 좀 했다는 양반들은, 인도의 보리수를 연상시켜서, 보리란 ‘깨달음’이란 뜻이야, 바로 ‘지혜’를 뜻하는 말이지, 하면서 한껏 무게를 잡기도 했다.

건달 이름치곤 근사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회복실에서 깨어날 때 내 무의식의 저변에서 그 ‘보리’를 꼭 붙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단단히 붙잡고 놓지 않기로 한 것일까.

얼어붙은 동토에서 매서운 한겨울의 냉기를 온몸으로 간직하여 새봄을 피어올리는 강인한 생명력의 보리도 좋았다.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 냉혹할 지경의 겨울의 ‘독’이란 잘 모시어 들이면 오히려 그것이 ‘자양’이 되어, 제 때에 봄의 생명력을 충만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여름의 신명을 꽃피우게 할 것이고, 하여 가을의 결실을 알차게 맺을 것이었다.

ⓒ 김자윤

봄은 봄다운 꽃을 향그럽게, 그리고 아름답게 피워내야 할 것이야, 여름에 무성하지 못한 이의 인생무상의 노래는 허무함의 깊이에 다가서질 못하지, 그리고 가을엔 더 속 깊이 타들어가서 더욱 충실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다음 생의 인과를 대비해야 해, 그리고 겨울엔 잘 갈무리하고, 잘 정리해서, 깃털처럼 가볍게 하늘이 품부한 생명의 인과를 되돌려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꽃과 나무를 무척 좋아했던 보리의 일상에 즐거운 일이 한 가지 늘었으니, 보리수나무를 심는 일도 거기에 들었다.

좁지 않은 뜨락에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보리의 건달 생활 중 가장 즐겁고 보람된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장터를 뒤지거나 이웃집 마당을 둘러볼 때면 보리의 초롱한 눈빛이 더욱 빛을 내었다.

 

이십 리 쯤 떨어진 만수동의 목수건달네 집이 그래도 모든 면에서 앞서갔기 때문에(귀농 최고참), 그 집 뜨락을 기웃거리는 재미가 은근히 쏠쏠하였다.

목수건달네 뜨락은 기역자 한옥이 두른 앞마당과 주변의 꽃밭과 나무가 잘 어울려 있었고, 사시사철 꽃 잔치가 쉴 틈 없이 계속되는 진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당시 내 눈(아직 덜 뜨인)에 비친 그 집의 꽃마당은 주인 양반의 선각적이고 고급한 취향을 반영하듯, 꽃과 나무들이 종류를 알 수 없도록 가지가지였다.

게다가, 즐비한 꽃과 나무들을 감싸듯 사철이 푸르른 차밭이 기품을 더하고 있었으니, 차향인지 사람향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그윽한 향취가 뜨락을 가득 채웠다.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꼬옥 빼닮은 듯한 그 집 정원은 그곳을 출입하는 모든 지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 김자윤

여러 건달들이 운집한 가운데 제법 규모 있고 체계 있게 귀농 신고식을 치룬 곳도 바로 이 목수건달네 집 이었다.

이제 갓 신고식을 치룬 귀농 완전초자의 입장으로선, 최고참 집 정원의 꽃과 나무를 겁도 없이 욕심낼 처지는 물론 아니었다.

그런 나의 저어한 심사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이 양반은 과감하게 삽을 들고 나섰다. 그러고선 상사화, 꽃무릇, 구절초, 수선화 등의 꽃무더기를 용감하고 무식하게 파내어서 봉지에 담아주었는데, 그 기세가, 마치 봉지를 받잡고 초조하게 쭈그려 앉아 고참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입의 짠한 처지에 사뭇 대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리수 나무 한 그루를 얻은 곳도 바로 이 목수건달네 집이었다. 그때 이 양반은 제법 폼 나게, 이 보리수나무의 내력과 의미에 대해 전문가적 해설을 덧붙이는 한편, 나무 밑둥에 붙어 자란 자그마한 곁가지 하나를 기술 좋게 떼어내 나에게 분양해주었다.

그리하여 본가의 줄기 밑에 곁뿌리로 난 조그만 묘목 보리수는 보리네 보리수의 귀한 종자의 인연으로 이식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왕 심은 김에 포리똥이라고 불리는 왕보리수나무도 몇 그루 심었으니, 그로써 보리의 보리수나무에 대한 욕심은 그치기로 하였다.

왕보리수는 앵두나무와 같은 관목이다. 가느다랗게 여러 갈래로 뻗은 가지 위에 열매가 열린다.

가지 위에 치렁치렁 흐드러지게 매달려, 보기에도 볼그족족한 열매의 태깔과 모양은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다.

새콤달콤한 열매를 따먹는 재미는 맛보지 않은 자와는 논할 수 없겠다.

보리수의 음덕으로 밝게 열릴 ‘보리’의 세상이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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