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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인의 특질은 "화(和), 의(義), 용(勇)”으로 요약

박종길 위원장 ‘여수넷통 연말 특강’에서 강조

  • 입력 2016.12.20 22:43
  • 수정 2016.12.25 12:25
  • 기자명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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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조화'의 전통... 2012엑스포 성공시켜
‘의로움’은 여수 의병 봉기 횟수에도 많이 나타나.
‘여순사건’도 재조명하면 ‘정의로움' 분명 있어...
‘약무여수 시무국가’여도 무방할 정도.  
여수의 선조들은 임란승리의 당당한 주역.

박종길 위원장(여사연 문화사회위원회)은 여수인의 특질을 “화(和), 의(義), 용(勇)” 세 단어로 요약했다,

여수넷통(대표 엄길수)은 지난 19일 사무실에서 향토사학자 박종길 위원장(여사연 지역문화위원회)을 초청해 ‘여수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연말 특강을 실시했다.

박종길 위원장은 특강에서 여수 사람의 특질을“화(和), 의(義), 용(勇)” 세 단어로 규정하고, 역사적·지정학적 배경에서 기인하는 그 특성을 차근차근 풀어 나갔다.

그는 30만 도시에서 ‘2012 세계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고 주장했다. 여수에서 세계적인 이벤트를 성공리에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여수인의 특질속에 들어있는 ‘화합의 정신, 포용의 정신’있어서 가능했다는 것.

일례로 조선시대 하멜이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막바지에 여수에서 지내고 나서 본국으로 갔는데, “당시 여수사람들의 포용정신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견디지 못하고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병사했거나 처형당했다면  “세상에 ‘하멜 표류기’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고 밝혔다.  당시 ‘이도빈’ 좌수사(요즘의 여수시장)의 ‘포용의 리더쉽’도 언급했다.

정의로움과 용기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로 표현되는 문구에서 찾았다. 그는 ‘호남’대신 그대로 ‘여수’를 넣더라도 그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을 정도로 당시 전라좌수영, 즉 여수는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위해 일치단결하고 함께 힘을 합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도왔던 당시 선조들의 의로운 정신은 매우 값진 것이고,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여순사건’에 대해서는  ‘반란’으로 매도됨으로써, 정의감이랄지 용기를 모두 ’반란‘의 틀로 가두어버림으로써 제대로 평가받지 못함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했다.  당시 14연대 주둔군들이 동족끼리 살상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제주도 출병을 거부했는데, 엄밀히 따져서 ‘동족살상반대’같은 군인들의 구호에는 여수사람들이 능히 동조할 만한 수준의 정의감이 들어있었단 얘기다.

지난 17일 여수넷통 연말 특강에 참가한 독자들에게 박종길 위원장이 PPT 강의를 하고 있다.

특강 내용중 “화(和), 의(義), 용(勇)”이 여수의 특질인 이유에 대한 박종길의 언급을 요약했다.

"특질은 곧 여수인의 핵심 의식일 것인데, 이는 '화합하고, 함께 하려는 마음'이다.
여수서는 ‘항꾸네’라고 하는데, 그걸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이는 곧 조화, 화합, 포용, 배려의 정신이다. 역사적으로도 보면 ‘하멜’의 사례도 있고, 동아시아의 항로상 중요거점으로서 세계인들과 함께 했던 사례가 있다.

거문도에서 영국군과도 필담으로 서로 돕고 소통하며 평화롭게 지낸 것들이 사진에도 나타난 걸 보면 ‘화합’하는 정신이 분명 여수인의 특질 속에 담겨있다”

“요즘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여수 시민들의 반발도, 바로 정의감이라고 본다.
불의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의로움'이다. 여순사건 당시도 목숨이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친구를 따라가고 정의감을 택했던 사례들이  많았다.

의병들의 봉기횟수도 여수는 인근 지역중 압도적이다. 현재 시민사회 단체들의 활발한 활동도 따지면 ‘의로움’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라고 본다. 지역을 사랑하고 주변 동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런 것이 바로 의로움 아니겠나?”

“용(勇)은 용기다. 지정학적으로 여수가 왜구로부터 침략대상이되는 중요지점중 하나였다. 지금이야 동력선이 있으니까 부산이 가깝지만, 백제나 고려, 조선시대때는 해류를 따라 움직여야 해서 일본측에서는 부산보다 여수가 더 닿기 용이한 곳이었다.

여수지역이 왜구 침입 사례가 훨씬 많은 역사적인 기록이 있다. 수 백년 왜구 침입에 대해 맞서야 했고 싸워야 했다. 여수 인근의 20여개 산성이 있는데 이게 그 증거이기도 하다. 

화합정신, 의로움 이런 걸 실천해 내는 힘은 바로 용기다. 임진왜란의 출전도 용기인 것이다. 임란 승리의 원동력 또한 용기다. 우리 여수인은 이렇게 용기, 의로움, 화합정신들을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자랑스런 후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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