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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도인, 빈목과의 만남...

귀농일기(8)

  • 입력 2016.12.21 14:03
  • 기자명 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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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윤

내가 빈목을 만나게 된 것은, 돌이켜 보건데, 어떤 운명적인 사건, 혹은 사고와 같은 것이었다고나 해야 할까.

1995년 가을,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모후산 서쪽 자락의 조그만 마을 야동에서, 마당이 아늑한 소담스런 옛날식 한옥 한 채의 개수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비록 내가 살 집이라고는 해도, 놀고 먹고 노닥거리는 재주밖에는 내노라할만한 이렇다할 재주가 없는 기계치로선, 직접 망치를 들고서 집수리를 한다는 건 애시당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까닭에 먼저 자리를 틀고 있는 귀농 선배들에게 아쉬운 청을 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공사는, 한두 해 앞서 옆 동네 동복 강변에 자리를 잡고 들어와서 손수 집을 지어본 경험과 노하우를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는 매형건달이 맡았고, 역시 그 보다 조금 일찍 능주골에 들어온 염색도인 토벽건달,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너른 들판이 복잡다단하게 펼쳐진 나주골에 흘러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차 선생 무골도인이, 의기를 투합했다.

노가다판이란 본시, 구라 푸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빼면 시체다. 막걸리에 김치가 기본 안주거리가 되지만, 아침밥을 거르고 오는 일꾼들에게는 라면을 삶아주는 것도 주인이 알아야할 상식이다.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베개 삼아 진땀을 빼다 보면 그놈의 배는 왜 그리도 참을성이 없게 고파오는지. 물 좋고 인심 좋은 사평 막걸리 한 사발에 시큼한 김치나 깍두기에 날두부 한 모 얹어 안주를 삼으니, 술술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구라 덕에 김삿갓이 부럽지 않다.

구성진 입담에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조차 더해지니 육신의 피로는 살랑거리는 봄의 미풍을 맞아 씻긴 듯 사라지고, 제 흥에 겨운 망치질 소리만 앞 산등성이를 두드리니, 모후산 산신도 덩달아 신명나 들썩거릴 듯.

ⓒ 김자윤

언제부턴가 꾸어왔을 오랜 꿈의 실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주인의 인심은 넉넉하기만 하다. 구한옥의 정지 칸에 무너질 듯 위태롭게 한쪽 발로 새우돋움으로 버티고 서 있던 기둥을 똑바로 세우니, 마치 기울어진 척추를 바로 잡은 듯 단정한 맵시가 나온다.

연탄보일러에서 나온 가스에 오랜 시간을 두고 삭아서 부석부석해진 함석 물받이도 뜯어내어 새 걸로 교체했고, 실외의 정지는 실내로 끌어들여 단정한 사랑방을 만들었다.

안방과 사랑방 중간에 있던 마루바닥의 광이 있던 자리에 입식부엌을 만들어 주방과 거실 공간으로 거듭났고, 화장실엔 조그만 욕조도 하나 넣으니 애들도 좋아한다.

군데군데 비가 새는 지붕 위의 기와도 새것으로 교체하니 소담스런 집채의 외양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하아, 참 모를 일이군. 집이든 사람이든 단장은 하고 볼 일이야.

ⓒ 김자윤

마루 건너편 사랑방은 구들을 그대로 지켰다.

나의 소싯적 경험으론 아궁이에 불을 때는 재미만큼 좋은 건 없다. 불을 지피다가 심심하면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별빛이 무지 총총한 어느 날엔가는 뭇별들을 탐사하는 별나라 여행을 떠나야지. 북두칠성에 올라타서 겅중겅중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상사병으로 먼저 돌아간 깨복쟁이 동무가 지독히 사랑했던 삼태성에 올라서는 동무의 안부를 물을 거야. 그 여인을 용서했는지,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지.

해왕성은 어디 있을까. “저별은 나의 별, ...” 노래를 추억하며, 내 별자리의 속내도 캐내고 말거야. 아 그리고, 수성엘 가면 반드시 숫자 5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테니, 나의 급한 성격과 성격심리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거야.

기실 주인이 가장 신경을 쓴 곳은 다름 아닌 마당과 꽃밭이다. 뜨락의 꽃밭을 정갈하게 정돈하고 돌을 골라내어 작은 돌들을 모아다가 마당과 꽃밭의 경계를 지었다. 어렸을 적 골목의 귀퉁이에 새들어 살았던 작은 집의 비좁은 구석마당에다, 코스모스며 분꽃이며 채송화를 심고 뿌리고 정성을 다해 가꾸었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달콤했던 꽃내가 아직도 내 전신의 세포 구석구석에서 스멀스멀 베어나오는 것 같다.

가난했을지라도 그것을 부끄러이 여겨본 적은 없었다. ‘단순 소박한 삶’, 마음속에서 한 번도 잊고 살아본 적이 없는 나의 꿈, 나의 삶이 바야흐로 지금, 여기에, 지어지고 있었다.

빈목은 서울서 산다고 했다. 첫인상이 날렵하고 매끈했다. 자기는 천 미터 이하의 산은 산도 아니고 그런 곳은 도 닦는 사람이 들어갈 곳이 못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 말이 내내 생채기처럼 걸렸다.

내가 지금 깃들어 살고자하는 모후산의 높이를 금방 생각해내었다. 918미터밖에 안 되었다. 속에서 알 수 없는 뭔가 찜찜한 기분이 치켜들었다. 좀 전에 마신 막걸리가 속에서 부글거렸다. 그러다가는, ‘도’라니, 까짓 거 닦지 않으면 그만이지, 하고 심사를 다독였다.

 

자기는 지난 오년 동안 도 닦을 장소를 물색하느라고 천지사방을 안 가본 곳이 없으며, 지도를 놓고 그 중에 천 미터 이상 되는 산만 고르고 골라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전문적인 노력과 연구의 성과로, 지금은 그 후보군이 다섯 군데로 좁혀졌는데, 그 중 여러 생각과 정황을 검토해 봤을 때 무등산 영평에 97% 낙점을 하고 있다.

비록 산자락이라도 산의 정상이 바로 보이는 곳이 아니면 일단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실은 오늘도 거기 영평 가던 길에 우연히 이곳을 들렀을 뿐이다,

뭐 이렇게 구라를 떨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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