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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도에서 한반도의 아픈 역사를 보았다

청일전쟁의 발단이 된 풍도해전

  • 입력 2016.12.23 12:00
  • 수정 2016.12.24 00:00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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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론으로 하늘에서 바라본 풍도 모습
 드론으로 하늘에서 바라본 풍도 모습
ⓒ 오문수

 


지난 주말에 지인과 함께 안산시에 있는 조그만 섬 풍도를 방문했다. 행정자치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으로 도서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2016년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섬'에 선정된 풍도.

안산 단원구 대부동에 속한 섬으로 북위 37°, 동경 126°에 위치한다. 고려말부터 조선말기까지 단풍이 아름답다고 해서 '풍도(楓島)'로 불렀지만 섬주변에 수산자원이 풍족해 '풍도(豊島)'로 바뀌었다고 한다.
 

 수령 5백년된 은행나무가 겨울이라 옷을 벗었다. 가을에 풍도해역을 지나는 뱃사람들이 이 은행나무의 단풍을 보고 풍도인가 아닌가를 구분했다고 한다.
 수령 5백년된 은행나무가 겨울이라 옷을 벗었다. 가을에 풍도해역을 지나는 뱃사람들이 이 은행나무의 단풍을 보고 풍도인가 아닌가를 구분했다고 한다.
ⓒ 오문수

 


면적은 18.8㎢, 해안선 길이 5.5㎞에 불과하지만 가장 높은 후망산은 176m로 섬의 크기에 비해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한다. 대부도와 24km, 육도와 4.5㎞ 떨어져 있으며 인근에 승봉도, 대난지도, 대이작도 등이 있다.

섬모양은 둥근 편이며 후망산과 함께 176m 높이의 산이 남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서쪽과 남쪽은 경사가 급하다. 또한 파도의 침식으로 인해 해식애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지형이 나타난다.

풍도는 인천에서 정기 여객선을 타고 2시간 정도 걸리지만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는 1시간 반쯤 걸린다. 풍도는 모래사장이 없기 때문에 피서객은 많지 않고 주로 낚시꾼들의 발길이 잦다. 때마침 풍도행 배에 동승한 4명 중 한 명이 풍도에 가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안산시에 살고 있어요. 퇴직 후 풍도에 집을 마련해 살려고 풍도에 들어가는 중입니다. 풍도는 바닷가에 모래사장이 없어 도시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아서 사람 때가 묻지 않았죠."

선착장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니 고기 말리는 모습이 지천에 널렸다. 간잽이와 임연수어 등을 말리고 있는 부부에게 다가가 "간잽이가 이렇게 많이 잡혀요?"라고 묻자, "많이라니요. 이만큼 잡아서 밥 먹고 살겠어요? 이 정도면 기름값도 안 나와요"라고 대답한다.
 

 선착장 인근에 널려있는 말린고기들로  간잽이가 대부분이다.
 선착장 인근에 널려있는 말린고기들로 간잽이가 대부분이다.
ⓒ 오문수

 


낚싯배를 운영하는 경일호 선장이 주민들의 생활상에 대해 설명해줬다. 풍도는 3월초부터 12월초까지 낚시객들이 들어온다. 낚시 손님이 없을 때는 고기잡이에 나서며 주로 광어, 우럭, 놀래미, 장어, 쭈꾸미가 잡힌다.

고기가 많이 잡힐 때는 대부도나 영흥도 위판장에 가서 팔지만 적게 잡을 때는 고기를 말린다. 육지까지 나가 위판하려면 기름값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말린 고기는 봄, 여름 관광철에 섬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판다.
 

 풍도소재지 모습. 현재 1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주민의 80%가 노인들이다
 풍도소재지 모습. 현재 1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주민의 80%가 노인들이다
ⓒ 오문수

 


섬 소식을 보다 자세히 들으려면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촌로들의 이야기가 제격이다. 하여 노인복지회관을 찾아가 노인회장 김진현(78세)씨를 만나 자세한 내막을 들었다.

한창 때는 1천여 명의 주민이 살았다는 풍도에는 현재 주민 120명이 살고 있다. 하지만 주민 80%가 노인들로 거의 대부분이 노인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보건소도 없어 대부도 보건소에서 한 달에 한 번 낚싯배를 대절해 들어와 진료를 한다. 가장 불편한 점은 갑작스럽게 환자가 발생할 때이다.

야생화 천국으로 알려진 풍도, 야생화 사진기자들이 자주 찾는 곳   
 

 풍도 정상부분에 있는 야생화단지 모습. 겨울철이라 야생화들이 동면에 들어갔다.
 풍도 정상부분에 있는 야생화단지 모습. 겨울철이라 야생화들이 동면에 들어갔다.
ⓒ 오문수

 

 

 풍도의 아름다운 바위들. 여름에 풍도를 찾는 야영객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풍도의 아름다운 바위들. 여름에 풍도를 찾는 야영객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 오문수

 


야생화 천국으로 알려진 풍도에서는 복수초, 노루귀, 변산 바람꽃, 천남성 등 아름다운 야생화를 볼 수 있어 꽃피는 계절에는 야생화를 찍기 위해 사진기자들이 많이 온다.  

이 밖에도 '풍도'는 '북배'라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 붉은 바위와 '북배딴목'이라는 수탉이 우는 형상을 한 바위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며, 올해 개장한 어촌체험마을에서는 다양한 체험의 장도 마련되어 있다.

아름답고 물 맑은 풍도에 조선반도의 운명을 바꾼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바닷길을 이용해 중국에서 우리나라 중부(평택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산 앞바다를 거쳐야했다. 또한 남해에서 서해를 거쳐 서울로 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중요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풍도 앞바다는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 정박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충청도 서산과 당진, 경기도 평택, 중국과의 항로를 사방으로 감시하기 좋은 곳이라서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다. 노인회장인 김진현씨의 얘기다.

"내 어릴적에는 항구에 풍선이 50~60척 정도가 떠 있었어요. 풍선들은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화물을 실어 나르는 배였어요. 그만큼 교통의 중심지라는 의미죠"

오늘날도 인천에서 영흥도 대부도를 거쳐 풍도로 가는 항로는 대형 선박이 다닐 수 있는 '본선'이란 항로로 이용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풍도인근에는 대형화물선들이 수시로 지나가고 있었다.

청일전쟁의 시작을 알린 '풍도해전'이 벌어진 곳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일본과 청나라가 개입했다. 청나라는 여전히 조선과의 종주권적 관계를 유지하려 했고 일본은 동학농민운동을 빌미로 조선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 당시 아산만에는 3천 명의 청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일본은 아산만의 청나라 군대를 봉쇄하려 했다.
 

 좌측에 보이는 승봉도 방향을 향해 대형 화물선이 항해하고 있는 이 해역이 풍도해전이 일어났던 곳이라고 한다. 풍도해전은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됐고 승리한 일본이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삼게 된 계기가 된 해전이다
 좌측에 보이는 승봉도 방향을 향해 대형 화물선이 항해하고 있는 이 해역이 풍도해전이 일어났던 곳이라고 한다. 풍도해전은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됐고 승리한 일본이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삼게 된 계기가 된 해전이다
ⓒ 오문수

 


1894년 7월 25일 이른 아침, 일본해군과 청나라 해군간에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고 일본측 사상자와 함선의 손해는 전무했다. 반면에 청나라 측은 순양함 1척과 상선 1척이 격침되고 포함 1척이 나포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후 두 나라는 전면전쟁에 들어갔고 청나라가 패했다.

풍도해전은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지만 일본에서는 대단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지도와 함께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풍도 선착장 인근 커다란 바위 앞에 있는 풍도소망탑 모습. 풍도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도길 바라며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풍도 선착장 인근 커다란 바위 앞에 있는 풍도소망탑 모습. 풍도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도길 바라며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 오문수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전쟁을 벌였던 풍도해전. 이어진 일제의 식민지배. 육지로 돌아오는 배에서 힘없는 국가의 백성들이 얼마나 당하고 살았던가를 생각하며 부유하고 강력한 군대를 가진 대한민국을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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