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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분권자치·협치, 대선 나선 박원순의 키워드

[이메일 인터뷰] 박원순 시장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

  • 입력 2017.01.14 07:59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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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여수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박원순 시장(2016.12.24)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여수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박원순 시장(2016.12.24)
ⓒ 오문수

 


지난해 12월 24일(토) 오후 5시, 여수 흥국체육관 앞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여수시국시민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현 시국을 낳은 박근혜 정권을 비판한 후 "국민이 명령한다면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역사의 전면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대선전에 뛰어들 것을 선언한 셈이다.

필자는 여수 아름다운 가게 운영위원 총무와 희망제작소 회원으로 활동하며 박원순 시장과 두 차례 해외여행(뉴욕의 지역재단 탐방, 실크로드 역사탐방)과 국내 10여 지역을 동행하면서 가까이서 그를 지켜봤다.

8년간 그를 가까이하면서 박 시장의 인간적 면모와 대한민국에 희망을 던져주려는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희망제작소 회원 중에는 대법관을 지낸 분과 판·검사, 국회의원, 대학 총장, 교수, 기업체 사장 등 내로라하는 분들이 모였다. 당시 필자의 직업은 중학교 교사. 속된 말로 회원 직업군 중에서 가장 하위직이어서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은 나에게 항상 "선생님 왜 뒤에 계셔요. 이리 와서 제 옆자리에 앉으세요"라고 권해 나를 감동케 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정치적 욕심 때문에 서울시장의 길로 들어선 거로 잘못 알고 있다. 해서 그가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살아왔던 내력을 듣고 결국 대권 도전의 길로 나서게 된 연유와 대한민국혁신 계획을 들어보았다.      

우연히 정치권에 들어왔다가 대권 도전에까지 나선 박원순.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걸어왔던 길을 보면 알 수 있다. 박원순은 평생 인권변호사로 살아오다가 참여연대에 들어가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해 부패한 정치권을 떨게 했고,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설립 후 서울시장직까지 수행하고 있다. 그에게 살아온 내력과 대한민국을 혁신하려는 비전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박 시장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 사법고시 합격 후 대구지검 검사를 하다 인권변호사로 나서게 된 연유가 궁금합니다.
"검사직은 저한테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옷 같은 것이었습니다. 검사는 사람을 가두고 벌주는 일인데,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어요. 피의자의 딱한 사정을 동정하고 오히려 피의자 편을 들기도 했고, 기소 해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자꾸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구형량을 둘러싸고 부장검사, 차장검사에게 혼나기도 했죠. 법원 주변 사람들은 검사가 '관선 변론'을 한다며 기이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검찰 문화도 거북했고, 검사로서 사형집행에 임석해야 하는데 그 일도 힘겨웠습니다. 폭탄주와 술자리 문화는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당시 영감으로 불리며 권위와 권세를 누리고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1년 만에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었고, 조영래 변호사를 만나며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 인권변호사를 하다 참여연대에 들어가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하면서 부패한 정치권 인사들을 떨게 했는데요. 당시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한 배경은 무엇이며 그 후 정치권이 달라졌나요?
"당시 IMF 경제 위기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다른 부문은 강제적으로나마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비해 정치권은 여전히 개혁의 무풍지대였습니다. 1999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참여연대 등 40여 개의 시민단체가 '국정감사 모니터시민연대'를 결성하고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기로 했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상임위에서는 시민단체 방청마저 불허했어요. 더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어갔고, 새 천년을 맞아 정치개혁을 위한 비상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총선연대 활동을 하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특정인을 낙선시켜야 한다며 지목하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그러나 이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작년 8월 16일 아침 휴가차 여수에 들른 박시장 부부가 석천사에서 1박을 마치고 순천으로 향하고 있다 ⓒ 오병종


- 아름다운재단의 전신이랄 수 있는 영국의 옥스팜과 미국의 지역재단은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기금을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고 지역발전과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가장 대표적인 캠페인이 1% 캠페인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의 1%로만 기부하는 겁니다. 월급의 1%, 인세의 1%, 축의금의 1% 이런 식으로요. 아름다운재단이 생기기 전에 기부는 부자들만 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재단은 누구나 나눌 것이 있다는 철학으로 캠페인을 전개해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모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투명성입니다. 그래서 재단에 대한 투명성을 가장 핵심전략으로 삼아 모금과 배분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고 모든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재단으로서는 이례적인 것이었죠. 그랬더니 시민들의 신뢰가 축적되고 모금도 잘 됐습니다. 저는 아름다운재단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행정에도 정보공개와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청와대 문제도 권력이 독점되고, 투명성, 책임성이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가게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재활용과 환경오염을 방지하고 고용창출에도 기여했습니다."

-아름다운가게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공익목적에 사용한 총액과 전국의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는 상근 직원과 비상근 직원 수가 몇명이나 되나요.
"지금은 바뀌었을 거 같은데요. 제가 시장 나오기 전에 매출이 300억 정도 되고, 상근자만 350여명이었던 거 같아요.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라고 했었죠. 가장 성공한 사회적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싱크탱크인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와 헤리티지 재단, 일본의 정경학숙을 모델로 삼아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기 위해 설립한 희망제작소가 전국의 지자체와 공공기관 개혁을 위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말씀해주세요.
"희망제작소는 시민과 함께 정책 생산, 지역으로부터 희망을 찾는 사업들을 주로 했습니다.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특히 지방정부는 여야의 진영의 논리에서 자유롭고 현장을 바탕으로 한 실천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시장학교, 목민관클럽 등을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이곳 출신 중에 괜찮은 분들이 꽤 있어요. 이러한 철학이 지금까지 이어져 시민의 정부를 꾸린 것이나 지방분권,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개헌을 주장하는 이유도 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MB정부에서 탄압 받고 정치 결심"

- 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의 탄압으로 안국동에 있던 희망제작소 연구원 150명 중 100여명을 울며 떠나보내고 현재의 위치로 이사 가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세요.
"희망제작소의 사업이 번번이 좌초되고, 희망제작소가 휘청거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저와 관련된 기업인들에게 국정원에서 연락이 온다든지, 제가 강의를 가면 정보과 형사들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사찰의혹을 제기했더니 국정원이 즉각 나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어요. '피고 박원순' '원고 대한민국' 아니,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제기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어쨌든 나와 희망제작소를 탄압하고 위축되게 만들었습니다. 2009년 원세훈 국정원장 때부터 시작하여 시장이 되고나서도 박원순 제압문건이라는 것이 작성되었고 실행됐습니다."

-희망제작소회원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정치권에 나서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시장님은 "정치권에 나가면 사람이 망가진다"며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영국으로 외유를 다녀왔을 때 "어디 다녀오셨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정치권에서 총리를 맡아 달라, 장관을 맡아달라고 요청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가서 공부 좀 하고 돌아왔습니다" 하고 빙그레 웃으셨는데, 어느 날 저한테 "이명박 정권의 탄압이 심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선생님,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두대간 종주 중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찬반투표 후 하산해 서울시장에 당선됐습니다. 그 때 저도 동행하기로 했었는데 몸이 아파 불참했었지요.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세요. 
"그동안 정치권으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아왔지만, 나는 평생 시민운동가로 현역에 남아있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그러나 MB정권에서 탄압을 받고 마음에 동요가 있었습니다. 나만의 문제라면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참아 넘길 수 있지만, 세상이 온통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죠. 고민하며 백두대간 종주를 하던 중에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 소식을 들었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느껴 보궐선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박근혜 정권과 여러 번 대립각(메르스사태, 국무회의 등)을 세울 때는 설문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보다 앞서기도 했습니다. 박 시장 지지율이 하향한 것은 '가랑비에 옷 젖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원순의 영향력이 무서운 보수 세력과 단체로부터 몇 가지만 열거해주세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박원순 제압문건에 따른 조직적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문건에 보면 '국정안정을 저해함은 물론 야세 확산에 기반을 제공하고 있어서 면밀한 제어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박 시장에 대한 불만 여론이 형성될 때까지 자료를 수집 축적하고 있다가 적기에 터뜨려서 제압하라. 또 어버이연합 등의 집회, 항의방문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독려하라' 등등 아주 세부적이고 집요한 공작이 있었다고 봅니다."

"기득권 권력 해체, 권력은 최대한 분산 시켜야"

- 시장님께서 낡아빠진, 부패한 정치판을 바꾸겠다고 하시면서 검찰과 청와대 권력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개혁방안을 말씀해주십시오.
"우선 기득권 권력을 해체하고 권력은 최대한 분산시켜야 합니다. 청와대의 권력을 내각과 의회에 분산시키고,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지역혁명이 가능하고, 지방의 르네상스가 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재벌과 검찰의 특혜를 없애고, 이들의 권력을 해체해야 합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부패한 기득권 권력을 철거한 땅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항상 불안하게 하는 상수로 꽉 막힌 남북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해법은 무엇일까요?
"대화가 수단이고 평화가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보수 정권 10년 동안 대화가 단절됐고 평화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남북 간의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해요. 특히 개성공단을 없앤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개성공단은 경제협력지구일 뿐만 아니라 소통 채널입니다. 하루속히 재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 관계에만 갇히지 말고 시야를 확장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중·일·러 등 모든 국가들과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협력과 통합의 새 질서를 만들어 가는데 우리가 주도해야 합니다. 한미동맹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 주도의 동북아, 한반도 정책을 전개해야 해요. 지금이 바로 그 적기입니다.

저는 한반도 평화경제 뉴 패러다임으로 북방뉴딜을 제안합니다. 북방뉴딜은 우선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한반도 종단철도를 연결하고, 하산, 연해주 일대의 러시아 땅, 우리의 자본과 기술, 북한과 중국의 노동력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북방뉴딜은 우리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우리 경제에도 활력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희망은 지지 않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작년 8월 여수애서  남긴 메세지 ⓒ 오병종


- 시장님께서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야 할 청소년들이 매일 1.5명씩 자살한다고 말하며 교육문제를 이대로 둘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를 풀어나갈 해법은 무엇일까요?
"제가 모든 해법에 공통으로 적용하는 철학은 집단지성, 분권 자치, 협치의 세 가지입니다. 이제 똑똑한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개혁을 외치고, 정책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뜨겁고, 누구 한 사람 관계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교사, 학부모, 학생들까지 함께 토론하고 중지를 모으는 전국민교육개혁운동이 필요합니다.

우선 교육을 하나의 틀에 가두고 통제하고 억압하는 교육부는 폐지하고, 교육 주체 간 협력을 촉진하는 네트워크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시도 교육감들의 자치권, 학교의 자율성, 교사들의 교육권, 학생들의 자율과 자치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교육 자치운동이 들꽃처럼 피어나야 합니다."

- 시장님께서는 "재벌들이 700조나 되는 돈을 곳간에 쌓아두는 동안 서민들은 1300조나 되는 부채를 짊어진 채 신음하고 있는 이게 나라냐?"고 통탄하셨습니다. 재벌개혁과 소득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해소책은 있나요?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국가와 재벌 대기업이라는 앞바퀴에 동력을 보내서 굴러가고 뒷바퀴는 따라오는 전륜구동 방식이었습니다. 재벌 대기업의 특혜는 없애고, 성장과 분배를 구분하지 않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과 복지 네 바퀴가 동시에 굴러가는 사륜구동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른바 네 바퀴 경제론이죠. 이미 서울시에서 시행 중인 경제민주화, 노동존중정책, 복지정책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이 잘 되고, 노동자가 잘살고, 누구 한 명도 낙오되지 않고 일정한 수준의 삶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 누구든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생애주기별 기본소득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승자독식' 현행 소선거구제 반드시 개편해야"

- 정치권 개혁도 시급합니다. 국회의원 하려면 검사나 판사 경력이 있거나 돈이 많아야 합니다.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도 정치권에 들어가 서민들을 대변하는 정치판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
"문제는 정치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정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부작용이 심각한 문제 중 하나에요. 국민적 토론과 합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중대선거구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구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명성만 가지고 하는 정치문화도 사라져야 합니다. 지역에서 발로 뛰어온 경험이 있는 사람, 지역에서 시민의 삶을 바꿔본 경험, 지역 정치, 풀뿌리 정치를 경험한 사람이 중앙정치에도 진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지금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면서 아우성입니다. 자영업자, 중소기업, 소상공인도 열심히만 하면 잘 살아갈 방법이 있나요? 현재의 경제난을 헤쳐 나갈 방법을 말씀해 주세요.
"경제민주화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특권, 특혜를 없애고, 중소기업, 소상공인이 잘살 수 있도록 보호하고 활성화하는 겁니다."

- 좋은 정치는 좋은 사회를 낳고 좋은 사회는 좋은 경제를 만든다고 합니다. 역대 대통령 재임 시절 1인당 GDP가 증가한 통계치를 보면 김대중 4687달러, 노무현 8887달러, 이명박 3981달러, 박근혜 1486달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개인 국민소득 증가율이 가장 높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꼴찌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경제정책을 펴나갈 것인지요?
"불평등 해소가 가장 효과적인 경제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평등, 불공정 요소를 없애면 그로 인해 억눌렸던 잠재력이 성장동력으로 전환된다고 봅니다. 또한, 통찰력을 가지고 미래의 기회 요인을 빠르게 파악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에 투자하고, 북방뉴딜과 같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도 해야 합니다.

답변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재임시절 핀란드를 국가청렴도 1위, 국가경쟁력 1위, 교육경쟁력 1위로 만든 핀란드 여성 대통령 할로넨이 2000년도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평범한 행동이 화제가 됐죠. 집에서 쓰던 다리미를 가져와 직접 옷을 다렸고 호텔 전속미용사를 보냈더니 '머리 손질은 내가 직접한다'며 거절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속미용사 2명을  버컹엄궁전까지 데리고 갔는데요.

그녀가 핀란드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됐을 때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재계 대표들이 규제완화를 요청했을 때 '특수한 이익단체와 관련한 문제로 규정'해 '제 판단기준은 전체 국민입니다'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좋은 리더의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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