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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스님의 죽음에서 '소신공양'의 참뜻을 생각한다

'소신공양'은 온 삶을 바쳐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것

  • 입력 2017.01.14 21:07
  • 수정 2017.03.17 17:00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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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0일째인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가 순조로이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어떤 분이 분신하여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뭔가 짚였던지 지인 K씨가 서울대병원으로 득달같이 달려가 정원스님(64)임을 확인했다. 그날 낮에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스님은 표정도 유난히 해맑았고 손도 따뜻했다고 한다.
 

정원스님 광화문 텐트촌 앞의 정원스님
▲ 정원스님 광화문 텐트촌 앞의 정원스님
ⓒ 정원스님

 


그가 남긴 스케치북에는 '대법원은 18대 대선 선거무효소송 속결하라' '박근혜는 내란사범, 한일협정 매국질' '시민혁명을 성취하자'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정원스님의 소신공양(燒身供養, 자기 몸을 불살라 부처 앞에 바치는 일)은 갑작스러운 충동에서 비롯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부터 그의 고민과 시름은 깊었다. 그해 베트남에 갔을 땐 세월호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이 엄습해 시커먼 강물에 몸을 내던지고픈 마음 간절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노란 천을 어깨에 두른 스님

세월호 참사 이전인 2010년 5월, 가까이 지내던 문수스님(47)이 사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소신공양을 한 바 있다. 당시 문수스님은 정원에게 유언을 남기기도 했단다. 문수스님의 살신성인을 보며 정원도 때가 되면 그를 뒤따르겠다는 작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불교의 소신공양 전통은 <법화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 나오는 약왕보살의 전생은 '일체중생희견보살'이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수행정진에 힘써 삼매(三昧, 한 가지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에 자신의 신통력을 빌어 공양(供養, 귀의와 감사의 정성을 바침)을 바쳤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몸을 공양하는 게 최고, 최선임을 깨닫자 온갖 향유를 마시고는 천을 몸에 두른 뒤 자기 몸을 불살랐다. 이때 일체중생희견보살 몸에서 나온 빛은 무려 1200년 동안이나 계속되다가 꺼졌다 한다.

이 소신공양을 시작으로 많은 복덕(福德)과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양팔이나 손가락, 발가락 같은 신체의 일부를 불태워 공양하는 전통도 생겨났다. 공양미 삼백 석에 자신의 몸을 팔아 임당수에 던진 심청 이야기도 <법화경>의 소신공양 영향으로 보인다.

정원스님이 남긴 7일의 사진을 보면 말쑥이 잘 갖춰 입은 가사에 노란 천을 어깨에 둘렀다. 일체중생희견보살이 향유에 적신 천을 자기 몸에 둘렀듯이, 그는 세월호 아이들을 상징하는 노랑 천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그저 우주의 원소로 돌아가기만을 바랐다.
 

정원스님의 스케치북 정원스님의 유지가 담긴 스케치북
▲ 정원스님의 스케치북 정원스님의 유지가 담긴 스케치북
ⓒ 선거개혁시민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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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도 '소신공양'까진 아니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기 몸을 불태우는 일에 대한 짤막한 언급이 있다. '사랑의 찬가'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의 다음 한 구절이다. "내가 내 몸을 불사르기 위하여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고전 13:3) 누군가를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르도록 내어 주는 극진한 헌신이 있어도 거기에 '사랑'이 빠지면 말짱 헛것이라는 일침이다.

반기문의 "불사르겠다"는 말

한편 12일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다"고 말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앞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자신의 몸을 불사를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에 앞서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지구촌의 가난한 민중들을 위해 과연 '몸을 불사르며' 일했는지도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정원스님의 소신공양에 담긴 숭고한 뜻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기 몸 불사르겠다는 반기문씨의 공언도 존중한다. 하지만 앞으론 부디 '제 몸을 불사르겠다'고 공언하는 분이나 실제 자기 몸을 불사르는 분들이 더 이상 안 계셨으면 한다. 그것은 자칫 큰 슬픔과 불행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부처님께 제 몸을 불태워 드리는 일을 "최고·최선의 공양"이라 칭송한 <법화경>의 법문의 본뜻도 문자 그대로 자기 몸을 태우라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이는 "여러분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롬 12:1)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각 사람 몸을 제단에 불태워 바치라는 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법화경>이 말하는 소신공양은 온 삶을 다 바쳐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현하라는 뜻으로 새겨야 옳다. 일체중생희견보살이 소신공양하였을 때 "그 빛이 1200년 동안이나 계속되다가 꺼졌다"는 진술로도 그것을 미뤄 알 수 있다.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등대나 등불 같은 삶은 세상 누구에게나 권장 할만하다. 그 환한 불빛을 보고 방황하는 뭇 영혼들이 갈 길을 찾을 것이다.

[편집자 소개글] 이글을 쓴 여수넷통뉴스 객원기자인  정병진 기자는 '여수솔샘교회'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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