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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파도를 헤치며... 섬이 9남매를 키웠다

7남매에 2명의 조카까지 키운 대두라도 우편배달부 부부

  • 입력 2017.01.24 08:51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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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나선 김재연씨 부부 모습으로 막내인 나일(4살)이가 엄마를 따라 다닌다. 공기도 맑은 가운데 걷기 때문에 건강해져서 좋다고 한다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나선 김재연씨 부부 모습으로 막내인 나일(4살)이가 엄마를 따라 다닌다. 공기도 맑은 가운데 걷기 때문에 건강해져서 좋다고 한다
ⓒ 오문수

 


'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합심해 길러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여수시 남면 대두라도에는 7남매와 두 조카까지 기르는 우편배달부 부부가 있다. 가난한 집 형편에 이들을 교육하고 돌본다는 건 부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초등학교가 교육하고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을 돌봐줬다.
 

 드론으로 촬영한 대두라도 모습
 드론으로 촬영한 대두라도 모습
ⓒ 오문수

 

 

 봉통마을 골목길 모습
 봉통마을 골목길 모습
ⓒ 오문수

 


섬 모양이 콩 같이 생겨 '대두(大豆)'라 불린 대두라도는 어떤 섬일까? 동경 127°44′, 북위 34°30′에 위치한 대두라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에 속한 자그마한 섬이다. 돌산과는 4km 정도 떨어져 있고, 인근의 나발도와는 0.3km 거리를 두고 있다. 면적 1.01㎢, 해안선 길이 7.6km인 섬에는 80명 정도가 살고 있다. 북쪽으로 화태도, 동쪽으로 소두라도, 남쪽으로 금오도 송고 마을이 지척이다.

지난 17일와 18일, 섬에 방문했다. 처음 섬에 도착해 선창에 내리니 금방 잡은 멸치를 말리고 멸치를 마음껏 먹은 고양이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쪘다. 어구를 손질하는 어민에게 물으니 동네 이름이 선창이란다.

당국에서는 섬마을 주민들을 위해 멧돼지 퇴치 대책 마련해야

김재연씨 부부를 만나기 위해 봉통으로 가는 길에는 화태초등학교 두라분교가 있다. 대부분의 섬학교가 폐교됐는데 이 학교는 어찌 됐는지 알고 싶었다.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세찬 겨울바람이 불어와 포기했다.

산길을 걸어 봉통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모자를 눌러쓰고 두꺼운 옷을 입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방풍 가꾸느라 바쁘다. 봉통마을은 마을 형태가 벌통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불린 이름이다.
 

 봉통마을 모습. 마을이 벌통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통마을 모습. 마을이 벌통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오문수

 

 

 봉통마을 입구에서 방풍재배하느라 애쓰는 주민들을 만났다. 목포대학교  이재언 연구원이 주민과 대화하고 있다
 봉통마을 입구에서 방풍재배하느라 애쓰는 주민들을 만났다. 목포대학교 이재언 연구원이 주민과 대화하고 있다
ⓒ 오문수

 


"안녕하세요? 방풍 재배하시느라 바쁘네요! 방풍보다 고구마 돈벌이가 낫지 않아요?
"모르는 소리하지 마세요. 고구마는 손도 많이 가고 힘들어서 못 해요. 무엇보다도 멧돼지들이 들어와서 고구마밭을 망쳐놔요. 그래서 고구마보다 손이 덜 가고 돈벌이가 나은 방풍을 재배해요."

여수 인근 섬을 여행하다 보니 멧돼지 피해가 의외로 심각하다. 당국에서는 멧돼지 퇴치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방풍밭을 손질하는 아주머니들 속에 우리가 만나려는 김재연씨 부인인 서순례씨가 있었다. 때마침 멸치가 많이 잡혀 멸치가공 작업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작업과정을 살펴보고 경로당으로 돌아왔다.

"시장할 텐데 반찬은 없지만 맛있게 드시라!"고 말한 할머니들이 따뜻한 밥과 반찬이 차려진 밥상을 내왔다. 할머니들이 담근 젓갈에 밭에서 금방 캐온 배춧속을 찍어 먹으니 맛있다. 밥상을 물리고 커피까지 타주는 인심 좋은 할머니들에게 본격적으로 질문했다.

"할머니 김재연씨 7남매는 누가 키워요? 그리고 왜 그렇게 아이를 많이 키워요?"
"아이고! 10명을 낳는다고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라. 일곱 명 키우는 것도 장한데 열 명을 키우면 네 인생은 없다며 말렸지요." 

섬마을에 우편 배달하는 부부..."아이들 공부시키는 게 가장 힘들어요"

대두라도에 사는 김재연씨 부부는 자신의 배를 타고 인근에 있는 화태우체국으로 가서 우편물을 받아 나발도와 소두라도, 두라도 주민들에게 우편물을 배달해준다. 이 집의 가장 막내는 4살짜리 김나일 양이다. 부부는 우편물 배달하면서도 나일이를 데리고 다녔다.
 

 대두라도 중심인 선창 항구 모습
 대두라도 중심인 선창 항구 모습
ⓒ 오문수

 

 

 막내인 나일이와 함께 우편배달에 나선 서순례씨 모습. 섬마을은 대부분 해안가 가파른 곳에 있어 올라가기 힘들다
 막내인 나일이와 함께 우편배달에 나선 서순례씨 모습. 섬마을은 대부분 해안가 가파른 곳에 있어 올라가기 힘들다
ⓒ 오문수

 


가파른 섬마을 동네를 올라가는데 힘들 것 같아 "나일아! 아저씨가 손잡아 줄게"하고 손을 내밀자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으며 엄마 손을 잡고 따라다니는 모습이 귀엽다. 그러는 사이 김재연씨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이용해 우편물을 배달한다.

17년째 배달하는 김재연씨와 우편배달부 13년차인 부인의 배달구역은 다르다. 부인인 서순례씨는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근무해 한 달에 10일 일한다. 정규직이 아니라 월급이 적은 김씨 부부.
 

 여수화태우체국 모습. 원래는 한 면에 하나의 우체국을 유지하는 게 원칙이지만 섬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여수 남면에는 안도, 연도, 남면, 화태의 4개 우체국이 설치되어 있다.  화태대교 연결로 화태우체국은 3월말에 폐쇄될 예정이다
 여수화태우체국 모습. 원래는 한 면에 하나의 우체국을 유지하는 게 원칙이지만 섬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여수 남면에는 안도, 연도, 남면, 화태의 4개 우체국이 설치되어 있다. 화태대교 연결로 화태우체국은 3월말에 폐쇄될 예정이다
ⓒ 오문수

 

 

 화태우체국에서 분류한 우편물과 심부름 받은 물건들을 싣기 위해 짐을 나르는 부부 옆에서 나일이가 놀고 있다
 화태우체국에서 분류한 우편물과 심부름 받은 물건들을 싣기 위해 짐을 나르는 부부 옆에서 나일이가 놀고 있다
ⓒ 오문수

 


섬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심부름까지 한다. 때로는 물건을 사다 주기도 하고 송금이나 찾아달라는 부탁까지 들어주어야 한다. 선창마을에서 내려 나일이 손을 잡고 우편 배달하는 부인을 따라 1㎞쯤 떨어진 봉통마을로 함께 걸으며 집안 형편을 들었다.

"5년 정도 가두리 양식을 했는데 태풍 때문에 망했어요. 원래 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회복하지 못하고 빚이 있습니다. 조카와 고등학생 아들이 사는 여수 시내 영세민 아파트에 가서 자려면 비좁아 칼잠을 자야 합니다. 딸이 올해 서울과기대에 합격했는데 기숙사에 못 들어가 걱정입니다." 
 

 학교다니느라 섬 밖으로 나간 아이들을 제외한 4명의 아이들이 집에서 올망졸망 놀고 있었다. 저멀리 금오도 모습이 보인다
 학교다니느라 섬 밖으로 나간 아이들을 제외한 4명의 아이들이 집에서 올망졸망 놀고 있었다. 저멀리 금오도 모습이 보인다
ⓒ 오문수

 

 

 김재연씨 가족사진 모습.
 김재연씨 가족사진 모습.
ⓒ 오문수

 


"아이들 때문에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말썽 피우는 아이들 없이 잘 커 준 아이들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잘해주지 못한 게 가슴 아프다"고 말한 부인에게 7명의 아이에 2명의 조카까지 키워낸 사연도 들었다.

김재연씨의 동생이 급성췌장암으로 사망하자 초등학교 1학년이던 큰애와 동생까지 김씨의 집으로 들어왔다. 동생 부인은 재혼해 떠나고 김씨 부부와 시어머니가 9명의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벅찼다.

그러자 14가구에 30여 명의 주민이 사는 봉통마을 주민들이 나섰다. 부부가 배달하러 집을 나서면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나서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은 화태초등학교 두라분교에서 맡았다.

2명이 다니는 분교생 중에는 올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민진'이가 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셀'이가 있어 2명이 그대로 유지된다. 김씨의 집에 들어올 때 초등학생이었던 조카 중 하나는 취직해 돈 벌고 다른 한 명은 군대 갔다.
 

 화태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싣고 온 배가 선창에 닿자 익숙한 솜씨로 우편물과 화물을 내리기 위해 준비하는 부부 옆에 나일이가 앉아있다
 화태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싣고 온 배가 선창에 닿자 익숙한 솜씨로 우편물과 화물을 내리기 위해 준비하는 부부 옆에 나일이가 앉아있다
ⓒ 오문수

 


"바람 불고 파도칠 때 힘들지만 아이들 공부시키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 김재연씨 부부. 차를 세워둔 화태도 월전마을까지 배웅을 해주고 수줍은 얼굴로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하며 대두라도로 돌아가는 김재연씨의 배가 파도를 가른다.

요즈음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결혼도 포기하는 세태이다. 험한 파도를 헤치며 9남매를 키운 부부에게 세상의 바다도 뱃길을 열어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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