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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없는 집, 그는 기타를 치며 혼자 산다

율촌의 '코딱지 섬 소늑도' 이강재씨의 나홀로 섬사랑

  • 입력 2017.01.26 22:26
  • 수정 2017.01.31 16:40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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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론으로 촬영한 소늑도 모습
▲  여수산단과 율촌산단에 둘러싸인 작은 섬 소늑도는 한바퀴 도는데 10분 걸린다.
ⓒ 오문수

 


목포대학교 이재언 연구원과 함께 광양만에 있는 작은 섬 소늑도를 방문했다.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여동리에 있는 소늑도는 면적 0.02㎢의 작은 섬으로  경지 면적은 밭이 0.01㎢, 임야는 0.01㎢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섬의 최고 지점은 20m로 섬 전체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며, 섬 주위에 간석지가 발달하였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토양은 신생대 제4기 고온 다습한 기후 환경에서 만들어진 적색토가 넓게 분포한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 

걸어서 10여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이지만 10여년전까지 11세대가 살았다. 이렇게 작은 섬에 왜 11세대나 살고 작은 분교까지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소늑도 모습으로 10여채의 집이 보이지만 이강재씨 혼자 산다
 소늑도 모습으로 10여채의 집이 보이지만 이강재씨 혼자 산다
ⓒ 오문수

 

 

 소늑도에는 고롱골나무 20여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소늑도에는 고롱골나무 20여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 오문수

 


섬 주변에 꼬막과 바지락, 굴 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썰물 때면 중늑도까지 갯벌이 드러나고 수심 5m 이내인 늑도 주변은 패류서식지로는 최고의 환경을 갖췄다.

1939년 경 기독교 순천교회의 선교사가 섬 일부를 매입하여 기도원으로 활용하면서 신도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폐허가 된 마을 뒷산에 올라가니 허물어진 기도원의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혼자 살지만 고향이니까 좋다는 이강재씨... 개발 안 하고 저대로 뒀으면
 

 송도에서 소늑도로 우리를 태워준 이강재(왼쪽)씨와 이재언씨가 대화하고 있다
 송도에서 소늑도로 우리를 태워준 이강재(왼쪽)씨와 이재언씨가 대화하고 있다
ⓒ 오문수

 

 

 음악을 사랑하는 이강재씨 방에 있는 기타가 3개나 됐다. 파도와 갈매기소리가 어우러진 이씨의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잠잘 시간도 없다는 그의 하소연에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강재씨 방에 있는 기타가 3개나 됐다. 파도와 갈매기소리가 어우러진 이씨의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잠잘 시간도 없다는 그의 하소연에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 오문수

 


양식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6살 때 소늑도로 이사 온 이강재(52세)씨는 이웃한 섬 송도가 고향이다. 순천에서 음악학원을 경영하기도 했던 그는 "열 아홉살 때 태진아, 송대관, 현숙 등 유명가수들이 노래할 때 백밴드를 하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폐교된 분교에서 혼자 사는 그의 방에 가보니 기타가 3대나 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파도와 갈매기소리를 벗 삼아 기타를 치며 음악을 즐기는 그가 섬에서 홀로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분교였다가 폐교가 된 집을 손질해 이강재씨 혼자 살고 있다
 분교였다가 폐교가 된 집을 손질해 이강재씨 혼자 살고 있다
ⓒ 오문수

 

 

 이씨가 사는 집에는 우물도 있다. 이재언 연구원이 우물물을 길어 보고 있다
 이씨가 사는 집에는 우물도 있다. 이재언 연구원이 우물물을 길어 보고 있다
ⓒ 오문수

 


"음악을 좋아하고 축구선수도 해봤어요. 여동생들은 공부를 잘해 잘 살아요.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고향을 사랑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섬 생활은 잠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잔일이 많아요. 공단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11세대가 괜찮게 살았는데 바다가 오염이 돼서 바지락이 싹 까져버려요. 혼자 살아도 고향이니까 좋아요. 그냥 개발 안하고 저 상태로 뒀으면 좋겠습니다"

방수복을 입고 두건을 쓴 채 조그만 배를 끌고 고향바다를 묵묵히 지키는 그는 고독을 숙명처럼 여기는 자유인이었다. 하지만 이씨의 섬 생활도 몇 년이나 계속될지 모른다.

주변으로는 율촌지방산단과 여수국가산단, 광양국가산단이 들어서며 어업권 보상이 끝나고 양식업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머잖아 근방의 섬들도 매립이 되어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굴껍질을 보고 조그만 섬에 11가구나 살았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굴껍질을 보고 조그만 섬에 11가구나 살았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 오문수

 

 

 마을 뒷산에 서있는 무너진 기도원의 모습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마을 뒷산에 서있는 무너진 기도원의 모습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 오문수

 

 

 몇 마리의 염소들이 섬의 또  다른 주인이었다
 몇 마리의 염소들이 섬의 또 다른 주인이었다
ⓒ 오문수

 


섬을 돌아보니 농촌보다 어촌이 훨씬 소득이 높고 잘 산다는 판단이 들었다. 농민은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어민은 호미 하나만 들고 바닷가에 나가면 돈이 되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여수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고민에 빠졌다. 경제발전을 위해 산단을 개발해야 옳을까? 보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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