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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들이 여수에서 '떡국' 먹는 이유

설 연휴, 외국인 노동자 위한 떡국 "맛있어요!" 더 좋은 건 자유의 '맛'

  • 입력 2017.01.29 22:40
  • 수정 2017.01.31 22:45
  • 기자명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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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국 맛있어요"  설 이튿날 외국인노동자들이 여수에서 한국의 설 음식인 떡국 맛을 봤다.
 "떡국 맛있어요" 설 이튿날 외국인노동자들이 여수에서 한국의 설 음식인 떡국 맛을 봤다.
ⓒ 오병종

 

설 연휴에 여수에 온 외국인노동자들이 떡국을 먹는다. 대한민국 명절, 딱히 어디 갈 곳이 없는 국내 외국인노동자 중 여수를 찾는 이가 많다.

여수이주민센터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쉼터다. 설날인 28일 오후, 여수 버스터미널 근처를 지나는데 외국인 노동자 몇이서 옥상에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 여수이주민센터는 예전부터 명절이면 전국에서 마치 고향처럼 일부 외국인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여수버스터미널 옆의 여수이주민센터 건물 백반천국 식당 바로 위 2층이 센터의 휴게실이다. 옥상에 올라간 외국인 노동자가 보인다.
▲ 여수버스터미널 옆의 여수이주민센터 건물 백반천국 식당 바로 위 2층이 센터의 휴게실이다. 옥상에 올라간 외국인 노동자가 보인다.
ⓒ 오병종

 

초창기에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박용환(60)씨는 "긴 명절에 외국인에게 쉼터가 중요하다. 객지에 가면 교통비 외에도 밥 값에 잠자리 비용까지 만만치 않다. 그들이 먹고 자면서 끼리끼리 쉬는 장소가 필요해서 들어선 게 이 센터다. 한번 인연 맺어 이곳에 오면, 자신들의 고향처럼 명절. 연휴, 주말에 자주 오게 된다"며 외국인들이 귀성객(?)이 되어 여수를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센터 안에 있는 쉼터. 2층으로 26개 침대가 놓여있다.
 센터 안에 있는 쉼터. 2층으로 26개 침대가 놓여있다.
ⓒ 오병종

 

여수이주민센터가 있는 2층 건물의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사무실 곁의 휴게실에는 몇이 서있거나, 칸막이도 없이 바로 이어지는 간이 침대가 놓인 곳에서 스마트폰을 같이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터미널에서 봤던 옥상에도 긴 빨래줄이 쳐진 양지바른 곳에서 외국인 노동자 셋이서 아직 남은 설날의 겨울 오후 햇살을 받고 있었다. 빨래도 같이 햇살을 받고 있다.
 

 설날 오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옥상에서 쉬고 있는 외국인들
 설날 오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옥상에서 쉬고 있는 외국인들
ⓒ 오병종

 

센터 사무실 연락처로 전화를 했더니, 자원봉사자 한 분과 연결이 되었다. 초 이튿날(29일) 점심으로 함께 떡국을 먹을 거라며 나를 초대한다. 약속을 하며 나오다 스리랑카 출신 두 명을 차례로 휴게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국내에 온 지 8개월에서 1년 된 이들이어서 한국어 대화에는 어려움이 없는 정도였다. 느닷없는 방문에 어리둥절해 하는 것 같았지만, 단어를 연결하며 한국말을 주고 받자 경계를 푼다.
 

스리랑카에서 온 구마르(30) 한국에 온지 8개월. 8명이 한 조가 되어 일하는 배에서 그 혼자만 외국인이었다.특히 배멀미 때문에 고생했다.
▲ 스리랑카에서 온 구마르(30) 한국에 온지 8개월. 8명이 한 조가 되어 일하는 배에서 그 혼자만 외국인이었다.특히 배멀미 때문에 고생했다.
ⓒ 오병종

 

목포에서 왔다는 구마르(30세)씨는 한국생활 8개월 동안 뱃일을 했다. 8명이 한 조를 이뤄 일하는 배에서 외국인으로는 혼자였는데, 배벌미로 무척 고생을 했단다.

"꿀렁꿀렁. 배멀미 많이 해요. 바다 잔잔. 안 해요! 문자 왔어요. 완도 가요."

그는 뱃일을 접고 완도 전복양식장으로 일자리를 옮긴다. 그 사이 약 한 달이라는 제법 긴 시간을 여기서 보낼 요량이다. 이곳은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이른바 3D 업종에서 어렵게 일하는 외국인들은 숙식제공 해주던 일자리에서 나오게 되면, 다음 일자리 찾기까지 대기하는 동안 거처하는 숙식비가 만만치 않게 들게 된다. 구마르씨는 그 돈이 안들어 이곳에 왔다.

한 쪽 벽면에는 차곡차곡 자리 잡은 여행용 가방들이 가득하다. 구마르씨처럼 이곳 쉼터를 이용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여럿이다.
 

해남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하는 다눔(24) 설 전날 여수에 친구들 만나러 왔다가, 설날 하룻밤을  여수서 보내고 29일 오전에 떠났다.
▲ 해남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하는 다눔(24) 설 전날 여수에 친구들 만나러 왔다가, 설날 하룻밤을 여수서 보내고 29일 오전에 떠났다.
ⓒ 오병종

 

해남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온 다눔(24세)씨 역시 스리랑카인이다. 해남에서는 그가 설 명절 연휴기간 동안 딱히 갈 곳이 없어 친구들 만나러 여수에 왔다. 여기 오면 그래도 스리랑카에서 온 본국 친구들을 만나기가 쉽다. 연휴 마치기 전에 해남으로 가야 한다.

29일 점심때 그를 찾았으나 이미 여수를 떠난 후였다. 이렇게 잠시 친구 만나러 들르거나, 좀 오랫동안 머물거나 두 가지 이유로 외국인들이 이곳 여수를 찾는다.
 

 29일 자원봉사자 김희진씨가 점심으로 떡국을 준비해주고 있다
 29일 자원봉사자 김희진씨가 점심으로 떡국을 준비해주고 있다
ⓒ 오병종

 

떡국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 김희진(여수시 충무동, 여수피부건강연구소장)씨가 바삐 움직인다. 휴게실 쉼터 곁에 바로 부엌이 있다. 누구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곳은 게스트하우스나 진배없다. 반찬과 쌀, 전기 밥솥과 냉장고. 센터에서 준비해둔 것이니 무료 게스트하우스인 셈이다. 모두 기부자들이 낸 것들이다.
 

 침대에서 뒹구는 것도 휴가를 보내는 방법. 이럴땐 늘 스마트폰이 친구다.
 침대에서 뒹구는 것도 휴가를 보내는 방법. 이럴땐 늘 스마트폰이 친구다.
ⓒ 오병종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휴가는 맘대로 보내는 것. 2층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 스마트폰 서핑도 여유다. 이곳의 장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 김희진씨 얘기다.

"여긴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기관이 아닌 비영리사단법인이다 보니까, 이용객이 좀 자유롭죠. 간섭도 없고. 외국인들이 편안해 하고,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그러죠. 한국 온지 얼마 안 되면 한국말이 서툰데, 그럴 경우 취업상담, 혹 사고나 아플 때 통역이 필요하면 다문화 가족 여성분들이 연결됩니다. 큰 도움을 받죠. 저도 실은 다문화 관련 일 하다가 여기서 자원봉사를 하게 된 거예요."    

 김희진씨가  집에서 가져온 설날 음식으로 점심상을 차린다.
 김희진씨가 집에서 가져온 설날 음식으로 점심상을 차린다.
ⓒ 오병종

 


김희진씨는 설 음식들을 자신의 집에서 직접 가져와 점심상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는 식사를 제공해 주지는 않는 곳이다. 가끔 설거지 정도는 도와주지만, 이곳에서의 식사는 이용객들 자율이다. 자기 스타일대로 해 먹는다. 특별히 설 연휴에 떡국 상을 차려 주려 한 것은 '우리 음식 체험' 차원이다. 
 

쉼터 입구쪽 거울에 붙어 있는 안내문들. 월 180 ~ 200만원의 구인광고와 무료 이발 안내가 있다.
▲ 쉼터 입구쪽 거울에 붙어 있는 안내문들. 월 180 ~ 200만원의 구인광고와 무료 이발 안내가 있다.
ⓒ 오병종

 


자원봉사자 혼자서 하는 떡국 준비 시간에 몇 사람을 더 만나봤다. 라시크(33)씨는 완도 고금도에서 일했다. 역시 다른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는 머문 기간이 좀 길어진다. 연휴에 잠시 친구 만나러 왔건, 직장을 다시 찾으며 대기하건, 이곳은 이들에게 이렇게 징검다리다.

여수이주민센터는 여수 버스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고개 들어 쳐다보면 바로 보인다. 한국길에 어둔 초행 외국인도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다. 

루완(24)씨는 돌산 가두리 양식장에서 왔다.

"가두리. 우럭. 돌돔, 깔따구... 셋이 일해요. 가두리 집. 잠잘 때 흔들려요."

우럭 같은 어류를 양식하는 가두리의 바지 선상가옥에서 먹고 자면서 일하는 친구다. 외국인 근로자 셋이 한다니 그래도 좀 덜 심심하겠다.
 

스리랑카에서 온 또 다른 구마르(34)  한국의 '철수'처럼 '구마르'라는 이름은 스리랑카에서 흔하다고 한다.
▲ 스리랑카에서 온 또 다른 구마르(34) 한국의 '철수'처럼 '구마르'라는 이름은 스리랑카에서 흔하다고 한다.
ⓒ 오병종

 


대구 성서공단에서 온 또 다른 구마르(34)씨는 한국서 1년 반 일했다고 한다. 스리랑카를 출발할 때 찬구 넷이서 한국에 왔는데 여기 오면 더러 만난다고 한다. 스리랑카에서 살았던 도시 캔디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다시 물었다. 구마르? 한국의 '철수'처럼 스리랑카에서는 그 이름이 흔하단다.

떡국이 차려지고 주변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김희진씨는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도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잠시 머무는 친구들이지만 설에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도 나누고 정이 있어요. 또 보면 모두 열심히 살아요. 집에 돈을 버는 대로 송금하고, 대단하죠! 이들을 돕는 게 보람이죠"
 

 어떤 맛일까? 구마르는 이 지역에서 일한 탓에 굴맛을 안다.
 어떤 맛일까? 구마르는 이 지역에서 일한 탓에 굴맛을 안다.
ⓒ 오병종

 


옆 나라 일본은 요즘 '외국인근로자 100만 명 시대'라고 요란하다. 우리도 외국인근로자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명절 설 연휴를 즐기는 외국인들도 앞으로 더 늘어갈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우리 명절의 분위기를 즐기고 느낄 기회가 대한민국 여러 군데서 손쉽게 제공되었으면 좋겠다.

여수이주민센터 자원봉사자가 정성껏 차려준 떡국 점심상을 받고 외국인들이 흐뭇해 하며 서툴게나마 합창한다. "떡국,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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