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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집에 키우는 강아지를 싫어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2015.8.29. 법륜스님 필리핀 마닐라 즉문즉설 강연

  • 입력 2017.02.07 11:35
  • 기자명 장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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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강아지를 무척 싫어하는데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다 보니까 남편을 설득해서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키우고 나니까 집안에 개 냄새가 나서 남편은 본인이 허락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면서 강아지를 키워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고요. 남편 입장에서는 ‘아빠가 중요하니? 강아지가 중요하니?’ 하면서 본인이 허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빨리 보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저 보고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설득해서 강아지를 못 키우도록 했어야 한다’고 질책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야 될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우선 질문자에게 먼저 물어볼게요. 강아지가 중요해요? 남편이 중요해요?” (대중들 웃음)

“물론 남편이 중요하죠. 그러나 저에게는 남편도 중요하고 아이들도 중요합니다. 저희 아이는 수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예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강아지에 대해서 책도 보고 공부도 많이 하거든요. 가능하면 아이가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아이들도 많은 노력 끝에 아빠를 설득했는데 아빠가 다시 변덕을 부리고 있어서 저도 무척 곤란한 상황입니다.”

“만약에 남편이 뱀을 너무 좋아해서 비단뱀 한 마리를 침실에 가져다 놓고 생활한다면 질문자는 어떨 것 같아요? 아무리 자기가 허락을 했다고 하더라도 뱀을 볼 때 마다 계속 문제 제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는 반대를 하다가 남편이 너무나 원하니까 허락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는 뱀을 볼 때 마다 ‘안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요? 매일 뱀을 보게 되면 어떨까요?”

“싫겠죠.”

“그러니 질문자의 생각이 잘못된 거예요. 나는 강아지를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남편은 내가 뱀을 보는 것 이상으로 강아지가 싫은 거예요. 내가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강아지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아이가 자기가 좋으니까 아빠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원하니까 그래서 허락까지 해주었는데도 ‘강아지가 중요하냐? 내가 중요하냐?’ 고 다시 문제 제기를 할 정도라는 것은 질문자가 뱀을 싫어하는 정도로 남편도 개에게 도저히 적응을 못해서 그러는 겁니다. 아내가 볼 때는 ‘그게 뭐가 문제냐?’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남편은 그 냄새며 그 털이며 남편은 너무 너무 견디기 힘든 겁니다.

숫제 뱀은 오히려 강아지보다 훨씬 깨끗합니다. 강아지는 발에 흙 묻혀서 돌아다니고 털 떨어뜨리고 냄새도 나잖아요. 그러나 뱀 가죽은 만져보면 자기 살결 보다도 더 부드럽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뱀이 훨씬 더 방에서 키우는 데 문제가 없지만 이것을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서 상대가 납득이 됩니까? 안 되겠지요. 물론 설득이 되어서 처음에는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뱀을 보기만 해도 까무라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자기가 개를 좋아한다고 개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을 동물을 애호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 안 됩니다.

LA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집에 냄새가 많이 난다고 이웃집에서 항의를 해서 경찰이 들어가봤더니 고양이 300마리를 키우는 집이 있었다고 해요. 이런 사람들은 인간이 애완용 동물을 길에 버리는 것을 엄청나게 비인간적이라고 주장하는데, 반면에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어린 아이가 태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왜 사람이 죽는 것은 외면하느냐?’ 라고 물으면 ‘부처님은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고 했는데 왜 사람과 동물을 차별하느냐?’ 고 되묻습니다. 그렇게 자기 취향이 옳다고 방어를 하는 것이죠.

남편이 개를 싫어하는 것은 어릴 때 받은 어떤 상처가 그 원인일 수 있어요. 어릴 때 개한테 물렸다든지 개가 짓는 것에 크게 놀랐다든지 뭔가 상처가 되는 경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개가 집 안에 있는 것이 너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렇다면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예요? 우선 남편 아니겠어요? 그런 남편이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하잖아요.

남편은 사는 것이 힘들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고, 아이는 자기의 기호를 갖고 지금 말하는 거잖아요. 아이의 기호 문제는 엄마가 조정해 주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집을 이사를 가서 개가 아이들 방에만 있게 하고 그 외에는 아예 출입을 못하도록 해주든지 조치를 취해 주어야 하지요.

질문자는 자신이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남편은 아이들이 예쁘지 않아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일까요? 본인은 싫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니까 허락은 한 겁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아이들과 얘기를 해서 ‘우리는 좋지만 아빠는 너무 힘들어하니까 우리가 조정하자’ 이렇게 얘기해야지 ‘아빠가 좀 참으면 되지. 너무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한다. 권위주의적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가족 공동체에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예요.

반대로 남편이 개를 좋아하고 아이가 개를 너무 무서워하고 죽도록 싫어한다면 이 때는 아이가 못 견뎌 하는 것을 더 우선시 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우선시 하는 것이 아니고 싫어하는 것을 더 우선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섯 명이 한 집에 사는데 네 명은 개고기를 좋아하지만 한 명은 개고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면 네 명이 양보해야 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의 기준에 더 맞춰주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이런 원칙이 딱 안 잡혀 있어서 생긴 문제입니다.

아이가 개를 좋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수의사 하는 것과 개를 좋아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렇게 개를 좋아하면 수의사가 되면 배를 가르고 해부도 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싫어하는 것과 같이 사는 것도 괴로움인데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보다 싫어하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이 더 큰 고통이예요. 좋아하는 개와 같이 살지 못하는 아이의 고통과 싫어하는 개와 한 집에 살아야 하는 남편의 고통 둘 중에 남편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질문자가 이해하셔야 해요. 남편에게 참으라고 하면 남편은 참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남편이 행복하지가 않아요. 집에 들어오면 냄새가 나서 남편이 자꾸 짜증을 내면 집안 분위기가 안 좋죠. 제가 보기에는 아내가 조정을 해주는 것이 좋겠어요.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 쯤 되면 개를 치워서 안 보도록 하고 있어요. 그러나 냄새가 좀 나니까 개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죠.”

“질문자가 아이들의 가정 교육을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아빠를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아빠와 아이가 상충될 때는 항상 엄마가 남편의 뜻을 존중해줘야 아이들이 아빠를 미워하지 않게 돼요. 엄마가 아이들 편을 들어주면 아이들이 자기가 옳고 아빠는 틀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와 엄마가 견해 차이가 있을 때 아이의 견해에 편을 들어주면 엄마가 틀렸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엄마 편을 들어주는 것이 맞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꾸 자녀를 우선시 하는데 자녀를 우선시 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녀 교육에 실패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아빠와 정서적인 유대감이 약한 이유는 아빠들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엄마가 아빠와 갈등이 있기 때문에 엄마로 인해서 아이들은 대부분 아빠를 정서적으로 싫어하게 됩니다. 엄마와 아빠가 싸워서 엄마가 울고 있으면 당연히 누가 미워집니까? 아빠가 미워지겠죠. 둘 중에 누가 잘했는지 아이는 모르잖아요. 무조건 아빠가 나쁜 사람처럼 인식이 되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질문자의 그런 태도가 벌써 아이들에게는 나쁜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나 아이를 자기 편 만들어서 뭐할 건 데요? 이혼할 때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대중들 웃음)

그래서 남편이 많이 싫어하면 자기가 딱 나서서 아이를 설득하고 정리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도 ‘아빠가 싫어하니까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아빠와 아이의 사이가 더 나빠집니다.

뱀을 방 안에 두고 남편이 올 때는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가면 또 내어놓고 하면서 ‘눈에 안 보이잖아’ 한다고 견뎌집니까? 안 되지요. 제일 좋은 방법은 단독 주택 같은 곳으로 이사를 가서 개집을 따로 만들어주든지 아이의 방을 움막처럼 따로 지어주어서 개와 같이 지내게 해주는 겁니다.

자녀 교육을 할 때는 질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에 응접실과 방 하나만 있는 좁은 집에 살아야 한다면 누가 방에 자야 될까요? 부부가 방에서 자고 아이를 응접실에서 재워야 아이가 나중에 커서 효자가 됩니다. 그런데 아이를 방에 재우고 부부가 응접실에서 자면 아이들은 다 불효자가 돼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를 사랑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녀를 버리고 있다는 걸 잘 모르지요? 쥐가 배가 고파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그 속에 쥐약이 들어있는 것처럼 여러분들은 아이를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결과는 나빠집니다. 왜냐하면 이치에 맞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질문자가 말하는 태도를 보면 100% 아이 편이 되어 있고, 남편에게는 ‘자기가 허락을 해놓고 그것도 못 참느냐’ 이런 마음이 질문 속에 다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렇게 싫어하는 것을 허락했을까 싶거든요. 허락을 해놓고 책임을 못 진다가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허락을 해준 겁니다. 그러나 허락은 했지만 살아보니까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죠.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한테는 화를 못 내고 마누라한테 ‘네가 대신 좀 나서서 해결해주라’ 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가 좀 해결해줘야지요.”

“엄청 큰 고민이였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끔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아이가 슬퍼서 눈물을 글썽글썽 할 것 같아서요. 어떻게 하면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게 순조롭게 할 수 있을까요?”

“원칙이 정해지면 방법은 부차적인 거예요. 아이의 상태와 현실을 고려해서 그에 맞게 정리를 해나가면 됩니다. 아이가 운다고 또 난리를 피우면 안 돼요. 부모와 헤어져도 살고 자식과 사별하고도 사는데 강아지와 헤어졌다고 죽을 지경이 되겠어요? 그러나 아이들의 심리는 어른이 보는 것과 달라요. 부모의 정은 위에서 내려오는 정이지만 강아지에 대한 정은 아래로 주는 정이거든요. 아이들에게는 강아지가 자기 자식 같은 존재인 겁니다. 그 불쌍한 것을 버렸다고 하면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 대화가 필요합니다. 초등학생이라면 조금 더 아이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고, 중학생 정도가 되면 대화를 할 수 있겠죠.

핵심은 질문자가 지금 원칙 없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원칙이 정해지면 방법은 현실에 맞게 정하면 됩니다. 단기간에 정리하기 어렵다면 남편에게 양해를 구해서 ‘시간을 주시면 제가 그 사이에 조정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고, 아이에게도 ‘너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너 같지가 않다. 아빠는 어릴 때 받은 강아지에 대한 상처가 있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 하신다. 그러니 우리 쪽에서 조금 조정을 하자. 대신 가끔 강아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줄게’ 이렇게 지혜롭게 방안을 마련하면 됩니다. 이 때 원칙이 먼저 딱 서야지 그렇지 않고 중간에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면 아이로 하여금 ‘아빠는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하는 나쁜 이미지를 갖게 합니다.”

“명쾌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근심이 가득하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순간이였습니다. 질문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확실하게 이해했다는 듯 바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과 질문자의 밝아진 표정을 보며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해야 아이를 바르게 키울 수 있는지를 강조하며 한 번 더 답변을 갈무리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좋아요. 그러나 아이를 왕으로 모시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식한테 종노릇을 해야 됩니다. 자식을 낳으면 스무살 때까지는 키워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러나 스무살이 넘으면 정을 딱 끊어줘야 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맞게 키워야 돼요. 그래야 아이는 자립을 하고 여러분들은 자녀의 무거운 짐을 덜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끈끈하게 엮이면 여러분들은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을 지어야 하고, 자식은 죽을 때까지 자립도 못 하고 부모의 간섭을 받아야 됩니다.”

스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자녁 교육에 대해 말씀을 하실 땐 자주 그런 것 같습니다. 부모들의 욕심과 집착이 자녀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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