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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돈섬'이었던 자봉도

큰 새가 앉아있는 형세... 돌산도와 개도 사이에

  • 입력 2017.02.18 09:33
  • 수정 2017.02.20 22:01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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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론으로 촬영한 자봉도 모습. 조그만 위성섬이 '상바구'로 무인도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자봉도 모습. 조그만 위성섬이 '상바구'로 무인도이다
ⓒ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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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도 이장이자 우편 배달하는 윤근조씨 배를 타고 여수시 화정면 월호리에 있는 조그만 섬 자봉도를 방문했다. 여수시 화정면 개도와 돌산도 사이에 있는 자봉도는 개도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져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의하면 면적 0.23㎢에  밭 0.18㎢, 임야 0.13㎢의 작은 섬에는 현재 22가구 45명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과 어업을 겸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고구마·콩·마늘 등이 재배된다.

연근해에서는 주로 멸치·조기 등이 잡히며, 김·바지락·굴 등이 양식된다. 마을은 섬의 남쪽 만에 자리 잡고 있고, 길이 50m의 선착장이 3개가 놓여 있다.

큰 새가 앉아있는 형세라 해 불린 이름 자봉도
 

 자봉항 모습
 자봉항 모습
ⓒ 오문수

 

 

 마을앞 선착장에서 그물손질하는 어민 모습
 마을앞 선착장에서 그물손질하는 어민 모습
ⓒ 오문수

 


섬 이름이 자봉도라 불린 유래가 있다. 섬의 산봉우리가 하나이고 섬 모양이 큰 새가 앉아 있는 형세라 하여 자리좌[座] 자, 새봉[鳳] 자를 써서 좌봉도(座鳳島)라 불렀다.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봉(鳳) 중에서도 붉은 새가 길조라 하여 자봉(紫鳳)이라 고쳐 불렀으나,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자봉도(自峰島)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작은 섬이지만 최고봉이 154m에 달해 정상까지 가려면 급경사를 올라가야 한다. 봉우리를 중심으로 해안 쪽으로 경사가 급한 편이며, 섬의 남쪽으로 만이 발달하였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토양은 신생대 제4기 고온 다습한 기후 환경에서 만들어진 적색토가 넓게 분포한다. 식생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팽나무를 비롯한 상록 활엽수림이 주종을 이루며,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
 

 경사가 급한 밭에 심어놓은 과실수를 지탱해주는 흙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애래쪽에 자갈을 쌓아 토양유실을 막았다
 경사가 급한 밭에 심어놓은 과실수를 지탱해주는 흙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애래쪽에 자갈을 쌓아 토양유실을 막았다
ⓒ 오문수

 


식수는 주민의 대다수가 우물을 이용하며 해수담수화시설이 있다.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전 주민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던 상봉의 바위는 인공으로 다듬은 것처럼 처마 모양을 갖추고 있다. 주위에는 약 200년 된 팽나무가 있으며, 현재는 당제가 중단되었다.

배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아침 9시다. 겨울이고 이른 아침이어서 일까? 선창가에 사람은 없고 어선 7~8척만 매여 있어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낯선 사람이 카메라로 사진 찍는 모습을 본 노인이 "어디서 왔소?"라며 수인사를 해 폐교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후 폐교로 갔다.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화정초등학교 자봉분교장이다. 학교라면 어디나 있는 이승복 동상과, 독서하는 소녀상에 이어 녹쓴 미끄럼틀만 휑하니 남은 학교지만 운동장에서 바라본 학교 앞 전망이 그림 같다.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배들과 점점이 놓인 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라도 한 수 나올 것 같다.
 

 페교된 화정초등학교 자봉분교장 모습
 페교된 화정초등학교 자봉분교장 모습
ⓒ 오문수

 

 

 더운 여름날 해변가 나무 그늘에 앉아쉬는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의자를 나무에 묶어놨다. 강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더운 여름날 해변가 나무 그늘에 앉아쉬는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의자를 나무에 묶어놨다. 강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오문수

 


"할아버지, 학교 전망이 아주 좋네요. 욕심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학생수가 제일 많을 때는 몇 명이나 됐죠?"
"그렇지 않아도 자봉도를 찾아온 사람들이 꼭 들르는 곳이에요. 도시 젊은이들이 찾아와 혹시라도 불낼까 걱정이요. 자봉도에 50호가 넘고 인구가 100명을 넘을 때는 학생수가 50명까지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젊은이들이 전부 돈 벌러 도시로 떠나버려서 학생이 없어요."


"옛날에는 김과 굴양식도 잘되어 부촌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바다가 오염되어 해초가 사라지자 고기도 안 잡힌다"고 말한 할아버지에게 "바닷속에 자랐던 해초가 미역입니까?" 하고 묻자, "앞바다에 진질이 많이 자라서 고기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진질'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해조류연구센터 연구원에게 물어보니 '잘피'라고 알려줬다. 풀처럼 생긴 잘피는 바다에 사는 유일한 현화식물로 어류들의 산란장이자 서식처이다. 또 다른 할아버지가 잘 살았던 옛날을 회상하며 얘기를 꺼냈다.

"자봉도 앞 바다에 진질이가 군락을 이뤄 고기가 많이 잡힐 때는 가난한 외지인들이 품팔이하러 들어와 지게를 지고 가파른 길을 따라 쌀을 날라주고 연탄배달도하며 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고기도 안 잡히고 다 늙어 일할 사람도 없어요."

때마침 방파제에서 고기를 말리는 김매열(82) 할아버지를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매열(82세) 할아버지가 이웃에서 준 민어새끼를 말리고 있다.
 김매열(82세) 할아버지가 이웃에서 준 민어새끼를 말리고 있다.
ⓒ 오문수

 


"10년 전까지는 배를 탔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다리에 힘이 없어 넘어지면 다쳐요. 배타면서 몇 번 죽을 고비도 넘겼죠. 외지에 나간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하고 연금으로 사는데 돈이 떨어지면 미리 앞 당겨쓰기 때문에 하루하루 연명해 사는 게 힘들어요. 지금 섬에 남아있는 어른들이 섬을 지키는 파수꾼이요."

사방이 아프다는 그는 "아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여수시내 병원에 나가 치료를 받고 와야 견딜 수 있다"며 "살기 힘들다"고 얘기했다.

관절이 아픈 노인들의 지혜, 인공 마늘밭

자봉도에는 위성섬인 '상바구'섬이 있다. 썰물 때면 모래톱을 따라 건너갈 수 있는 상바구 인근에는 동리사람들이 경작하는 마늘밭이 있다. 김매열씨가 서너평쯤 되어 보이는 마늘밭 10개를 만들어 똑같이 분할해 경작하는 마늘밭을 만들게 된 연유를 설명해줬다.
 

 자봉도의 위성섬인 상바구 섬으로 건널 수 있는 곳에 방파제를 쌓아 흙을 부어 마늘밭을 만들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섬주민들이 급경사를 올라가지 않아도 마늘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 지혜다. 마늘밭은 서너평크기의 넓이로 똑같이 분할했다.
 자봉도의 위성섬인 상바구 섬으로 건널 수 있는 곳에 방파제를 쌓아 흙을 부어 마늘밭을 만들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섬주민들이 급경사를 올라가지 않아도 마늘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 지혜다. 마늘밭은 서너평크기의 넓이로 똑같이 분할했다.
ⓒ 오문수

 

 

 사진을 찍자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집에 가져가 쌈 싸먹으라"면서 미역 한 봉지를 싸 주셨다
 사진을 찍자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집에 가져가 쌈 싸먹으라"면서 미역 한 봉지를 싸 주셨다
ⓒ 오문수

 


"보다시피 산이 급경사이고 동리사람들이 모두 연로해 산을 오르내릴 수가 없어서 방파제에 흙을 붓고 마늘밭을 만들어 분할 경작했어요. 방파제를 따라 평지를 가서 마늘을 캐오니 좋지요."

돌아갈 시간이 되어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역을 말리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자 "식사는 했소? 요거 갖고 가려면 갖고 가요"하며 비닐에 미역을 한 봉지 싸준다.  할머니의 인심을 뒤로 하며 돌아오는 배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둔다면 저 섬도 20년 후에는 무인도가 될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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