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뒷짐 진 외손주를 보고 옛 성현의 말씀이 생각났다

어른을 잃어버릴 뻔한 대한민국, 헌재 재판관들이 구했다

  • 입력 2017.03.13 14:15
  • 수정 2017.03.14 07:03
  • 기자명 오문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달말이면 두살이 되는 외손주가 화장실가며 뒷짐을 지고 걷자 주변 아가씨들이 귀엽다며 웃었다. 함께사는 할아버지가 뒷짐진채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따라하고 있다.
▲  이달말이면 두살이 되는 외손주가 화장실가며 뒷짐을 지고 걷자 주변 아가씨들이 귀엽다며 웃었다. 함께사는 할아버지가 뒷짐진채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따라하고 있다.
ⓒ 오문수

 


"어머머! 얘! 재좀 봐봐! 조그만 어린애가 어른처럼 뒷짐을 지고 가네. 정말 귀엽고 웃긴다. 호호호!"

이달 말이면 두 살이 되는 외손주와 함께 일산OO 상가에서 저녁을 먹다가 외손주를 화장실에 데리고 가던 중 지나가는 아가씨들이 던진 대화내용이다.

직장에 출근하는 딸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시부모와 함께 산다. 물론 시댁과 가까운 곳에 집이 있지만 시부모가 자상할 뿐만 아니라 맘이 편하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댁에 들어가길 자청했다.

정년을 앞둔 시아버지가 출근하시면 외손주를 돌보는 건 할머니 차지다. 잠잘 때를 빼고 하루의 대부분을 할머니와 생활하고 일찍 퇴근하시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외손주는 자연스럽게 두 분의 생활모습과 말투를 닮아가고 있다.

일보러 가끔씩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외손주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산책하거나 아파트에서 창밖을 볼 때마다 뒷짐 진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마라'는 성현의 말씀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외손주가 놀이공원에 갔을 때 길거리 화가가 그려준 캐리커쳐 그림. 외손주는 할아버지가 뒷짐지고 산책하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한다. 어른들 행동은 아이들이 본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외손주가 놀이공원에 갔을 때 길거리 화가가 그려준 캐리커쳐 그림. 외손주는 할아버지가 뒷짐지고 산책하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한다. 어른들 행동은 아이들이 본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 오문수

 


"길이 아니거든 가지를 말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격언은 수없이 들었던 격언이다. 서산대사의 시라고 알려졌다가 정조와 순조시절에 살았던 이양연의 시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 시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음미해야할 경구다. 김구 선생께서도 인용해 유명해졌던 시의 한 구절이다.

踏雪野中去  (눈을 밟고 들길을 가면)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아무렇게나 걷지를 말자)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테니)


누가 쓴 시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눈밭을 가더라도 어지럽게 발자국을 남기면 뒤에 오는 사람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가야 한다는 것이 시의 요지이다. 눈 오는 겨울산을 올라 짐승 발자국을 살펴보라. 앞서간 동물의 발자국을 보고 거의 대부분의 발자국이 따라간다. 하물며 인간의 발자국 조심은 말할 필요가 없다.

존경받을 어른이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의 3개월...헌법재판소가 살렸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고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선고를 받는 3개월 동안 대한민국에는 존경받을 어른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젊은이들이 나이든 내게도 '꼰대'라며 망신줄까 두렵다.

찬반양론으로 갈린 국론을 부추긴 사람들 중에는 그동안 지성인으로, 존경받았을 어른(?)으로 꼽혔던 변호사들도 있었다. 그런데 찬성을 이야기하는 변호사보다 반대를 외치는 변호사들이 검색순위 상위에 오른 건 왜일까?

국민 대부분의 상식에 반하고 본인의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태극기는 대한민국 국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밝힌 태극기 관리요령이다.

"태극기는 우리 겨레와 국가를 상징하는 것인 만큼 언제나 소중히 간직하고 잘 다루어야 한다. 해가 뜰 무렵에 달았다가 해가 질 무렵에는 반드시 걷어 들이고, 비 또는 눈이 내리는 날은 달지 않는다"

태극기를 들고 시위에 나선 이들 중 일부는 사용한 태극기를 길거리에 버리고 심지어 우동을 먹다가 한 시민으로부터 험한 소리까지 들었다. 특검에 불려나와 조사를 받고 구속된 이들 중에는 대한민국 최고대학 최고학과를 졸업한 이들도 있다. 줄줄이 구속된 고위직 출신 공무원들도 대부분 동 대학출신이다. 교사였던 나는 "이런 사람들을 키우기 위해 교사들이 땀흘렸던가!" 하는 자괴감에 빠졌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를 보며..."아! 대한민국에 이런 날도 오는구나!"

3월 10일 오전 11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TV를 시청하던 국민들은 탄성을 질렀다. 그 중에는 나도 있었다. "박근혜를 파면한다!" 2시간 후 볼일이 있어 바닷가로 차를 운전하며 바라본 바다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사라지고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에 따뜻한 양떼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가슴을 펴며 지난 3개월간의 일을 떠올려봤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도발하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속만 태우는 대한민국. 경제는 동력을 잃고 사회는 양분된 대한민국. 결혼, 출산, 취직을 못한 젊은이들이 움츠러든 대한민국. 게다가 정치까지 망가진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참담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 노랫말이 떠올랐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강일원, 이정미 재판관...대한민국에 아직도 존경받을 어른이 있구나!
 

 강일원 헌법재판관 모습
▲  강일원 헌법재판관 모습
ⓒ 오마이뉴스

 


강일원 헌법재판관은 지속적으로 피의자측 변호인들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심지어 국회 측이 아니냐는 공격까지 당했지만 조리 정연한 질문으로 피의자 측 변호인들을 꼼짝 못하게 했다.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은 외신까지 보도됐다. 평소 같으면 가십거리로 보도될 해프닝이지만 일하는 여성의 아름다운 실수로 칭찬받았다.

반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땠는가? 세월호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시간에 한가롭게 머리를 올리고 납득되지 않는 몇 시간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그뿐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속미용사 2명을  버컹엄궁전까지 데리고 가기도 했었다.
 

 외신에까지 보도됐던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헤어롤 모습. 올바른 재판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한 이정미 재판관의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  외신에까지 보도됐던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헤어롤 모습. 올바른 재판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한 이정미 재판관의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 연합뉴스

 


재임시절 핀란드를 국가청렴도 1위, 국가경쟁력 1위, 교육경쟁력 1위로 만든 핀란드 여성 대통령 할로넨이 2000년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녀의 평범한 행동이 화제가 됐다. 집에서 쓰던 다리미를 가져와 직접 옷을 다렸고 호텔 전속미용사를 보냈더니 "머리 손질은 내가 직접한다"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존경받을 어른이 없는 사회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때문에 존경받을 수 있는 어른이 나와야 하고 나이든 분들은 언행에 조심을 해야 한다. 뒤따르는 후배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명판결을 내린 8명의 헌법재판관들에게 감사드리며 후배들이 존경할 어른들이 생겨 다행이다.

어지러운 세상에는 시대를 막론한 불문율이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할아버지의 뒷짐 진 모습을 보고 자랄 외손주에게 행복한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