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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록, 김 시인과의 인연

귀농일기(11)

  • 입력 2017.03.15 20:30
  • 수정 2017.03.16 09:41
  • 기자명 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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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윤 (변산바람꽃)

어젠 다록네와 빈목네, 그리고 우리네까지 오랜만에 세 가족이 만나서 회포를 풀었다. 나의 생일을 빙자하여 우리 무등산의 두 가족들이 장흥 화학산 유치로 원정을 갔다. 평소 생일을 챙겨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긴 하지만, 지난번 빈목이 자기 생일에 한턱을 내었던 인과로, 이번엔 자연스레 다록네까지 확대해서 모이게 된 것이다.

어제 만남에서 기념비적인 일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다록의 옆지기 임옥님이 1년 지기 계약직공무원에서 ‘무기계약직 공무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들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했다. 임옥 다록 부부도 희색이 만면하여 득의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고, 우린 이론상 관운이 있다고 나온 다록의 인생이 지금부터 마누라를 통해서 입증되어 인생이 풀리게 된 것이 아니냐고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더랬다.

다록의 인생에 타고났다는 ‘유관운’이 현실로 나타난 건 잠깐 동안의 한치마을 이장직 수행의 때에 그쳤었다. 이를 두고, 관운조차 타고난 바가 없다는 나는 틈만 나면 다록의 그 관운을 놀려댔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넘의 관운이란 게 옆지기를 통해서 돌려막기식으로 나타나버린 것이다.

ⓒ 김자윤

드디어 그는 산골에 들어온 이래 내가 가장 부러움을 샀던 ‘마등족(마누라 등쳐먹는 족속)’이 된 것이다. 빈목과 난 속내를 드러내놓고 샘을 냈다. 아! 우리 논두렁건달들의 영원한 로망, ‘마등족’이여.          

이 친구를 처음 본 건 동복 만수동에 있는 목수건달네 집이었다. 목수건달네는 시도때도없이 사람들이 붐볐기 때문에 간혹 눈에 띄는 예쁘장한 처자나 되면 모를까, 동성일 경우엔 그저 동네건달의 처지를 공감하고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기에 급급하니, 굳이 누군가를 톡 찍어 좋아하거나 접근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리고 당시(1996-97년)만 해도 우린 농촌에 이주한 기념으로 도시와 문명에 편만한 대립과 분열상을 잊고 살고자하는 강렬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변혁의 문제나 남북의 문제, 혹은 지구적인 차원의 거대담론 같은 것을 쟁론하는 일은, 건달 상호간에도 암묵적인 기피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모였다하면 막걸리 한 사발 걸쭉하게 들이키는 것으로 작금의 당면한 농사법에 관련한 얘기들이나 농촌에서 살아남는 법(농촌 생존기) 등을 놓고 때론 진지하게, 때론 가벼얍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던지 한다.

시골살이가 만만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제 막 귀농한 논두렁건달들의 애환기는 날 새는 줄도 모르고 계속되기 일쑤였고, 건달들은 이때다 싶어 얘기 보따리들을 한웅큼씩 풀어놓으며 제썰에 제스스로 감탄을 금치못하는 등 자기도취가 점입가경이곤 했던 것이다.

얘기가 종자파종이나 멀칭, 제초와 각종 유기자연농법에서 꽃을 피우게 되고, 그러다보면 초보건달들의 경우엔 밑천이 금새 바닥을 치기 일쑤였고, 그때를 기다려 으레 중저음이 매력적인 주인장 목수건달의 구성지고 나긋나긋한 경험담으로 화제가 옮겨가고 마니, 초보 건달들은 말할것도없이 청강에 재미를 붙인 예비논두렁건달들조차도 경외심을 가지고 목수건달의 예의 농촌서바이벌경제학에서 귀를 떼지 못하였다.

사실인즉슨, 어쩌면 이들 논두렁밭두렁 건달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머니’에 있었을 것이다.

저 만주 벌판에 출정하며 고뇌했던 의로운 전사들의 처지에 비견될 건 아니었을지라도, 이들의 입장에서도 귀농은 어찌 보면 목숨을 건 각오와 결단을 거쳐 자기인생의 대전환을 감행하는 것과 진배없는 것이었고, 그리고 허구한 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만 바라보고 있는 처자와 어린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가슴 한켠에 짜안하게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써바이벌’이나 ‘머니’같은 단어들은, 그들이 입만 떠벌리면 밖으로 드러내는 철학과 사상의 외피와는 달리, 너무나 절실하고 또 긴요하게 풀어내야할 현실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 하아, 그러니까 말인즉슨, 시골경제란 결국 ‘백만 원의 경제’에 달려있단 말이지. 이걸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써바이벌’의 관건이고말고.

그러고선 수치상으로 교묘하고도 그럴싸하게 100만 원을 짜 맞춰 낸다. 목수건달을 위시한 고참 건달들의 자신만만한 ‘단박한 경제(기실 백만 원)’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구라가 특히 모두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는 까닭은, 이것이 아(我)와 타(他), 지역과 지구를 공히 살리는 온생명적 사유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론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얘기는 종국으로 치달으면서 ‘건달들의 로망’으로 결집된다. 도대체 건달들의 이 거창한 ‘로망’이란 무엇인가? 결국 ‘백만 원의 경제’를 가장 쉽게, 노력 없이 해결하는 것, 이것만이 우리 건달들의 살길이다, 뭐 이런 식으로.

구원한 난제를 풀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이 주어진 샘이라, 다소 들뜬 기색마저 보이는 건달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이 ‘백만 원의 경제’에 회의적 시각을 거두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다.

ⓒ 김자윤

- 그래도 가장 좋은 건 역시 ‘마등’이지. 자연 속에 파묻혀서 음풍농월하며 사는 것이 본래 우리의 소망이라 할 수 있을진대, 그까짓 백만 원을 벌기 위해서 몇 푼 안 되는 먹거리 생산이나, 혹은 닭이나 염소 같은 가축사육에다 아까운 시간과 정열을 다 빼앗긴다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매우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있지. 아믄, 그게 바로 마등족이 되는 것 아니겄남.

알고 보니 그 자리에도 모두의 부러움을 산 마등족이 끼어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입가엔 득의의 미소가 미처 감추지 못한 새로 흐르고 있었으니, 자신들도 이 경우엔 그 ‘마등’이 어쩔 수 없는 최선임을 마치 자인이라도 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인정하는 것이 아닌 고도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생존의 수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때였다. 바로 내 옆자리에서 말없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소주만 축내고 있던 한 사내가 내게 다짜고짜 도발적인 언행으로 관심을 표명해왔다.

- 마등족이란 게 다 뭐야, 이 사람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한심들 하구만. 열심히 주체적으로 살 도리를 해야지, 뭐, 마누라 등을 어쩌고 어째? 네끼 이 사람들, 순 건달들 같으니라구.

하면서 이번엔 다시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 설마 보리, 자네까지 그런 황당한 생각에 자신을 의탁한 건 아니겄제, 응?

사람이란 말이야, 염치가 있어야 된다구 염치, 비록 가난하다할지라도 청빈을 옷입고 명예로운 선비의 본분을 내면의 덕성으로 삼아야할 것이 귀농했다는 넘들이 취해야할 바른 자세가 아닌가 말이야. 나는 비록 중학교도 중도에 다니다 만 무식쟁이에 불과하지만 자네들처럼 비겁한 방식으로 제 인생의 몫을 남에게 의지하지는 않거든.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렇게 말했다구.

ⓒ 김자윤

하면서 맞는지 그른지는 몰라도 그 책의 몇째 쪽 몇째 줄에 써있다는 별것도없는 내용을 목에 힘주어 일장연설을 해댄다. 일단 좌중은 칸트니 화이트헤드니 하는 거장 철학자들의 언급에 주눅부터 든다.

그런데 이 친구 돌연 곁에 앉아 있던 나에게 달겨들지를 않는가. 처음엔 손을 더듬더니, 맘에 든다며 얼굴을 부비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뽀뽀까지 하려 들었다.

_ 이 머시매가 미쳤나, 남들 다 보는데서 왠 우세야, 자네 술이 과했나보군,

하며 집적대던 손과 얼굴을 떨쳐내느라 내가 용을 썼다. 처음엔 이를 대수롭지 않게 흘낏거리던 좌중의 건달들도 뭔가 낌새가 이상한 듯 호기심을 들이대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묘한 변태로 흐르는 걸 직감한 나는, 즉각 분위기 반전을 꾀하는 한편 수습 국면으로 전환시킬 의도로, 제법 양반티를 내며 “어험!” 하고 기침소리를 내었다.

다행히 이 사내는 진짜 변태는 아니었고, 다만 숙기 없는 자라, 취중 관심을 그렇게 난망하게 표현했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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