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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인 100년의 추억, 구봉산 잔디밭

  • 입력 2017.03.18 13:01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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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 진디밭 전경

구봉산에는 여수에서 초중학교를 다닌 어른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명소가 있다. 그곳은 정상에 가까운 서북능선의 고갯마루에 있는 널따란 잔디밭으로 이곳은 1909년 여수에 근대식 교육기관인 여수서초등학교가 개교된 이래 100여 년 가까이 거의 모든 초중학교의 학생들이 다녀간 봄 소풍장소였다. 

그래서 이번 다섯 번째 구봉산이야기는 수많은 여수인들이 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구봉산잔디밭의 추억을 되새겨 보자.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다람쥐 도토리 점심가지고 소풍을 간다 ~"

일주일 전 봄 소풍 날짜가 발표되자 아이들은 설레기 시작했다 사실 봄 소풍은 해마다 5월 초 거의 비슷한 날에 가기 때문에 발표가 되지 않더라도 그때만 되면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며 제발 그날만은 비가 내리지 말기를 바라는 염려와 기원도 함께 하기마련이다

"올해는 어디로 간데?"

"보나마나 '이강산'이지 뭐 ~"

"그나 저나 올해는 비가 안와야 할 텐데~ 우리학교는 소풍만 갈라하면 비가 와분당께"

"전에 소사(학교 허드렛일하는 분)가 집지키는 뱀 두 마리가 나온 것을 죽여 부러서 소풍날만 되면 비가 내린다고 안 하냐?  

비가 내리지 말기를 바라는 학생들의 염원이 담긴 대화이다.
학생들의 간절한 소망이 통했는지 그 해는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다.

아홉시가 되자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을 향해 교장선생님께서는 즐겁고  안전한 소풍이 되기를 바란다는 훈시를 하셨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소풍은 놀러가는 것이 아니고 학업의 연장이라는 말은 역시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정신이 '이강산'에 가 있는 학생들의 귀에는 그 말이 들릴 리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이강산'은 현재 진성여고의 뒤편 산등성이의 이름이다. 당시에 소풍장소로 잔디밭을 말할 때는 '구봉산 잔디밭'이라 하지 않고 앞에 '이강산'이 있으므로 그냥 '이강산'이라 하였다.

미평수원지로 가는 상급생들이 먼저 출발을 하고 반별로 열을 지어 교문을 나선 1,2,3학년생들은 골목길을 벗어나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이강산 갑부집의 웅장하게 닫혀있는 솟을대문 앞에 이르러 평상시 같으면 주눅 든 눈빛으로 쌀밥을 연상하였겠지만, 오늘만은 어깨에 멘 도시락을 믿어서인지 대문 위 현판의 모르는 한자글씨를 한차례 흘깃 쳐다볼 뿐 점심시간을 향한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이강산 부잣집 솟을대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뚝하다

이어서 행렬은 한 구비 가파른 사질목(다부산 끝자락에서 이강산으로 이어지는 현재 思父碑가 있는 곳)을 넘어 절 길에서 벗어나 약수터 산길을 따라 잔디밭에 이르렀다. 잔디밭에는 아이스께끼와 과자장사들이 먼저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학생들의 눈길을 유혹하고 있었다.

"자~아! 1학년 1반은 이쪽으로… "

먼저 도착한 1반의 담임선생님이 눈썰미로 고른 좋은 자리로 인솔을 하자 모두가 우르르 따라 가고 뒤를 이어 속속 도착한 2반 3반~ 13반 그리고 2~3학년들도 제각기 자리를 잡으니 드넓은 잔디밭은 2,300여명 학생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찼다.

도시락 보자기를 한자리에 내려 모아 놓고 둘러 앉아 선생님의 주의사항을 듣고 난 다음 한 시간가량의 반별 오락시간에 이어 열두시부터 한시까지는 기다리고 고대하던 점신시간과 자유시간이다.  점심보자기를 푸는 손길이 빠르다 음료수 삶은 계란은 따로 놓고 도시락을 연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픈데 소풍날이라고 특별하게 싸준 쌀이 많이 섞인 밥과 생선조림에 계란부침 반찬이 마파람에 게눈을 감추게 한다.

아이들이 즐겁게 식사를 하고 노는 동안 선생님들 중에는 탐정처럼 살금살금 보물쪽지를 감추러 다니시는 분들이 있다. 도시락을 까먹고 난 아이들은 아이스께끼와 과자장사 주변으로 모여들어 소풍날 받은 용돈으로 최고의 즐거움을 누린다. 그러나 아예 뒤로 멀리 물러나거나 괴비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바라보고만 있는 아이들도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오전에 이어 다시 오락시간이 계속 된다. 수건돌리기 닭싸움 장기자랑 그리고 빠지지 않는 보물찾기 등등…

네 시쯤이 돼서 그렇게 고대했던 봄 소풍을 마친 학생들은 내일은 등교를 하지 않는다는 해방감에 잔디밭을 떠나 줄줄이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상은 1963년경 여수서국민학교의 봄 소풍의 모습을 상기하여 본 것이다.

새로 조성된 산길은 콘크리트 박힘돌로 단장되어 있다

다음은 그동안 여러분들로부터 들었던 구봉산잔디밭의 소풍에 대한 추억들이다.

-일정 때부터 소풍은 다 이강산(잔디밭)을 단골로 다녔지. (봉강노인당 김*규 노인 81세)

-해방 전 소학교 때는 소풍을 원족이라 그랬거든. (봉강노인당 이 노인 87세)

-내가 해방 전해 관립학교 2학년 때 종산학교(현재중앙초등학교)로 갔는데 그때도 이강산으로 갔어.(신월동 우 노인 82세)

-내가 수고 2학년 때(1956년) 그리 소풍을 가서 노래 부르고 그랬거든. (한산사입구 최 노인 82세)

-62년도에 우리 남교도 여섯 반이었는데 소풍은 이강산(잔디밭)으로 다녔지 (남교 19회 진** 67세)

-잔디밭에서 뒤로 조금 돌아가면 큰 샘이라고 있는데 학생들이 점심때 그물 떠다 먹었지. 꼭대기 안테나 공사 할 때도 그물끌어 올려서 안 썼다고 (대치노인당 서 노인 81세)

- 60년대 산림녹화로 나무들이 크기 전에는 근방이 모두 잔디밭이라 말도 못하게 넓었지 저~기 오리나무들도 다 그때 심은 것들이어.(잔디밭에서 휴식중인 등산객 어르신)

-아마도 여기 잔디밭으로 소풍 온 사람을 다 합치면 여수시민보다 훨씬 많을 것이여.(등산객 노인)

-이제는 학생들 소풍도 없어져 버렸는가 보드만.(등산객 노인)

구봉산 중허리길 우물터 (80m)

이상은 많은 사람들의 구봉산잔디밭 소풍의 기억 중에 어르신들의 이야기들만을 간추렸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에게도 잔디밭의 소풍에 대해 질문을 하면 하나같이 즐거웠던 추억으로 대화에 응해 왔다. 그러나 이제 학교교육의 형태가 변해 학생들의 소풍은 사라지고 어른들의 옛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잔디밭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구봉산을 찾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모습이 바뀌었다.

차량이 들어오는 입구의 길은 인공불럭으로 포장이 되었고 옛날의 드넓었던 잔디밭이 중심으로 많이 좁아들기는 했지만 둘레에 동백나무를 심어 경계를 지었고 음수대 벤치들 편의시설을 갖추어 이름도 잔디광장이 되었다. 

구봉산 잔디밭 후경

그리고 이름에 걸맞게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고 잔디밭을 굽어보는 위치에 국기게양대가 설치되어 있어 지난날 교복 입은 학생들의 국기에 대한 경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태극기가 쉬지 않고 펄럭이며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가꾸어져 한결 포근해진 잔디밭은 시민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수시로 구봉산에 오르는 필자는 잔디밭에서 사람들로부터 구봉산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오전 태극기 아래 벤치에서 어르신들과 나누고 있는 소풍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대치마을 길에서 남녀교사들의 인솔로 무리를 지은 초등학생들이 소란스럽게 잔디밭으로 올라 왔다 현장학습을 나온 여서동 부영초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중허리길 큰샘

순간 나는 ‘100여년을 이어온 소풍은 사라졌지만 저 아이들이 구봉산잔디밭의 추억을 이어가겠구나!’ 하는 아쉽고 반가운 생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잔디광장을 나서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소풍의 추억에 대한 눈길을 떠올리며 그분들을 위해 구봉산잔디밭에서 추억의 소풍행사를 열어 본다면 애향심과 시민화합을 위한 여수만의 모범적이고 뜻 깊은 행사로 성황을 이룰 것이라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역사적인 의미를 살려 잘 보전되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잔디밭을 돌아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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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범 2017-03-20 18:57:05
이글을 읽고 있느라면 , 그 옜날 초등학교 다닐때의 그때 그대로를 회상하는 기분이며,
한편으론 추억에 젖어 그땐 그랬지 ...하는 생각이든다.
오늘도 구봉산 이야기를 연재 하기위해 ,열정과 노력을하며, 발품을 팔고있을 인오를
생각하며 더욱 노력해 주십사하는,멧세지를 전한다. 화이팅~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