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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의 진상을 한꺼풀 벗기면... 이게 진짜 진실일까

[리뷰] 영화 <해빙>이 관객에게 던지는 '찜찜함'에 대하여

  • 입력 2017.03.18 22:58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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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의사 승훈 거울로 자신을 보는 내과의사 승훈

▲ 내과의사 승훈거울로 자신을 보는 내과의사 승훈.ⓒ 롯데엔터테인먼트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댐에서 놀다가 떠오른 한 시신을 본 적 있다. 사람이 죽어 물에 빠져 있으면 퉁퉁 부어오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어떤 사연의 주검인지 모르지만 섬뜩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람은 왜 같은 사람의 사체를 보고 소름 끼쳐 하는 걸까. 고양이나 개 와 같은 애완동물이 차에 치여 널브러져 있어도 대부분 차량은 무심히 지나친다. 한데 사람의 변사체를 길가에서 발견하였다면 어느 운전자도 그냥 지나치긴 힘들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고 앰뷸런스가 달려오고 주변 사람이 우르르 몰려 사망원인이 뭔지 궁금해할게 틀림없다.

영화 <해빙>은 날이 풀려 한강에 떠오른 한 주검을 소재로, 서울 외곽 한 신도시에서 벌어진 연쇄 토막살인 사건의 민얼굴을 보여준다. 추리극이자 심리 스릴러물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죄고 오금이 저리게 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자칫 영화 보는 내내 고문당하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정육점 집을 무대로 벌어지는 토막살인 사건을 다루기에 어쩌면 동네 정육점에 대한 선입견과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푸줏간과 토막살인 사건을 연결 짓기란 너무 쉬운 일이라 사실 물린 면이 없지 않다. 
 

승훈의 원룸 승훈의 원룸, 아직 짐 정리가 안 된 비좁은 방과 거울이 보인다

▲ 승훈의 원룸승훈의 원룸, 아직 짐 정리가 안 된 비좁은 방과 거울이 보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 봐야 할 포인트는 뜻밖의 인물이 살인을 저지르고 일부 그 혐의가 밝혀지는가 싶다가도 진실이 끝까지 덮인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마침내 범인을 잡았다며 수사를 종결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연쇄 살인사건들이 얼마나 실체적 진실에 부합할까. 

한 살인범을 잡으면 그간 미제의 살인 사건들까지 죄다 뒤집어씌워 한 번에 털어버리려는 시도는 과연 없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사건은 사람들 기억에서 차츰 잊히게 마련이니 아마 그렇게 어물쩍 덮이는 일이 없지 않을 거다. 또 경찰의 수사발표와 법정의 판결로 끝난 살인 사건 중에서 실제 사실과 달리 뒤틀리고 가려진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영화 <해빙>은 우리가 아는 진실이 과연 정확한 건지 물으며 평소 나를 선명히 비춘다고 믿는 상식의 거울을 깨뜨린다.
 

미연과 승훈 간호조무사 미연과 의사 승훈

▲ 미연과 승훈간호조무사 미연과 의사 승훈.ⓒ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에서는 의사 승훈(조진웅)와 정육점 집 주인 성근(김대명)이 나온다. 한 사람은 사람의 몸을, 다른 한 사람은 가축의 사체를 다루는 직업이다. 건강을 위해서든 먹을거리를 위해서든 동물 몸에 칼을 대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들은 사체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날마다 보고 만지는 게 몸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이 살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건 전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본의 아니게, 우발적이나마 범죄에 연루될 개연성은 얼마든지 상존한다. 애초 살인자가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약물중독에 따른 정신병증, 사이코패스, 환각 따위에 빠진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의 경우도 그런 한 사례다. 살인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그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눈여겨 볼만하다. 사람이야 본디 편견의 동물이지만 모두가 자신들 좋을 대로 사건을 기억하고 증언한다. 신문 보도는 터무니없이 사건을 왜곡하고 부풀린다.
 

정육점 주인 성근 작업 중인 정육점 주인 성근

▲ 정육점 주인 성근작업 중인 정육점 주인 성근.ⓒ 롯데엔터테인먼트


심지어 '실체적 진실' 규명에 가장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경찰들마저 성급히 예단하고 사건을 마무리한다. 그 사이 실제 범죄 사실은 저 멀리 꼬리를 감춘다. 악마는 따로 없다. 동시에 악마에게조차 나름의 진실은 있는 법이다. 힘들더라도 그 파편화된 진실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모으고자 힘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실과는 달리 애먼 사람을 잡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해빙>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증을 비추며 냉동되고 포장된 진실의 민얼굴이 드러나는 봄날이 속히 오길 고대하는 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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