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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건달들의 회합

귀농일기 (13)

  • 입력 2017.03.25 16:11
  • 수정 2017.03.25 21:00
  • 기자명 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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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건달이 성주를 한다고 한 턱을 내었다. 이런 찬스를 놓칠 리 없는 건달들이 원근각지에서 모여들었다.

ⓒ 김자윤


화순의 모후산과 옹성산, 무등산, 백아산 기슭과 자락에서, 그리고 능주와 도암 일원에서 사는 건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의 곡성과 순천, 장흥, 나주, 장성, 심지어 지리산 주변의 건달들과 전북과 강원, 뿐만 아니라 귀농을 꿈꾸며 염탐하는 서울과 경기 지역의  떠돌이 건달들까지, 인근과 경향각지에서 건달패 나부랭이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이렇게 제법 규모와 격식을 갖춘 회합은 동복 만수동의 목수 건달네 집에서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호걸스런 목수 건달의 품이 넓어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니 이것이 첫 번째 이유가 될 것이고, 귀농 고참으로서 이 양반의 집이 넓은 것이 두 번째 이유가 될 것이다.

ⓒ 김자윤

기역자로 굽은 다섯 칸 겹집의 한옥으로 널따란 툇마루가 놓여 있어서, 누구나 자리를 들이밀고 걸터앉아도 될 것 같다. 왠지모를 친근함과 정겨운 인상에 먼저 한몫 먹고 들어가니 골짜기의 산채의 자격요건을 충분히 갖췄다고나 할 것이다. 게다가 목수 건달의 살림살이가 귀농 초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 세 번째 이유가 된다고 할 것이나, 그 속의 실질과 겉으로 드러나는 명분상의 간극의 유무와 정도에 대해서는 건달들의 소관 사항이 아니었다.


따져보면 이러저러한 장단이 없지 않을 것이나, 중요한 건, 어찌됐건 만수동 목수 건달의 집은 하시라도 지인들의 내방으로, 거기 빌붙어 상주하는 인구로, 한적할 날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 김자윤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찬 방과 마루, 그리고 그 주변에는 왁자한 건달들의 노랫가락 소리와 장단 두들기는 소리, 흥을 못 이겨 일찍부터 어깨를 들썩이는 여인네들의 매무새가 난무하다.
오늘도 역시 산채의 주인 목수 건달은 관우나 장비 못지않을 호방한 웃음을 날리며 쉴 새 없이 좌중의 손님들에게 술 독촉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급한 성질을 참지 못한 한 건달이 신입 건달을 일으켜 세웠다. 물어보나마나 채근하는 질문의 요지는 틀에 박힌 것이었다.

이를테면, 어지간하면 그냥 먹잘 것있는 도시 변두리에서라도 잘 버티고 살 것이지 뭣 땜시 이런 말하자면 옹색하기 짝이 없는 시골 구석때기까지 들어왔느냐,

그리고 귀농을 하든 귀촌을 하든 꿈을 꾸는 건 지 멋대로 하는 거라 내 상관할 바는 아니나,

세상살이는 시골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인데 경제를 해결할 묘책이라도 있는 것이냐,

집은 몇 평 정도의 크기로 지을 것이며 골조와 벽채, 그리고 지붕재는 뭘로 할 것이냐,

아울러 건축비는 어느 정도 규모로 예상하고 있느냐, 마당은 어떻게 처리할 계획이냐, 잔디를 심을 것이냐, 잔디를 심는다면 잔디밭에 나는 잡초에 대한 대책은 강구한 바가 있느냐,

뭐 이런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한꺼번에 횡설수설 쏟아놓고 있었다.

좌중의 인사들이 비록 지금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논두렁 밭두렁 건달들로 하루하루 끼니 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사는 위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의 자기 고백으로 볼 때, 한때는 어마어마한 세간의 스타들이었음을 자타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도 했고, 그리고 자기들은 기존의 모든 기득권을(확인 할 수 없음) 다 내려놓고 친인척과 주변의 각별하고도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언이폐지하고 칼로 무 썰 듯 단호하고 용기 있게 귀농을 실행한 실천가이고, 그리고 청빈함이라든가, 소욕지족의 덕목 같은 것을 아침에 눈 뜨고 나서부터 저녁에 눈 감을 때까지 혹여 놓칠 새라 혹여 잊을 새라 마음속에 꼭 간직하고 있는 이상주의자 라는 것이 여러 주장과 정황으로 보아 충분히 인정되는 터라.          

신입 건달은 주눅이 들대로 들어 있었다. 명성과 학식을 두루 갖춘 여러 강호제현의 구라꾼들 앞에 서니, 선배 건달의 두서없고 황당무개한 질문에도 오금부터 저려오는 티가 눈에 띄는 것이었다.

ⓒ 김자윤


원래 자기도 도시에서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는데 원청의 회사(갑)가 부도를 낸 바람에 하청업자였던 자기(을)만 쫄딱 망했고, 그 이후로도 자기는 출중한 능력과 수완을 발휘해 재기를 노렸으나, 빌어먹을 넘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일등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적인 비애를 뼈아프게 경험하면서, 이에 비분강개하는 심정으로 모든 재산을 처분해서 아무도 없는 산골짝에 들어오게 됐노라고 자신의 입장을 변설했다.


그리고, 아까보단 한결 숙연해진 군중들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이자는 다짜고짜 두서없이 마당 얘기부터 들고 나왔다.

자기는 언젠가 티비의 모 방송에 나온 전원주택의 앞마당을 예리한 눈썰미로 봐 둔 적이 있고, 뿐만 아니라 전원생활이란 잡지의 애독자로서 주로 마당 부분은 놓치지 않고 세심히 눈여겨본다며, 어렸을 적 고향집 마루에 고즈넉이 앉아 앞마당에서 촐랑거리며 뛰어 놀던 강아지와 귀여운 아기 병아리를 몰고 다니는 어미닭의 다정스런 눈짓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꼭 그렇게 생긴 흙 마당을 갖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 뭐 이러면서, 한동안 그 목수건달네 집 앞마당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떼지를 못하였다.

그때였다. 건달들은 이제야 뭣에 잠시 홀렸던 표정으로, 주섬주섬 전열을 정비하고 나선 것이었다.

  ⓒ  김자윤

그러자 이제 와서는 신입도 낌새를 챈 듯 자신이 뭔가 오바 했고, 그리고 그런 정황이 건달들의 마뜩찮은 표정에서 분명히 읽혀졌으며, 이런 상황에선 뭔가 공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본능적으로 지금은 수세국면이다, 라고 눈치를 챈 것이었다.

- 그러니까 설라므네, 뭣이 어쩐다고라우, 집을 짓는디 마당을 맨땅바닥으로 그대로 두겄다 이런 말이구만이, 말허자먼 쌩땅으로 유지해 보겄다, 이런 말인디, 과연 그렇게 맘먹은 대로 될까, 하아, 참말로 좋은 생각이긴 헌디, 그라믄 풀은 어찌케 할라고?


먼저 운을 뗀 건달은 공고와 공대를 나왔으나 그러한 이력이 자신의 인생에 끼어든 것을 매우 불편하게 여기고 있는 옥녀봉 건달이었다.

- 집이가 아직 한 번도 잡초의 매운 맛을 본적이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가상허지 않다고는 볼 수 없제이. 

그렇게 말을 하다 말고 옥녀봉은 신입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 택도 없는 소릴 허고 자빠졌구먼, 자네가 지금 잡초 매다 쌔가 빠져봐야 정신 차리지, 응!


벼락 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고 나니 움찔하는 신입의 처지가 좀 안 됐다 싶었는지 급작이 수습국면으로 돌아간다.

- 아, 그러니까 설라므내, 내 말인즉슨, 대문 입구서부터 마당까지 강자갈이나 쇄석으로다가 시원허게 쫙 깔아부러라 이말이여, 돈 얼마 안 드니께, 내말대로 해봐, 응, 그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마당 관리 차원에서도 효율적이라 이말이여, 알겄는가.


이렇게 말하는 옥녀봉은 급진적 합리주의 좌파다. 그는 해탈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노동이나 사업은 되도록 안할수록 좋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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