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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를 왕국 삼아 '세상을 굴리는' 제왕, 그 허무한 몰락

[리뷰] '범털'과 '개털'에 관하여...영화 <프리즌>

  • 입력 2017.03.30 16:56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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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리즌> 스틸컷 '모범수' 익호는 교도소의 제왕이다

▲'모범수' 익호는 교도소의 제왕이다ⓒ (주)쇼박스


근래 이른바 '범털'들이 많이 생겨났다. 얼마 전까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거대 기업 사주였던 자들이 줄줄이 구속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국정농단의 주범인 전 대통령까지 곧 구속될지도 모른다. 구치소나 교도소의 생활은 어떨까. 거기도 사람들이 있고 시간이 흐르고 먹고, 씻고, 자는 일상생활이 있다. 또 '범털'과 '개털'이란 말이 상징하듯 위아래 서열을 나누는 사회계급도 존재한다.

영화 <프리즌>은 한 교도소를 무대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범죄행각들을 보여준다. 그 교도소에는 제왕 익호(한석규 분)가 있고 모든 죄수는 물론, 교도소장까지도 그 앞에서 굽실거린다. 그는 출소할 뜻이 전혀 없다. 교도소가 그의 왕국이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익호는 언제든 외출할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으며 먹고픈 음식도 얼마든지 맛보는 게 가능하다. 그러기에 '출소'는 그에겐 자신의 왕국에서 쫓겨나는 일이라 참기 힘든 불명예에 속한다.

<프리즌>은 감방의 죄수들이 그곳에 들어앉아 세상을 쥐락펴락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기엔 사회 각 분야 온갖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누군가 이들을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로 만들 수 있다면 무슨 범행이든 가능해진다. 익호는 그것을 이룬 어둠의 제왕이다. 체구도 그리 건장해 보이지 않고 얼굴도 흉악범처럼 생기지 않았다. 건달들처럼 싸움질에 특출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오랜 교도소 생활로 그곳 특유의 생리를 잘 익히고 적응하여 자신의 왕국을 구축하였다.
 

영화 <프리즌> 스틸컷 회식하는 익호와 그의 부하들

▲회식하는 익호와 그의 부하들.ⓒ (주)쇼박스


역시 영화라 무리한 설정이 적잖이 눈에 띈다. 가령 익호가 명령만 내리면 그의 부하 죄수들이 옷을 갈아입고 교도소 밖에 나가 '작업'을 벌이는 장면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 교도소 실제 익호의 왕국이라면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는 "살려고 발버둥 칠수록 죄가 자신을 옭아맸다"며, 그래서 자신은 "교도소 안에서 세상을 굴린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졸개인 교도관과 죄수들의 가정사까지 살뜰히 챙김으로써 그들의 충성을 끌어낸다. 완력이 아닌 검은돈으로 주도면밀히 기름칠하여 부지런히 교도소와 세상을 굴린다.

<프리즌>을 보면서 지금 교도소에 앉아서 익호처럼 '세상을 굴리는 자들'은 누구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몸만 갇혀 있을 뿐, 밖에 있을 때보다 더욱 그곳에서 위세를 떨치며 사는 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구치소에 다녀온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슬프게도 그곳도 돈 많은 자가 왕이란다. 돈 많은 죄수는 사식이나 생필품 반입 등으로 다른 죄수들을 부릴 수 있기에 좋은 예우를 받게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최근 국정농단 사태로 구치소에 갇힌 자들도 그곳에서 여전히 위세를 부릴지도 모르겠다.
 

<프리즌> 스틸컷 교도소 관제탑의 익호와 유건

▲교도소 관제탑의 익호와 유건.ⓒ (주)쇼박스


하지만 설령 그들이 법무부 장관, 교정본부장, 교도소장에 이르는 온갖 권력의 비호로 교도소에서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한들 사회와 격리된 구금생활만큼은 어쩔 수 없다. 수번 달린 죄수복 입고서 자신이 선고받은 징역살이를 감내해야 한다. 법정에 출두할 때면 포승줄과 수갑 같은 계구를 착용해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범털일지라도 익호처럼 교도소 담장을 제 맘대로 드나든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가 '감시와 통제'를 벗어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순 없다.

전두환 씨는 12.12쿠데타와 5.18 광주학살 사건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2년 만인 1997년 12월 특별사면을 받아 안양교도소에서 풀려났다. 이때 그는 교도소 생활의 소감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교도소 생활이란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약간의 농이 섞인 답변이었지만 범털 중의 범털인 그에게도 징역살이가 힘겨웠던 게다.

<프리즌>은 익호가 교도소에서 제왕으로 등극한 비결과 그의 몰락 과정을 다룬다. 그는 자신의 왕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관제탑에서 혈투를 벌이다 비장한 모습의 최후를 맞는다. 교도소 운동장에 쏟아져 나온 모든 재소자가 그의 사자후와 허탈한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것으로 어둠의 제왕은 사라졌을까. 그러지 않을 거다. 또 다른 익호들이 줄지어 순번을 기다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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