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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의 헬기장

  • 입력 2017.04.16 15:10
  • 수정 2017.04.16 15:21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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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소개글]
구봉산은 여수의 핵심적인 산 중 하나다. 본지는 구봉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구봉산 이야기’를 연재할 김배선(66)씨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의 저자이다. 다음카페 '조계산 연구소' 운영자이다.  해양경찰 공무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향토사에 관심이 많고, 조계산 주변의 '여수사건'관련 이야기 수집을 오랫동안 해오기도 했다.  현재 여수문화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순신광장에서 진행해 온 여수문화원의 '수군출정식' 감독을 맡은 바 있다.  8번째  '구봉산 이야기' 다.
정상의 구봉산 헬리포트 전경

구봉산에는 두 곳의 헬기장이 있다.

하나는 정상에 그리고 또 하나는 한재(연곡재) 방향 능선의 중턱 텃골약수터 길과 구봉산약수터 길이 만나는 지점의 약간 평진 공간이다.

필자가 평소 구봉산에 올라 등산객들을 상대로 헬기장의 용도에 대하여 질문을 했을 때 학생들은 물론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어른들까지도 응급환자 수송용이 아니냐는 반문을 받았을 때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헬기장들은 우리나라에 북한무장간첩의 출몰이 빈번하여 전후방 할 것 없이 안보에 위기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인 1968년 직후에 만들어진 군사작전용 시설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구봉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남한) 전역의 주요 산봉우리를 대상으로 진행된 예비군을 동원한 대대적인 국방사업이었으므로 그 수효는 수천을 헤아릴 것으로 여기며 인접한 장군산에도 한 곳이 있다.

정상의 구봉산 헬기장 터

‘헬리포트’라고도 부르는 헬기장은 산봉우리 위를 15~20여 미터 넓이의 원형평지로 다듬어 주변의 공간을 확보한 중앙에 백색 페인트를 바른 돌이나 벽돌 등으로 눈에 잘 띄도록 'H'자를 새겨 놓았다. 'H'는 영어 HELIPORT(헬리포트)의 앞 자이다.

다음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봉우리들에 군사목적의 헬기장을 건설하게 된 경위와 결정적 사건이다. 1953년 6. 25 전쟁이 휴전되고 남북이 대치되는 동안 북한은 끊임없는 간첩파견과 수많은 도발이 계속되었지만 전국의 산봉우리들에 군사작전용 헬기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8년 1월 21일 일명 ‘1. 21’ 또는 ‘김신조 사태’라고 하는 북한의 124군부대 김신조 등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서울의 세검정까지 잠입하였다가 초소에 발각되어 28명 사살 2명 도주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 김신조(27) 1명이 생포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아마도 지금의 현실에 비교한다면 청와대를 목표로 서울에 미사일을 발사하여 명중되지 못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구봉산 중간 지점의 헬리포트(헬기장)

이 사건으로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 우리나라는 그해 4월 1일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뒤를 이어 1970년도 초에 예비군을 동원하여 전국방방곡곡의 주요 산봉우리마다 산악작전용 헬기착륙장을 만들어 향토방위의 시설물로 관리를 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봉산의 두 헬기장도 그 때 만들어진 것이다. 건설당시의 증언을 듣기 위하여 당시 여수예비군중대장을 하셨다는 여서동 거주 안태현(90) 옹을 찾아가 질문을 했더니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면서 1972년돈가 지시가 내려와 예비군들을 시켜서 4~5일가량이 걸린 것 갔다며 처음에는 돌을 날라다 페인트를 칠하여 글자를 만들었으나 뒤에 불럭으로 바꾸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셨다.

구봉산 중간 지점의 헬리포트 터

이런 정황으로 봐 이 헬기장들이 만들어진지도 어느덧 45년가량이 지났다. 그사이 우리의 경제발전과 안보태세의 강화로 북한이 첩보간첩은 물론 무장간첩의 직접침투가 얼마나 무지한 방식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방향을 전환하게 되자 서슬 퍼렇게 눈을 뜨고 전국의 산봉우리들을 지키던 그 많은 헬기장들도 1990년대 이후 차차 방치된 시설물이 되어 이제는 거의가 제 용도를 상실하고 자연의 일원으로 돌아간 상태가 되어버렸다. 

구봉산의 헬리포트도 마찬가지다. 정상에까지 찻길이 나고 여수인들의 평화로운 등산로가 되면서부터는 용도폐기가 되어 중간헬기장의 경우 형태마저 잃어갈 정도로 무관심의 대상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그러니 요즈음의 젊은이들이 그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필자(왼쪽)가 조 아무개(78세, 오른쪽) 노인으로부터 헬기장에 관한 내력을 청취하고 있다.

우리나라 분단시대의 역사적인 시설물 중 하나인 구봉산의 헬리포트 지역에 설치되었던 당시의 배경에 관한 안내문이라도 하나 세워 둔다면, 이른바 ‘헬기장’의 추억과 함께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산림용 헬기장으로 활용가능한 곳을 제외하고는, 표지판만 세워두고 벽돌도 제거하고 나무도 심어 원래대로 되돌려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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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범 2017-06-26 21:04:10
모든님들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길...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