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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스런 행보는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대선주자들은 촛불시민혁명의 본질을 놓치지 않기를

  • 입력 2017.04.21 14:01
  • 기자명 장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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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4월 21자 경향신문, ‘안보 우클릭 경쟁 너무 나갔다’라는 기사로 시작된다. 안보란 무엇일까. 안보는 국민과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할텐데, 누구로부터인가. 그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안보를 위해서 주적(主敵)이 있고, 부적(副敵)이 또 있을까. 

세상은 상대를 적으로 보고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한은 언제나 불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인간사의 삶이다. 그래서 나의 적개심을 버림으로써, 상대와의 평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좌우라는 표현도 역시 그렇다. 세상을 꼭 이분법적으로만 나갈려고 줄기차게 색깔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은 자신의 함정과 같은 것, 대선주자들이 한결같이 상대를 끌어안기보다는 상대를 패대기 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 결국은 싸움이고, 전쟁인 것이다. 

왜 우리는 또 이 시점에서 트럼프의 눈치는 보는 것일까. 굳이 그것이 필요한 것일까. 국회 비준도 받지 않은 양국간의 조약사항도 아닌 '사드'는 기껏해야 양국의 국방부장관의 합의일 뿐인데, 왜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것일까.  안보를 담보로 또다시 망상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왜곡되고 있는 안보를 빌미로 구걸하는 것인가.

정체성을 버리게 되면 결국은 소위 말하는 '사꾸라'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정권욕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지만 그 정체성을 버리면서, 나가는 길을 보면서 참으로 위험스럽다는 느낌이다. 대선주자들의 말들이 그렇다. 

특히나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권 창출하려는 자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비방하고 헐뜯는 일에 앞장서면서, 정작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해버린다. 그러면서도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운운하는 것은 누가 그 진정성을 믿겠는가.

공약은 말 그대로 말이 무성한 이야기의 남발과 같은 것, 우리는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그 공약의 허망함을 늘상 보아왔다. 공약이 참으로 대단하게 사회에 영향을 미쳤던가. 어찌보면 그 인간적인 본질 그것이 더욱 아쉬운 셈이다. 그래서 역사 이래 늘상 인맥, 학맥, 지맥 등으로 맺어지는 것들에서 정치는 끊임없이 변천해오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나는 공약을 믿지 않는다. 분명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는 결과물이 나올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인간을 믿는다. 그 동안의 자신의 모습으로 성장한 정체성 그것이 끝없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가지고 있을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그것을 믿는다. 

아무리 정권욕에 눈이 멀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면서까지 지나친 행보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이번 대통령선거에 대한 또다른 비애감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감정을 건들면서 상대를 비난하고 비방하는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정치적 소신들, 그리고 전문가에 의한 검증이 필요한 시기이지 상대를 서로 헐뜯는 작업이 우선시 되고 있는 지금의 토론 방식은 지극히 소모적인 셈이다. 결국 그 소모적인 토론에 의한 말장난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까지도 팽개치는 일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주적(主敵)을 들먹인다거나 연평도 포격때 보복해야 한다는 트럼프식의 발언은 참으로 위험스런 발상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이제는 박근혜를 계승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촛불은 분명 촛불시민혁명이다. 대선 주자들은 이 점을 분명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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