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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에서 바라본 '돌산대교 공원'

  • 입력 2017.05.01 23:09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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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대교의 일몰은 알아준다.    ⓒ김자윤

돌산대교는 1984년 12년 26일 4년의 공사 끝에 준공되었다. 여수의 구항과 시가지가 마주보이는 여천군 돌산면 우두리(당시) 다리가 연결되는 언덕 위에는 기념공원도 함께 조성되었다. 어느덧 33년이라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야흐로 미항여수 경관의 중심에 서게 된 돌산대교.

필자가 아홉 번째 구봉산이야기의 자료 보충을 위해 구봉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돌산대교를 굽어보다 말고 준공 된지 15년이 되던 해인 2009년 12월 돌산공원에 올라 그곳의 입지조건과 대교의 건설개요를 시어 삼아 적어둔 적이 있다.

당시 숙원이 이뤄지던 그날의 감동을 12행으로 읊조리다 ‘여수 돌산 대교 공원’으로 제목을 붙여 기록해 두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여수넷통 독자들께 돌산대교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먼지를 안고 있는 노트를 뒤적여 구봉산이야기에 실어본다.

최근 여수항 을 오가는 크루즈에서 바라본 돌산대교와 공원   ⓒ 오병종

 

『세상에서 그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걸출명작 만들고자 정성으로 구상해낸

금수강산 빚어내던 천상의 예술가가

반도남쪽 해안절경 심혈을 기울이다

 

좌우국토 아우르는 중앙에 이르러서

거센 바람 거친 물결 부드럽게 다스리자

대양으로 길게 늘인 가느다란 이백여 리

동서뱃길 가로막는 끝단이 너무 멀어

 

황포돛대 노를 저어 희망봉을 돌아서 갈

어부들의 겨운 힘을 뒤늦게야 알아채고

단박에 팔을 뻗어 각도(刻刀)를 손에 쥐고

중간 중간 잘라내어 물길을 튼 다음에

 

아홉 번째 큰 섬 되니 돌산이라 이름 짓고

뒤를 이은 금오 안도 끝자락의 연도 까지

한 줄이던 여수반도 징검다리 되었다만

이 모든 게 인간위한 큰 사랑의 배려일세

돌산대교와 국동항   ⓒ김자윤

첫째마디 틈새사이 오동 종포 당 머리를

꿈턱 꿈턱 정성들여 깎아내고 다듬었소.

구봉산의 앞자락인 물살거센 나루 목이

돌산장사도 한달음에 뛰어넘긴 힘에 겨워

 

물이 들어 벙벙할 땐 옹골차게 뛰어 봐도

아슬아슬 갯가 밟아 버선발에 물 적시고

철벅철벅 비틀비틀 서는 폼 새 안타까워

건너뛸 때 밟으라고 장군섬을 놓았다네

 

세월 가니 시절변해 다리 없인 살수 없어

고대 고대 기다리다 칠팔 일일 그 제서야(1978. 1. 1)

다리 놓자 맘 굳히고 이왕지사 놓을 바엔

미항여수 얼굴이 될 명품다리 놓자하고

 

팔공 공이 사장교로 멋들어진 설계 하여 (1980년 02월)

일백 칠십 구억 들여 팔공 일이 공사착수 (1980년 1월 2일)

이십 오만 인력동원 오천 삼백 철사 줄로

넓이가 십일 점이 길이는 사백오십

 

육십이 미 허공중에 부채 살을 펼치듯이

사선으로 잡아매어 팔사 일이 이륙 완공 (1984. 12. 26)

여수 돌산 모든 이는 두말할 나위 없고

온 나라 백성들이 하나같이 박수 일세

 

자자손손 자랑거리 이와 같이 좋은 날에

어느 곳에 멍석 펴고 잔치하여 기념 할꼬

대교가 훤히 뵈는 쇠머리끝단 언덕 위에

기념 공원 만들고서 탑을 높이 세웠더니

 

구름처럼 모인사람 절세가교 굽어보다

넋을 잃고 말문 막혀 제정신을 찾고 나서

장관이라 장관 일세 경사로고 경사로다

덩실덩실 노랫가락 손을 잡고 춤추었네.

 

가세 가세 여수구경 물도 맑고 인정 많은

충무공의 혼이 서린 한려관문 호국미항

여수전경 보는 데는 돌산공원 으뜸이라

염라대왕 앞에서면 보았느냐 묻는다네.』

제 2돌산대교(거북선대교) 건설 당시의 모습   ⓒ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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