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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그 철학과 삶의 양식에 관하여

귀농일기(19)

  • 입력 2017.05.09 08:22
  • 수정 2017.05.09 08:23
  • 기자명 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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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완

'귀농'이 로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귀촌'이라고 말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백년 살고지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 게다가 경치까지 좋으면 더할 나위 없다. 혹자는 바로 배산 임수에 좌청룡 우백호를 곧바로 떠올릴지도 모른다.

풍수를 따로 듣지 못한 자들도 명산을 배경 삼아 좌우 산자락을 날개 삼아 끼고 있으면서, 집 앞 일정한 거리를 휘고 돌아 나오는 시내가 있다면 금상첨화, 라고 한눈에 알아볼 것이다. 그것도 태극의 모양새라야 좋다고 하지만. 흔치 않은 득수(得水)나 임수(臨水)의 조건을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할 뿐이다.

굳이 욕심을 낸다면 답답하게 터를 가두는 형국이 되지 않는 한, 안산이 저만치 있어 자신이 깃들어 있는 터를 빙 둘러치고 있다면 더 이상 나무랄 데 없는 풍수가 될 것이다.

내가 터를 말할 때 가장 중시하는 건 환경이다. 산이나 물, 마을의 안과 밖, 들, 숲과 나무, 옛길 숲길 산길 꽃길 산책길, 정자나무 등의 환경에 대한 호오(好惡)가 내게 무엇보다 분명한 까닭은, 집은 헐고 다시 지을 수도 있으나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환경은 한번 선택하면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지 않는 한 평생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절친인 '빈목'의 터 고르는 기준과 안목은 내가 아는 한 출중하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던 입지는 1천 미터 이상 높이의 산 아래, 게다가 그 산의 정상이 보이는 터라야 한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런데 말처럼 그런 조건의 터를 잡기는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우선 현실성이 떨어진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런 산과 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인연이 닿지 않는 바에야 꿈꾸는 것조차 난망하다. 혹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거나 하는 공과가 있다면 또 모르되.

어떻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모양이다.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귀농을 했고, 전국의 천 미터 이상 가는 산 지도를 그릴 정도의 열정과 치밀함으로 수년 간을 준비한 끝에, 자신이 준비한 대로 무등의 정상이 바라다 보이는 바로 그런 터전에 안착했다.

그리고 이 친구와의 인연으로, 나도 이곳 무등산의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의 삼태극의 정상이 웅혼한 형상을 드러내 보이는 곳, 바로 옥녀봉의 기슭에 자리잡게 되었으니 큰 공덕의 인연에 무임승차 한 복록이 아니고 무엇이랴.

장소나 환경, 그리고 입지에 대한 취향을 길게 떠벌릴 건 없다. 각기 타고난 대로, 자기 관점대로, 자신의 복덕 쌓은 만큼의 인연으로 구하고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 김경완

다만 내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대목이 하나 있다.

언제부턴가 귀농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고, 따라서 귀농이나 귀촌 지원자도 자연스레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에 대한 분석과 비평은 지금 나의 몫이 아니다.

그들이 농(農)에 귀의(歸依) 한다는 사실 자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바이나, 아쉬운 것은 귀농의 철학과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다.

입만 열면 인간과 사회를 말하고 술자리 담론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웅변가를 자처했던 논두렁 건달들 사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바로 이 '귀농철학'과 '삶의 방식'에 관한 담론일 테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류는 귀농 자체를 목적 삼은 자들이다.

목적으로 삼을 만큼 귀농을 선택하고 결단한 이들의 삶에, 결정적인 삶의 방식의 대전환이 될 만한 사건이어서, 거기에 대고 눈꼽만큼이라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들이 어떻든, 어느 인생의 기로에서 자기를 결단하고, 익숙한 도시문명과 사업과 관계들을 정리하여, 아직은 무엇 하나 손에 잡힐 게 없는 농산촌으로 무작정 들어오는 길에는, 참으로 고뇌스러운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의 생계와 자식의 교육과 안위가 눈에 아른거렸을 터이고, 혹은 말리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애정 어린 충고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들이 더욱 위대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이유는, 내가 보기엔, 드디어 자신의 삶의 무대의 주인공으로 오롯하게 섰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숱한 시간 자신의 삶을 물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한번 뿐인 이번 생을 진정으로 잘 살아보고자 간절히 열망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온 결심과 그에 따른 행동에 충심으로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 무엇을 하느냐를 기준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느냐고 나는 되물을 것이다.

귀농이란 말은 겉의 형태에 관한 개념일 뿐, 그 내용성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황토집이나 텃밭 가꾸기, 유기농이나 자연농으로 재배한 식단 만들기, 아이 시골학교 보내기 등 자신의 가치관과 연관되는 취향이나 선택기준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철학을 대신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계속)

ⓒ 김경완

 

편집자 소개글

‘무등산에서 온 편지’를 보낸 민웅기는 전 여수YMCA총무였다. 조선대 평생교육원에서 ‘노자 도덕경’을 강의했으며 현재 무등산 인문학당 강사다. 「태극권과 노자」저자이고, ‘무위태극선’,'송계선원' 대표이다. 송계선원은 노자와 장자,공자와 맹자,원효와 최수운의 삶과 지혜를 공부하고, 태극권과 명상 등을 수련하는 장이다. 또한 필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최근에는 장자 탈고를 마쳤다. 기존 번역서나 주석서와는 달리 장자 사상을 산책하듯이 풀어서 독자에게 알기 쉽게 필자만의 감상방식으로 저술했다. 본지에서는 ‘청춘일기’ 20회 연재에 이어 ‘귀농일기’가 진행중이다. 마무리 ‘수행일기’가 이어지며, 연재 이후에 필자는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필자 민웅기 연락처 : 전남 화순군 이서면 송계길39. 손전화 010-3621-9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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