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연장자가 나라 다스려야 한다" 청소년들 생각은?

2017학년도 사제동행 독서토론회현장 취재기

  • 입력 2017.05.29 22:33
  • 기자명 오문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시간의 열띤 토론을 마친 토론회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했다
▲  3시간의 열띤 토론을 마친 토론회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26일(금) 저녁 7시, 광양고등학교 음악실에서는 '2017학년도 사제동행 독서동아리 학교 연합 독서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는 광양고와 광양여고 사제동행 독서동아리 회원 38명과 배선미 교사를 비롯한 4명의 지도교사가 참석했다.

1986년에 설립해 2016년(27회) 까지 6588명을 졸업시킨 광양고등학교(교장 송춘현)는 자율형공립고등학교로 '희양3품제'란 특색사업을 운영한다. '희양'이란 광양의 옛 이름으로 3품에는 '학력품', '덕성품', '건강품'이 있다.
 

 26일(금),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광양고등학교에서 열린 토론회를 주관한 배선미 교사가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26일(금),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광양고등학교에서 열린 토론회를 주관한 배선미 교사가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광양고등학교 독서동아리 지도교사인 배선미 교사를 따라 토론회가 열리는 음악실로 들어가니 학생들이 밝은 미소로 환영의 인사를 보냈다.

학생들이 토론해야할 대상도서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이다.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가 기원전 441년에 만든 비극이다. 배선미 교사가 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티고네> 줄거리를 이야기해줬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의 딸이다. 아버지이자 왕인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한 채로 떠돌아다니게 되고, 두 오빠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왕권을 놓고 다투다 모두 죽는다. 그리하여 안티고네의 삼촌인 크레온이 왕이 된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만 성대히 장례를 치러주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들에 그냥 버려두라는 포고를 내린다. 안티고네는 혈육의 정에 이끌려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들에 버려진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몰래 묻어준다. 이 사실을 안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산채로 바위굴에 가두고 죽지 않을 만큼의 양식만 제공했지만 자살하자 안티고네를 연모하던 크레온 왕의 아들 하이몬도 자살한다. 이 사실을 안 크레온왕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침대에서 자살한다.

비극인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둘러싼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 즉 신의 법을 크레온 왕의 명령보다 우위에 두는 안티고네와, 국법을 고집하는 크레온의 갈등이 핵심이다.

논제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주장과 반박이 놀라워

프로그램에 대한 세부계획을 말한 배선미 교사가 남녀학생 4명씩을 배정해 8모둠으로 나누고 모둠별 토론 주제를 정할 것을 지시했다. 45분간의 열띤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정한 주제가 나왔다.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하는가?", "법을 지켜야 하는가?", 과연 연장자가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옳을까?", "안티고네가 옳은가 크레온이 옳은가?", "개인을 위해서 사회의 법을 어길 수 있는가?", "법이냐 도덕이냐?", "도덕 윤리를 지키는 것이 개인의 생명보다 중요시 될 수 있는가?", "크레온은 악당이었나?"
 

 토론회에 참가한 광양고등학교 학생들과 지도교사들. 맨 왼쪽이 배선미 교사이고 오른쪽이 박지아 교사이다.
▲  토론회에 참가한 광양고등학교 학생들과 지도교사들. 맨 왼쪽이 배선미 교사이고 오른쪽이 박지아 교사이다.
ⓒ 오문수

 

 

 토론회에 참석한  광양여고생들이 기념촬영했다. 맨 오른쪽이 광양여고 동아리를 지도하는 김지숙 교사이다.
▲  토론회에 참석한 광양여고생들이 기념촬영했다. 맨 오른쪽이 광양여고 동아리를 지도하는 김지숙 교사이다.
ⓒ 오문수

 


10분간 휴식시간에 벽에 붙여놓은 토론주제들을 살펴본 학생들은 "과연 연장자가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옳은가?"와 "도덕 윤리를 지키는 것이 개인의 생명보다 중요시 될 수 있는가?"의 두 논제를 선택했다. 자신이 선택한 논제인"법이냐 도덕이냐?"가 선정되지 않아 아쉬워하는 정지민 학생이 선정이유를 말했다.

"왕인 크레온이 정한 법은 인간이 정한 실정법이고 죽은 오빠의 시체를 땅에 묻어준 것은 천륜이 정한 자연법이기 때문에 안티고네가 죽은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었습니다"  
 

 토론주제로 유일하게 '법이냐 도덕이냐?'를 선택한 정지민 학생이 선정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토론주제로 유일하게 '법이냐 도덕이냐?'를 선택한 정지민 학생이 선정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시의적절한 주제선정이다. 며칠 전 선거가 끝나 예순이 넘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고, 육지로 올라온 세월호에서는 자신또래의 안타까운 주검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시간에 토론을 이끌어갈 교사는 한국바둑고등학교 수석교사인 명혜정 교사다. 그녀는 교육현장에 적용할 몇 권의 책을 썼으며 여성동학다큐소설을 쓰기도 했다. 남은 인생동안 생태적, 종교적, 정치적 삶이 조화를 이루는 교육을 하고 싶어 하며 여순사건 등의 근현대사 사건이 한국민에게 끼친 영향에 대한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토론은 입론→교차질의→반론제기의 순으로 진행됐다. 명혜정 교사가 토론방식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라운딩 토론의 사회를 맡은 한국바둑고등학교 명혜정 수석교사가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라운딩 토론의 사회를 맡은 한국바둑고등학교 명혜정 수석교사가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입론 - 주장에 대한 사회적 배경과 용어정리 및 주장에 대한 근거제시
교차질의 - 주장과 근거에 대한 허점이나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기
반론제기 - 반대의견에 대한 주장과 근거 제시


'독서연합 모둠'이 제시한 "과연 연장자가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토론이 시작됐다. 주영광 학생이 찬성의견을 주장했다.
 

 독서연합 모둠이 제시한 토론주제인 '과연 연장자가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글과 선정이유를 적은 글 모습
▲  독서연합 모둠이 제시한 토론주제인 '과연 연장자가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글과 선정이유를 적은 글 모습
ⓒ 오문수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40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나이든 사람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연장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주영광 학생의 주장에 대해 김희중 학생이 반론을 폈다.

"연장자가 항상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많은 체험을 통해 현명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왕의 자질은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광양여고 황은채 학생이 "경험 많은 연장자가 지혜가 많아 소통하기가 쉽기 때문에 연장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자 이웃한 모둠에 있던 이정건 학생이 반론을 제기했다.
 

 황은채 학생이 자신의 주장을 발표하고 있다
▲  황은채 학생이 자신의 주장을 발표하고 있다
ⓒ 오문수

 

 

 다양한 경험을 쌓은 연장자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고 발표한 이정건 학생
▲  다양한 경험을 쌓은 연장자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고 발표한 이정건 학생
ⓒ 오문수

 


"연장자는 사는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고착화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같은 예상치 못한 국가재난이 닥쳐왔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꼭 연장자가 통치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에 반대합니다"

찬반 모둠 간에 치열한 논쟁이 계속됐다. 김정운 학생이 "나이든 사람은 고정관념 때문에 유연한 대처가 불가능합니다. 국가를 다스리기 때문에 창의적이어야 합니다"라는 주장에 이동섭 학생은 "연장자는 많은 실수를 경험해 축적한 지식이 많아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지애 학생이 "대통령은 40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나이제한이 있다"고 하자 주영광 학생이 첨언했다.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이에 하한선을 둔 것은 사회가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룰을 거부하는 것은 사회를 거부하는 것입니다"라는 주장을 해 박수를 받았다.

'연장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할까?'에 대한 찬반토론이 가열된 가운데 새로운 제안도 나왔다. 박경인 학생은 "과거에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여성이 참여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사회적 룰을 개정해 젊은이들에게도 문호를 열어야 합니다"라는 신선한 제안도 나왔다.

두 번째 토론은 '희희다독 모둠'이 제시한 "도덕 윤리를 지키는 것이 개인의 생명보다 중요시될 수 있는가?"이다. 치열한 논쟁이 계속됐다.
 

 '희희다독 모둠'이 제시한 '도덕 윤리를 지키는 것이 개인의 생명보다 중요시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글과 선정이유가 적힌 글 모습
▲  '희희다독 모둠'이 제시한 '도덕 윤리를 지키는 것이 개인의 생명보다 중요시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글과 선정이유가 적힌 글 모습
ⓒ 오문수

 


한 학생이 "안티고네가 죽지 않고 살아서 끊임없이 크레온을 설득하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주장하자 다른 학생이, "아닙니다. 죽음으로써 크레온이 잘못했다는 걸 보여주는 선지자가 있어야 사회가 유지됩니다"라고 반론을 폈다. 동아리 '희양찬란'에 속한 정평곤 학생이 죽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안티고네의 죽음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지닌 가치는 우주의 크기와 같다며 죽은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희생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편 정평곤 학생이 발표하고 있다.
▲  "한 사람의 생명이 지닌 가치는 우주의 크기와 같다며 죽은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희생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편 정평곤 학생이 발표하고 있다.
ⓒ 오문수

 


"한 사람의 생명이 지닌 가치는 우주의 크기와 같아요. 따라서 죽으면 우주를 잃는 것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위해 산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희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조문정 학생이 정평곤 학생의 주장에 대해 세월호 선장을 빗대어 반론을 제기했다.

"세월호 선장이 자신의 생명을 중시해서 살아나왔지만 그 사람이 혼자 살아오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살렸다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나요?" 

이지선 학생이 "세월호 사건 때 목숨을 바쳐 학생을 구한 후 순직 처리된 경우도 있고 소방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자 고경민 학생이 나섰다.

"일제강점기 시절 먼저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한 애국지사는 죽어서 세상을 바꾼 케이스입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5월의 밤은 시원했지만 토론이 계속되는 음악실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다. 끝종을 울리지 않으면 밤을 새울 것 같은 토론장에서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토론자는 광양여고 이지선 학생과 광양고 이동섭 학생이다.
 

 토론을 가장 잘한 사람에 선정된 두 사람. 학생들이 선정했다
▲  토론을 가장 잘한 사람에 선정된 두 사람. 학생들이 선정했다
ⓒ 오문수

 


열띤 토론을 끝내고 밤 10시가 넘어 여수로 돌아오는 길에서 차창을 열었다. 토론장에서 데워진 몸이 시원한 바람에 반응한다. 괜히 기분이 좋다. 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