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웅 작가의 제15회 개인전이 “時間의 遺蹟”(시간의 유적)이라는 주제로 9(금)일부터 이달 28(수)까지 남원 예가람길미술관(전북 남원시 동헌길 84)에서 초대전으로 열린다.
양해웅의 작품은 인간존재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하여 그 인간들이 관계 맺는 자연에 대하여 추상적 조형언어를 빌어 표현한 입체작품이 주류를 이루었고 야외영구조형물과 평면작품, 그리고 화선지에 먹그림, 지속적인 서예 연마와 크로키 등등 조형예술 전반에 걸쳐 폭넓게 작업해 왔다.
그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은 창의적 호기심은 이번 “時間의 遺蹟”展에서 발표하는 “Rainbow Blackhole1, 2” “위험한 旅程”등 신작을 선보이며 더욱 깊어진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성찰을 형상화하고 있다.
전시오픈 행사는 6월9일 오후6시에 남원 예가람길미술관에서 열리며 관람시간은 매일오전10시부터 오후7시까지 가능하며 월요일 휴관한다.
양해웅 작가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20여년간 중앙대, 전남대, 경상대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사)한국미협 여수지부장을 역임하였다.
[미술평론가 이승우 서문]
앓음이고 알음이 아름다움이다.
대학 시절 어느 밤에 계단 쪽에 앉아서 환등기로 그림을 본 일이 있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엄청난 열정의 스승이 쉬는 시간까지도 할애하여 후학들을 지도하려는 눈물겨운 자리였다.
화면에 후안 미로(Joan Miro, 1893-1983)의 그림이 나왔을 때 스승께 물었다. “어느 면에서 미로가 입체파입니까?” 스승은 대답했다, “”누가 미로를 입체파라고 하든가? 미로는 미로파야.“
그 스승은 국문과를 졸업하고 다시 속칭 일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그 때 막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오신 분이라서 스펙(spec)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 한 마디는 나에게 틈틈이라도 이론을 공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모든 그림에서 그것만의 독창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보는 근거가 되었다.
모든 그림은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지문이 다르듯이 그것만의 숨결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그림과 그보다 더 유명했던 사람들과의 유사성을 들먹이는데, 그건 아니지 싶다. 서툴더라도(글이건 그림이건 창조는 항상 서툴다) 남과 다른 그 무엇을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이셨던 임영방 박사께서 당시 군산의 누옥(陋屋)을 방문하시고 대담을 나누던 중에 평상시 의심하고 나름대로는 결론을 혼자서 내린 삽화와 회화의 차이점에 대하여 물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000을 실 예로 들며 그 사람의 그림은 삽화인지 회화인지에 대하여, 즉 기능만인지 진실도 있는지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나눈 적도 있다. 얘기가 끝날 때 쯤에 그 분은 “그 사람의 그림은 금방 잊혀져. 오래 갈 수 있는 것이 아냐.”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간혹 다른 그림을 평한다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림이, 넓게 말해 예술이, 겸허하게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해방, 인간의 이해와 사랑의 성취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의 경영을 통해 정신의 위대한 유산들을 심오하게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면 대체 예술이라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양해웅에게도 분명 그토록 죽기 살기로 그림을 하는 근거가 있을 것이다. 어느 대가의 해학적인 표현처럼 “그림은 평생 그 안에서 울고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놀이” 라는 표현이 양해웅에게도 딱 맞는 것이라서 그의 작업 공간은 그만의 놀이터일 것이다. 그 안에서 다양한 재료를 자르고 채색하며, 구부리고 용접하여 그 편린들을 또 조합을 할 것이다
그는 이미 500년 이상 존재하던 캔바스와 액자마저 진부한 재료로 치부해버린 것으로 느껴진다. 내가 볼 때 저런 것이 회화의 재료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온갖 재료들을 마구(?)사용하는 양해웅의 작품들이 과연 회화인지 조각인지 설치인지도 모호한 상태에서, 곡선은 직선을 위해 존재하고, 그런가 하면 곡선을 위해 직선이 존재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출해낸다.
실타래같은 곡선이 유연하다거나 능글맞게 있다가도 스스로 결정한 엄격함과 숭고한 절제가 따로, 또 같이 존재하며, 부분 부분이 아름다우면서도 전체가 조화되는 고전적인 개념의 통상분화의 원리마저 본능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작품에선 그 흔한 눈속임(illusionism)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고 물성(物性)의 강조를 통한 진실만이 정확, 정밀하게 계산되어 보여 지고 느껴진다. 어느 작품은 정교한 디테일(detail)이 좋고, 또 어떤 것에서는 야생마처럼 거친 붓질이나 조합이 보는 이들을 숨차게 한다.
그의 편린들이 추억이든 지성이든 감성이든지간에 그것들을 다시 종합하여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 그의 미술 공장에는 아마도 어느 외국 평론가가 그를 연상하고 떠올렸을 브랑쿠지(Constantin Brancusi, 1876-1957)의 “황제처럼 주문하고, 신처럼 창조하며 노예처럼 일하거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노예처럼 일하면서도 스스로 황제가 되어 주문하고 신처럼 창조하는 기쁨에 겨웠으리라.
“세상의 첫 번째 시인은 ‘하늘은 푸르다’라고 말했을 것이고, 두 번째 시인은 ‘당신의 눈은 하늘처럼 푸르다’라 했으며, 먼 훗날의 시인은 ‘당신의 눈에 하늘이 보인다’라 할 것이고, 오늘의 시인은 ‘하늘과 같은 당신의 눈이다’라고 감탄할 것이다.”라고 막스 쟈콥(Max Jacob, 1876-1944)은 예술의 역사성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이어서, 아름다움이란 멋지다가 아니고 더구나 근사하다는 말은 더 더욱 아니다. 아름다움은 앓음이고 알음이다. 앓지 않고 아는 아름다움은 존재할 수 없으며 알지 못하고 이룰 수 있는 아름다움은 없다.
그리고 이제 조용히 생각해보자. 이때 이곳에는 그의 그림(?)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2017년 5월 미술평론가 이 승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