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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의 자생나무와 심고 가꾼 나무

구봉산 이야기 (13)

  • 입력 2017.07.27 00:40
  • 수정 2017.07.28 09:13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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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열세 번째 구봉산이야기는 지난 회 나무 편의 ‘헐벗은 구봉산’에 이어 구봉산의 조림과 치산녹화란 제목으로 현재의 울창한 숲이 되기까지 심고 가꾸어온 과정을 돌이켜 보고자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도 제시될지 모르겠다.

대부분 참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자생수림

나무심기 운동의 시작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벌거벗은 우리(붉은) 산엔 살 수 없어 갔다오 ~
산에 산에 산에다 ♪ ~나무를 심자 ~ 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
메아리가 살게 시리 나무를 심자.”

‘메아리’라는 이 동요는 나무심기 독려를 위해 만들어 초등학교 5학년 음악책에 실려 있던 노래다.

6~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식목일 때마다 나무를 심으러 가며 목청 높여 불렀던 이 노래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이 동요를 글머리에 올린 것은 당시 우리나라 산의 모습과 식목을 통한 산림녹화에 대한 간절함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벌거벗었던 산들이 지금은 산림으로 울창하고 푸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지난 50여 년간 온 국민이 애써 심고 가꾸어 온 결과이며 구봉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성공적 치산녹화를 위한 국가시책으로 온 국민이 조림에 나섰다고 할 수 있는 1963년부터 79년 이후까지 조림사업이 진행됐다.

쌍바위 능선 아래 둘레길 편백림 쉼터

국가사업으로 3단계로 나눠 진행됐다. 당시 조림과정을 보면 초기의 산사태 예방구역의 응급조림에서 녹화를 위한 속성수 심는 단계로, 후기에는 경제림조성으로 발전되어 갔다.

구봉산도 녹화 사업 대상

구봉산도 전국적인 치산녹화에 발맞추어 조림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지금 구봉산을 뒤덮고 있는 나무들은 조림수와 자생수로 구분이 된다. 조림수는 수종별로 군락을 이루었고 주로 북방에 편재되어 있다. 그럼 자생수와 조림수를 수종과 위치 조림시기로 나누어서 자료완 증언을 통해 확인해 봤다.

2016년 대형참나무를 솎아낸 여서배수지 앞 소나무 보호림

자생수와 조림수

먼저 자생수. 구봉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생수는 우리 고유의 소나무(육송과 해송)와 참나무를 대표로 하는 잡목들이다. 조림이 시작 된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생목 특히 참나무와 일부잡목들은 상상을 초월한 거목들로 자라 구봉산의 주인을 자처한다.

오히려 사람들의 간섭만 없으면 자생녹화는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자연의 섭리를 대변하고 있다. 다만 토질이 척박하여 조림마저도 할 수 없었던 남쪽 방면인 국동의 뒤편은 벌거벗은 곳에 뿌리를 잘 내리는 소나무들이 왜소한 푸름을 유지하고 있다.

여서동 한재입구 아카시아

다음은 조림수. 조림 목은 아카시아, 오리나무, 리키다소나무(삼엽송), 편백, 유실수 그리고 최근에 해마다 심고 있는 여수의 시화인 동백나무다.

당시 조림 1순위는 아카시아와 오리나무

연곡약수터 계곡의 조림 아카시아

아카시아와 오리나무는 조림 초기에 심은 나무이다. 처음부터 식목에 참여 하였다는 노인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박정희 대통령 초기에 심은 나무가 아카시아였고, 마을마다 할당된 인원이 동원되어 주로 산사태가 난 계곡과 비탈에 심었는데 여서동 연곡약수터 아래계곡과 위의 꽃뜰방 비탈에 많이 심었다고 했다.

잔디광장 정상길 조림 오리나무

그러나 아카시아는 산을 망친다하여 곧바로 오리나무로 바뀌어 구봉산의 잔디밭 주변에 주로 심어져 지금까지도 무리지어 있다. 아카시아는 대부분 제거 되었으나 당시에 많이 심었던 연곡약수터 위에는 원 조림목과 번식된 나무 일부가 남아 조림역사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다.

‘리키다 소나무’를 아시죠?

73년 조림 기록바위 옆의 리키다소나무

아카시아와 오리나무의 무용론에 따라 채택된 나무가 일본수종인 리키다소나무였다. 특징은 속성 수에 곧게 자라고 특히 송충이에 강해 산림녹화와 농촌 연료림 대체용으로는 안성맞춤인 나무였다. 리키다는 64년경부터 심기 시작하여 1차 치산녹화기간까지 식목의 주종이 되었다.

당시에는 식목일이 공휴일로 공무원 학생 직장인 할 것 없이 전 국민이 동원되어 나무를 심는 날이었으며 필자도 초등학교 6학년 식목일에 마을 뒷산에다 리키다를 심었던 기억이 난다. 구봉산에는 리키다소나무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곳에다 심었지만 목재로서의 가치가 없어 베어지기도 하고 생장에 밀려 차차 줄어들었다. 그런데 필자가 2012년 자료 수집을 위해 대치마을 뒤편 정상아래(둘레길 위) 깨맷등 능선을 탐색 중에 편백림 속에서 리키다소나무 조림기록이 있는 바위를 발견하고 기뻐했었다 기록내용은 다음과 같다.

73년 당시의 리키다 소나무를 조림한 내용을  바위에 기록해 두었다

거기에는. 73년 기념조림. 대치부락. 면적 1정보. 수종 리키다 300본. 식재일 73년 4월 5일. 기관 여수전신전화국. 업무과장등의 기록이 있다. 

리키다 역시 목재로서의 가지가 없어 2차 치산녹화부터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한때 ‘편백’이 대세이기도 했다.

리키다 조림지 아래 둘레길 돌탑 쉼터 편백나무 군락

우리나라에 편백조림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경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스님들에 의해 사찰주변에 조성한 것이 시작이다. 그랬던 것이 속성수 중심의 1차 치산녹화에서 경제수로 전환을 하였던 79년을 전후하여 대대적인 편백조림이 시작된다. 구봉산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2차 치산녹화기간에 조림이 이루어지며 일부는 최근까지도 계속되었다. 

쌍바위 능선 아래 둘레길 편백림 쉼터

구역을 보면 구봉산의 북쪽인 텃골약수터 상단 꽃뜰방 경작지 빈터에서부터 서편인 한국화약 뒤편 쌍바위 약수터 아래까지 약4km 거리를 옛 중허리(일부는 둘레 길과 겹침)를 중심으로 능선과 비탈을 돌아가며 집단으로 조림을 하였다. 그래서 구봉산 뒤편의 주요 삼림으로 자라서 숲 그늘을 이룬 지금은 둘레 길을 거니는 시민들의 행복한 쉼터가 되고 있다.

유실수를 심자!

대치 큰터골 우측 조림지의 노후 밤나무

1차 치산녹화가 마무리되고 나서는 소득증대를 위해 유실수 조림을 적극 권장하여 가로수도 유실수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가까지 했다. 그래서 우리지역에서는 개인들이 주로 감나무와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 구봉산 대치마을 뒤 큰터골 우측 완만한 경사지에는 당시에 조성하였던 밤나무 밭이 지금은 노후 목으로 방치되어 있다.

이제는 시나무 ‘동백’이다.

잔디밭 입구 등산로 좌우 조림동백

동백은 여수를 상징하는 꽃나무이다. 시에서는 구봉산의 모든 등산로를 동백 꽃길로 가꾸기 위한 목적으로 10여 년 전부터 해마다 심어 왔고 이제는 둘레 길과 가까운 주변까지 넓혀가고 있다. 그래서 관리가 잘되는 구간은 이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한재에서 잔디광장 주변까지 이다. 동백은 산림녹화를 위한 조림이 아니다 관리에 힘써 앞으로 여수의 명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입산금지와 산림보호

산림녹화에 여념이 없던 6~70년대에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는 전국의 산비탈에는 치산녹화를 위한 광고와 경고입간판들이 자리를 잡아 사람들의 시선이 비켜갈 수 없었다. 당시의 문구들을 떠올려보면 입산금지 산림보호 이외에도 산림녹화 치산녹화 산불조심 등이 있었고 ‘6 4 조 림’ ‘6 5 조 림’과 같은 조림연도를 알리는 문구도 있었다.

이 입간판들은 소 대형의 일체식도 많았으나 한 글자를 1~2m 크기로 만들어 산허리를 돌아가며 50~100m 간격으로 세워 몇 키로가 떨어진 먼 곳에서도 한눈에 보이도록 하였으니 당시의 산림녹화가 얼마나 범국가적인 사업으로 절실하게 추진되었는지를 돌이켜 보게 한다. 구봉산도 이강산과 한재 등에 이런 안내판들이 서 있었다.

세월이 흘러 숲이 우거져 버린 뒤에 그곳을 찾았을 때 넘어져 있는 광고판의 글씨 부분은 이미 삭아 버리고 녹슬어 썩어 가고 있는 지주의 뼈대는 치산녹화의 성공에 일조한 보람에 만족스런 미소 짓는 듯 보였다.

구봉산 수종 선택해 체계적 조림 계획 필요

대치 깨맷등 73 리키다 조림지 밑 둘레길 편백

치산은 치수와 함께 국가경영에서 가장 으뜸 되는 기본이다. 이제 구봉산은 시민들의 인내와 노력으로 그토록 갈구했던 산림녹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난세월의 서두르기만 했던 관념적인 조림은 보편적인 만족 이상의 성과에 이를 수 없었다고 본다.

그래서 이제 구봉산도 미래를 위한 큰 그림의 치산계획을 수립하여 과감하게 실천할 때라 여겨진다. 

예를 든다면 이제는 열매가 큰 참나무 종의 번식이 입방적이므로 거목이 되어 버린 뒤에 일일이 베어낼 것이 아니라 자생 잡목림 구역은 지정을 하여 다른 수종과 조화로운 숲이 되도록 미리부터 관리를 해야한다.  

현재 심고 있는 동백도 가로수 성격이 아니라면 매년 분산되게 심기보다는 대단위 숲을 목표로 어느 한 골짜기를 택해 지형이나 동물의 형상을 그려 이에 맞추어 조성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여수의 명물로 탄생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동백 이외에도 여수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좋은 수종은 많을 것이므로 계획에 따라 조급하지 않게 실천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구봉산이 가야할 기대되는 치산방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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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범 2017-07-26 11:15:01
초등학교때 불러본 메아리란 노래.... 정말 오랫만에 음미해보는 가사다.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했듯이,아무리좋은 금은 보화를 가지고있어도,누군가가
감상 해주지 않고 ,평가해주지 않은다면. 빛좋은 개살구가 아니겠는가...?

지나온 역사를 기록하며,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삶에 새로운 활력소와 희망을
찾게 하면서,내면에 잠재된 마음을 글로서, 표현한다는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아뭏튼 김배선의 구봉산 이야기는, 산림녹화와함께,치산을 위한 우리모두의 희망과
염원을 담은 도약의 발판이 되길,기원한다,,,^^-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