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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마을의 아주 특별한 고목들

구봉산 이야기 (14)

  • 입력 2017.08.05 10:58
  • 수정 2017.08.05 11:37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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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 갓뒤마을 예전 공관영 씨 댁 대문 안 살구나무. 이젠 집주인이 바뀌었다.

이번 구봉산이야기는 예고했던 것처럼 3회로 나눈 ‘구봉산의 나무’ 마무리 편이다. 여수의 유일한 도심 속 시골마을인 구봉산서북자락 대치마을의 작은 동네 ‘감낭골’과 ‘깟(갓)뒤’에 있는 아주 특별한 고목들이 주인공이다. 

세월의 연륜과 저마다의 유래를 안고 필자가 구봉산을 연구하느라 옆을 지나다닐 때마다 손짓을 하여 그들과 나눈 대화를 여수넷통 독자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나무가 있는 곳인 강남골과 갓뒤의 지명부터 알아보자.

400여 년 전(1590) 구봉산 서북자락인 이곳에 봉(奉)씨 일가가 처음 터를 잡았다. 대치마을은 ‘중똠’, ‘건너몰’, ‘감낭골’, ‘갓뒤’ 네 동네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모든 고목들이 있는 감낭골은 마을회관이 있는 본 동네인 중똠 좌측의 좁다란 골짜기의 끝자락이며 감나무가 많아 감낭골로 불렀다.

다음으로 갓뒤는 현재 한국화약 후문 앞으로 1940년 일제가 신월리에 군사비행장을 건설하려고 강제로 철거 시킨 250여 호 중에 몇몇 집이 넘어와 대치의 뒤편 고개(한재) 길가에 자리를 잡아 갓뒤라 불렀다. 뒤늦게 생긴 동네다.
이 두 마을의 특별한 고목 일곱 그루를 차례로 안내한다.

서의범 씨 댁 마당의 느티나무

1. 감낭골 서의범 씨 댁 마당의 300년 느티나무

감낭골은 커다란 나무들과 잡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재 일곱 집이 모여 사는 비탈을 돌아가며 지붕들을 누를 듯 줄지어 있는 수령을 짐작하기 어려운 7~8그루의 느티나무 거목들은 한갓진 골짜기를 고요와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두 번째 집인 서의범(69)씨 댁 마당에는 2m 높이에부터 양 갈래를 한 바닥에서부터 허리를 굽힌 노쇠한 모습의 느티나무 한 구루가 세월의 무게를 진 체 가구의 일부가 되어 주고 있다. 이 나무의 수령을 정확히 아는 분은 없다. 집의 주인인 서의범 씨도 감낭골에 사람이 살면서 심었지 않겠냐고 할 뿐이다. 

이 나무의 나이를 300년이라 한 것은 현재 마을회관 옆 보호수의 수령이 200년 인데 이 나무가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노인들의 증언과 강남골 입촌이 300여년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 느티나무의 가까이 서면 나이를 따지고 싶지 않아 진다. 늘 대문이 닫혀 있는 집안이지만 오래오래 장수하기를 바란다.

2. 감낭골 대밭 속의 150년 넘은 모과나무

박영희 노인 대밭 속의 모과나무

감낭골 좌측 언덕 박영희 노인 집 옆의 대밭 속에는 둘레가 90cm에 달하는 곧게 자란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러나 모과가 주렁주렁 열릴 때에도 댓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박 노인께 수령을 묻자 내가 어릴 때에도 저렇게 컸다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150년은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순천 정원박람회장에 심겠다고 사러 오기도 하고, 조경회사 업자들도 팔라고 했지만 팔지 않았단다. 

옛날 대밭이 없을 때는 모과가 노랗게 열리면 동네의 자랑거리로 아이들이 몰래 따가려는 것을 지키기도 했다며 자랑스러웠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3. 감낭골 숲 몰랑의 모과나무 거목

박영희 노인 소유 숲 몰랑의 모과나무

역시 박영희 노인 집 앞 밭 위에 있는 숲 몰랑 모과나무는 밑동의 크기가 두 아름(270cm)에 가까운 기형적으로 자란 나무이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중심부가 썩어 가지들이 근육처럼 외형으로 성장하여 그런 형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떻든 보기 드물게 특별하게 자란 모습이다. 

대밭의 곧게 자란 나무보다 수령이 훨씬 많아 보이지만 서로 비슷할 것이라고만 짐작할 뿐이다. 이 나무 역시 정원수로 사가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산소 옆에 있는 나무라 팔지 않았다. 순천 정원박람회장에서 탐냈다면 두 그루의 모과는 상당히 가치있는 나무들 아닌가? 

4 박영희 노인의 밭 옆 숲속의 박달나무

박영희 노인 밭 뒤 숲속에 있는 박달나무

이 나무는 박영희 노인 집 앞 밭 옆이기고 하고 석불사라는 암자 바로 뒤이기도 한 언덕에 있다. 고목들과 신우대가 우거진 숲속에는 둘레가 95cm나 되는 울퉁불퉁 나이를 채우며 자란 정말 뜻밖의 박달나무 노거수다. 

마을 노인들께 나이를 물으니 모두들 망설이는 중에 80대 노인께서 “우리가 어렸을 적에도 저렇게 컸어!” 하고 양손으로 아름을 지어보이며 “ 박달나무는 잘 크지 않으니까 모과보다 나이가 작지는 않을 것이여!” 하였다. 그렇다면 200년 가까이 되었을까? 

곁에 계신 노인들 모두 “배고팠던 어린 시절에 몰려가 박딸을 따먹었지.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마을에 이런 박달나무는 없을 것이여”하고 대단한 긍지를 보인다. 필자도 보호 받아 마땅한 나무라는 생각이다.

5. 강남골 100년 된 살구나무

박영희 노인 집 앞 살구나무의 봄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살구열매

대치마을 강남골에서 구봉산 등산로로 들어서는 길옆의 밭가에는 둘레가 2m나 되는 살구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를 기세로 해마다 봄이면 하얀 꽃을 만발하고 가을이 되기 전에 누런 살구를 바닥이 보이지 않게 떨어뜨린다. 이 나무 역시 박영희 노인의 부친께서 심은 것으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며 자신의 나이에 비추어 수령이 100년은 넘었을 것이라 했다. 우리의 주변에서 100년이 된 살구나무를 만나기는 그리 흔치 않다. 

6. 신월리 비행장 공사로 쫓겨 온 공관영 씨가 깟뒤에 심은 살구나무

대치 갓뒤마을 예전 공관영 씨 댁 대문 안 살구나무. 이젠 집주인이 바뀌었어도 봄이면 화사하다.

대치마을의 끝자락인 한국화약의 후문 앞의 공관영(95세 작고)씨가 살았던 집의 대문 안에는 밖에서 얼핏 보면 매화나무 고목처럼 아주 잘생긴 살구나무 한그루가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끈다. 이 나무의 수령은 75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탄생이 역사적 사실과 연결되어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다. 

이 살구나무는 서두에 말했듯이 1940년 일제로부터 신월리에서 철거를 당한 공관영(당시 18세)씨 부모가 이곳에 이주해와 집을 짓고 심은 것이라고 마을노인들은 증언하였다. 그러니 우리 여수가 겪은 일제강점의 슬픈 역사에 의해 태어난 아주 특별한 나무가 분명하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무를 심었다는 본인도 작고를 하고 자식들도 떠나 나무는 새로운 집주인을 맞았다. 전원생활을 하려는 듯 문이 자주 잠긴 새로운 집주인도 살구나무가 심어진 내력을 알고 있을까?

7. 박영희 노인 댁 대문 앞 속이 썩은 뽕나무

박영희 노인 댁 대문 앞 뽕나무

지금 뽕밭들이 거의 사라졌지만 창덕궁의 뽕나무(천연기념물 471호), 상주 은척면의 뽕나무(300년) 등 전국 곳곳에 목숨을 지켜온 뽕나무 노거수 들은 나름대로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있다.

감낭골의 터줏대감 박영희(75) 노인 댁 대문 앞 좁은 골목에도 특별한 뽕나무가 있다. 둘레가 한 아름이 버거운(185cm) 속이 썩은 뽕나무 한그루가 5m 높이에서 몸통을 잘려 산발처럼 새가지를 돋우고 있다. 윗부분을 자르기 전에는 시에 나무제거 요청도 하고 제거업체에 의뢰까지 했었다. 속이 썩어 불안할 때도 있다고 한다.

박영희 노인 댁 대문 앞 뽕나무. 내부가 썩은 나무 아래 부분.

이곳에 9대조께서 입촌하여 300년이 되어 간다는 박 노인의 가문이다. 91세까지 사셨던 박 노인의 증조부가 심었다며 150년은 족히 넘었다고 했다. 나무를 중간에 몽땅 잘라 다시 산발형태로 자라고 있다. 지금도 5월 말 오디가 익을 때면 바닥에 그물을 깔고 낙과를 받고 있는 즐거움을 주고 있어 이젠 베어내기엔 아쉽다.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한 뽕나무 고목이 대치마을 감낭골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아마 공원구역에 이 나무가 있었다면 나무상처를 치료해주고 보호받지 않았을까? 

불과 몇 그루지만 내가 만난 대치마을의 아주 특별한 나무들이다. 
지날 때 마다 필자에게 말을 건다. 
그 나무들이 이젠 나에겐 친구다. 
이곳을 지나는 여수시민 모두에게도 친구이기를...
 

본문에 나오는 지명과 방언 풀이

*감낭골 : 감나무골 . 낭은 나무의 옛말
*깟(갓)뒤 : 길가 뒷동네. 깟(갓)은 가(갓의 된 발음 깟)
*중똠(돔) : 중간 동네. 돔은 동네의 옛말
*건너몰 : 건너 마을. 몰은 마을의 옛말
*숲 몰랑 : 숲의 등성이. 몰랑(몬당):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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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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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범 2017-08-06 08:53:33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다못해,맹위를 떨치는 요즘의 날씨다.
이런 폭염속에서,기획연재를 위해 오늘도 몸바쳐 땀 흘리며, 고생 (?)을 하는
조계산 이야기의 주인공 김배선작가에게, 당분간은 재충전의 여유를위해
휴식의 시간을 가졌으면하는,바램이다.

누구나,한번쯤은, 겉으론 많은것을 가진것처럼 보이나,가슴은 텅비어가는
나이가 되어감을 체험 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라에서 인정해주는, 어른아닌 노인이 되어서일까 ?........
왠지 서글퍼지는 현실이다.
김배선 작가의 재충전의 시간을 기대하면서,건투를 빈다...^^-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