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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나의 소원'에 이광수의 흔적이 보인다"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 춘원 이광수 개입한 것 같다" 주장 나와

  • 입력 2017.08.25 14:04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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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관련 책들 <백범일지>, <백범평전>, <김구 청문회>
▲ 백범 관련 책들 <백범일지>, <백범평전>, <김구 청문회>
ⓒ 정병진

 


김구의 <백범일지> 부록으로 실린 '나의 소원'에 춘원 이광수의 이념과 일본 메이지 시대 유행한 '아름다운 나라'라는 개념이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백범일지> 연구가로 널리 알려진 도진순 교수(창원대 역사학, <정본 백범일지> 저자)는 지난 2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래 전부터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에) 이광수의 생각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라면서 "'나의 소원'에는 백범의 사상과 합치하는 바도 분명 있지만, 춘원 등의 보조도 눈에 보인다"라고 밝혔다. 

국내 대표적인 <백범일지> 연구자 중 한 사람인 도 교수가 이와 같은 견해를 밝힘으로써, 춘원 이광수가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 논란이 예상된다. 

백범이 밝힌 '나의 소원' 취지  

김구는 1947년 11월 13일에 쓴 <백범일지> 출간사에서 이 책의 상권을 중국 상해와 중정에 있을 무렵 유서처럼 써뒀다고 밝혔다. 하권은 "미주와 하와이 해외 동포를 염두에 두고" 독립운동에 대한 자신의 '경륜과 소감'을 알리기 위해 썼다고 했다. 

이어 "끝에 붙인 '나의 소원' 한 편은 내가 지금 우리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의 개요를 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민족이 국가를 세워 국민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겠기에, 그가 "믿는, 우리 민족 철학의 대강령을 적어본 것"이라는 취지다. 

'나의 소원'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나의 소원'은 서두부터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임시정부 주석 출신이자 중국을 떠돌며 독립운동가로 살아온 백범 김구의 고백같아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내 칠십 평생 이 소원을 위해 살아 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으며, 미래에도 이 소원을 달성하려고 살 것이다." 원로 독립운동가의 외침에 수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나의 소원' 내용 중 널리 알려진 다른 대목은 아래와 같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의 '문화강국론' 혹은 '문화입국론'이다. 해방 이후, 수많은 정파가 난립해 정부수립을 둘러싸고 권력투쟁·이념투쟁을 벌였고 테러·암살이 빈발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됐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제시된 '문화강국론'은 신선하면서도 먼 미래를 내다본 혜안으로 평가받는다. 백범 김구를 경모하는 문화가 여전한 이유는 그가 임정을 이끌면서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사실 이외에 21세기 한반도에도 유효한 '문화강국론' 등의 국가 건설 이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백범일지>를 둘러싼 또 다른 시각

하지만, '나의 소원'을 다르게 보는 견해도 있다. 재야역사학자 김상구씨(<김구 청문회> 저자)의 시각이 대표적이다. 

김상구씨는 지난 1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백범일지>에 실린 '나의 소원'은 100% 이광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주장의 근거는 ▲ 이광수 수필집 <돌베개> <도산 안창호 전기> ▲ <동아일보>에 연재한 '젊은 조선인의 소원'이란 글 등이다. 김상구씨는 '춘원 이광수의 글을 살펴보면 '나의 소원'과 사상과 내용, 문체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주장을 편다. 

춘원 이광수가 김구의 <백범일지>를 윤문한 사실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김구의 아들 김신씨는 <신동아>(1986년 8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밝힌 바 있다. 또한 김구 자신도 1947년 국사본 서문에서 한문이 많았던 <백범일지>가 "한글 철자법에 맞게 윤문"됐다는 것도 밝혔다. 하지만 김상구씨는 "이광수가 백범의 글을 다듬는 '윤문' 수준이 아니라, 춘원 자신의 사상을 여러 군데 끼워 넣었거나 대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나의 소원'과 '내 나라'를 비교 대조해봤다

사실 확인을 위해 김상구씨가 근거로 제시한 춘원 이광수의 수필집 <돌베개>를 살펴봤다. 이 책 마지막에 실린 '내 나라'와 '나의 소원'을 대조해봤다. 

문단 전체가 '나의 소원'과 똑같은 대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사상의 흐름이나 일부 문장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나의 소원'과 '내 나라'의 유사한 몇몇 대목을 보면 아래와 같다. 
 

나의 소원과 내 나라1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1
▲ 나의 소원과 내 나라1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1
ⓒ 정병진

 

 

나의 소원과 내 나라2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2
▲ 나의 소원과 내 나라2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2
ⓒ 정병진

 

 

나의 소원과 내 나라3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3
▲ 나의 소원과 내 나라3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3
ⓒ 정병진

 

 

나의 소원과 내 나라4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4
▲ 나의 소원과 내 나라4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4
ⓒ 정병진

 

 

나의 소원과 내 나라5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5
▲ 나의 소원과 내 나라5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5
ⓒ 정병진

 

 

나의 소원과 내 나라6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6
▲ 나의 소원과 내 나라6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과 춘원의 '내 나라'6
ⓒ 정병진

 


김상구씨가 또 다른 근거로 제시한 이광수의 <동아일보> 연재글 '젊은 조선인의 소원'과 <도산 안창호 전기>에는 문화강국론, 도덕과 평화사상 등 일부 사상의 흐름은 유사하나 '나의 소원'의 내용과 빼닮은 대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의 소원'은 백범이 국한문 혼용으로 기록한 초판본에는 없고 1947년판 <국사본 백범일지>부터 나온다. 이 글은 간결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기록돼 명문으로 손꼽힌다. 글쓴이가 누구이든 한글 문장 사용에 숙달한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인다. 

춘원 이광수는 그의 수필집 <돌베개>의 서문에서 '이 책에 수록한 글들은 1946년 9월부터 1948년 2월까지 쓴 글들을 묶은 것'임을 밝힌다. 그의 책은 <국사본 백범일지>보다 약 1년 늦게 출간됐다. 

도진순 교수 "이광수가 개입했다면... '나의 소원'이 가능성 제일 크다"

도진순 교수는 '나의 소원'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지난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나의 소원'을) 이광수가 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원본이 나왔는데도 <백범일지>를 이광수가 썼다는 주장도 있다, 백범이 써놓은 본문이 있기 때문에 그 주장은 틀렸다"라면서 "이광수는 본문을 윤문하는 정도였지 그가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있는 글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광수가 손을 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소원' 같은 부분"이라면서 "나는 '나의 소원'을 명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백범이라는 권위에 눌려 '나의 소원'을 높이 평가하는 건 평소 백범 관련 강의를 할 때도 많이 언급한다"라고 덧붙였다. 

도 교수는 '나의 소원'에 나오는 '아름다운 나라' 관련 대목도 "시대적 한계가 있는, 잘못된 구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고조선 멸망부터 오늘날까지 한반도 역사를 보면 외교·안보로 흥망이 결정 나고 경제가 제일 중요한데, '그냥 대강 살면 되고 평화를 사랑하면 된다'라니, 이런 건 환상론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 문화적으로 다 잘사는 건 아니지만, 문화적인 풍요라고 하는 게 경제적인 것과 별개로 나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백범의 글, 필자 겹친 경우 있기도"

도 교수에 따르면 백범이 <백범일지>를 쓸 수 있었던 시기는 "아이러니하지만 임시정부가 안 돌아갈 때, 할 일 없을 때"였다. 그래서 그는 "(<백범일지>) 상권이 제일 문학적인 완성도가 높고 재미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해방정국 3년은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였다, 특히 1947년 (<백범일지>를) 출간 할 때는 정치가 하루하루가 다를 때이고, 백범이 쓸 수 있는, 쪽 글도 굉장히 시간 내기가 힘들 때다, 그래서 백범의 긴 글 중에는 필자가 겹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례로 1945년 12월 크리스마스에 백범 이름으로 발표된 순국선열 추념문을 들었다. 도 교수는 "그 글은 명문장가가 쓴 글이지 백범 실력으로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근데 백범 이름으로 발표가 됐다"라면서 "나중에 그 추념문 전문이 정인보 전집 2권에 수록돼 있음을 발견했다"라고 밝혔다.

"'아름다운 나라 부국강병' 벤치마킹했을 수도"

도 교수는 '나의 소원' 속 문화강국론(문화입국론)을 대중이 높이 평가하는 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광수는 책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만약 이광수의 입장이 많이 들어갔다면, '나의 소원'이 그 가능성이 큰 글"이라면서 "'나의 소원'을 조목조목 해체해보면 몇 군데를 빼고는 백범 평생의 투쟁 경력이 녹아 있는 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백범에 대해 "문화에 대해 그렇게 해박한 시각을 갖고 있는 분도 아니고 독립운동, 배운 거 없이 온몸을 던져서 독립운동하기에 바쁜 그런 분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도 교수는 "('나의 소원'에는) 갑자기 '문화 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물론 해방 후에는 독립이 됐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라면서도 "글에 나오는 '아름다운 나라'를 대중이 무비판적으로 이상화하는 건 문제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도 교수는 "일본 메이지 시대 때 '아름다운 나라 부국강병하자'는 메이지 유신 개념이 있었는데, 이것이 벤치마킹 돼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근대에 학문이 유입될 때 생겼던 개념이 '나의 소원' 속 '아름다운 나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나의 소원'과 '내 나라' 전문 및 비교 대조 도표(위 도표 이미지 5개)에 대한 도 교수의 의견은 어떨까. 그는 다음과 같이 회신했다. 

"물론 주관적일 수 있지만, 제 느낌은 단어와 문장을 형식적으로 비교하면 표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요한 논지의 차원에서 보면 같은 사람의 글이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참고했을 경우 그 근거를 밝혀줘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백범은 학자가 아니고 당시 정치와 민족 일선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백범에게 학자와 같은 엄밀성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인보가 쓴 글도 백범 이름으로 발표됐습니다. 이것은 두 분이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요. '나의 소원'이 백범과 춘원 간 동의 속에서 나온 것인지, 춘원이 집필하고 백범이 감수한 것인지, 춘원의 집필인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백범이 비서가 마련해준 글을 감수하고 처리한 것인지 등은 불분명합니다.

물론 ('나의 소원'에는) 당시 중요한 과제로 대중의 공감을 산 부분도 있습니다. 백범이 책을 펴내면서에서 밝힌 '모스크바, 워싱턴을 일방 따르지 말고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백범의 소신과 합치합니다. 이는 신채호 등도 말해왔던 내용입니다. 

정리하자면, '나의 소원'에는 백범의 사상과 합치하는 바도 분명 있지만, 춘원 등의 보조도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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