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여수만의 양속 ‘진세’를 아시나요?

몇몇 마을만 겨우 명맥 유지

  • 입력 2017.09.04 20:00
  • 수정 2017.09.04 20:09
  • 기자명 김배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봉두 마을회관과 250년된 느티나무가 한데 어울려 있다

8월 28일은 음력으로 7월 7일 견우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이다. 유래는 중국 주나라의 설화가 고려 공민왕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궁궐에서부터 시작하여 길쌈과 장수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등의 풍속으로 이어내려 왔다고 전한다.

그러나 우리고장에서는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칠석날이면 ‘진세’라는 이름으로 어린 아동의 수복강녕을 함께 기원하고 노인공경으로 마을이 하나 되는 화합의 잔치가 여수만의 미풍양속으로 누대를 이어내려 왔었다. 이제는 시대변화와 도시화로 인해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지만, 그나마 맥을 이어오고 마을들이 있다. 특히 구봉산 자락의 마지막 자연부락인 대치마을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40년 만에 “진세”를 만나다

“안녕하세요.” 2015년 8월 하순 무렵 평소에 자주 들르는 대치마을경로당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자 때 늦은 점심상의 둘레에 모인 한방 가득한 할머니들이 “아이고~오! 오랜만이네. 이리 와서 이거 좀 잡숴봐.” 하고 정으로 가득한 시선들이 다투어 왔다. 얼핏 보기에도 여느 때와는 달라 보이는 상인지라 오늘 무슨 날이에요? 하고 물으니 언제나 백 원짜리 민화투에 앞장서는 홍국이 할머니가 “우리 동네 ‘진세’ 했어.” 라고 했다.

순간 알아듣지 못한 내가 뭐라고요? 했더니 다른 할머니 두 분이 한 목소리로 “칠석날 애기들 집에서 한상 내는 ‘진세’ 말이여!” 하는데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이었다.

필자가 진세라는 낯선 풍속을 처음 접한 것은 1975년이다. 소라면 달천마을 동료의 집을 방문하여 동료 어머니께서 내온 점심상이 떡과 생선찜, 나물 등 차림새가 잔치 음식처럼 보여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 말려 찐 생선을 잘게 찢던 동료 어머니께서 손을 멈추며 “어제가 칠석이라 우리 손자 ‘진세’ 했어.” 라고 말했다.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라 진세가 뭐냐고 묻자 뒤에 서있던 동료의 형이 그 마을의 진세 풍속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어 고개를 끄덕이고 난 이후로 더 이상 접하지 못하다가 40년 만에 시내에서 만난 반가움에 대치마을 말고도 여수의 다른 마을까지 수소문 했다.

진세란?

진세는 1~7세의 아동을 주인공으로 해당가정이 주체가 되어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행하여지던 감사와 축원의 잔치행사다. 진세를 한자로는 進歲로 쓴다. 나이를 먹는 다는 뜻으로 유년을 넘기기 어려웠던 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이 어린생명에 대한 간절함이 배어있는 조금은 어려운 이름이기도 하다.

'진세'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백과사전에 “전라남도 여수에서 1~7세의 아동들이 건강하게 자랐음을 경축하고 장차 장수하고 유복하기를 기원하면서 벌이는 마을 잔치”라고 적혀있어 ‘여수’만의 풍습이란 걸 알 수가 있다.

이것은 개괄적인 설명이다.
진세는 매년 칠월칠석날에 자연마을 단위로 행하여진다. 여기서의 마을이란 생명의 근원인 큰 우물을 함께 사용하는 이웃들이 구성원이 된다.

진세의 유래에 대한 질문에는 “옛날에는 약이 있어 뭣(병원)이 있어. 그러니 애기들이 홍진(홍역)으로 죽고, 뭣으로 죽고, 크기도 전에 많이 안 죽어버린다고, 그래서 오래 살게 해달라고 해서 생긴 것이지” 하신다. 대치마을 경로당 어르신의 얘기는 들었어도 아쉽게도 어느 곳에서도 유래에 대한 기록은 찾기가 어렵다.

진세의 나이가 일률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생존에 대한 감사를 어릴수록 탄생 쪽에 두고, 자란 아이일수록 어느 정도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에 의미가 담겨 있다보니 그 폭이 넓다. 그리고 진세당사자의 가정에서는 상을 차려 놓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진세 나이가 각각 다른 마을을 예로 들어보면,  화장동 하치마을 1세, 국동 생금마을 3세 , 여서동 허문정마을 4세, 대치마을 5세였다. 반면에 소라면 봉두마을은 18세로 성인례와 겸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도 있었다.

진세날에 행하여 졌던 행사로는 마을길 대청소, 우물 푸기와 매구치기(샘굿풍물),당산제(생명을 관장하는 칠성신께 축원), 마을잔치 순으로 이어진다.

어린생명의 귀함에서 비롯된 감사와 건강장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 되어 벌이는 잔치 ‘진세’는 여수만의 자랑스러운 양속이다.

진세의 변천

대치마을 진세 잔치상을 받고 있는 남자노인들

진세는 농경시대에 시작된 오래된 풍속이므로 시대와 환경의 변화와 마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 특히 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감소로 자연마을이 해체되고 행사의 필수 대상이었던 우물(샘)마저 상수도로 바뀌자 시내 권은 차츰 사라지고 시골도 진세의 원형은 변화나 감소를 넘어 소멸을 앞두게 되었다.

2017년 현재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마을을 찾아 새로운 경로잔치의 성격으로 바뀌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몇몇 마을의 진세의 모습 변천사례를 소개한다.

대치마을 회관에서 진세 잔치상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여성 노인분들

먼저 여서동 대치마을의 경우다. 80년대 초까지는 당사자들이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사람들은 마을길과 큼 샘을 청소한 뒤 당산에 밥을 차리고 마을잔치를 하는 옛 모습을 지켱다가, 90년대부터는 샘이 말라 샘 청소와 당산 차림이 생략되고 음식을 마을회관에 차려 점심접대로 변했다. 

근래에는 외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라도 마을 전통에 따라 돈으로 10만원부터 경로당에 희사하여 필요한 음식을 구입해 노인들의 점심잔치로 이어지는데, 경비 부족 금액은 마을기금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텃골마을의 최경수(73)씨에 따르면 10여 년 전부터는 ‘진세’날 마을 기금으로 회의 겸하여 노인들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국동 최문지(82)씨는 생금마을 노인당에서 “우리 아들 세 살 때 하고, 그 뒤로는 안했으니 40년도 훨씬 넘었어요.” 그리고 “샘이 있어야 하지.”(샘굿을 못 한다는 뜻) 하며 농담을 건낸다. “수도 물 틀어놓고 하면 되지!”

화장동 하치마을은 여천 산단 이주민들이 많다. 수년 전부터 칠석날은 날씨가 무덥다는 이유로 주민들 회의를 거쳐 진세를 5월 5일로 옮겨 단오 행사와 합쳐 정자나무가 있는 망향정 광장에서 시행하는 성대한 동민행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치마을 신정래(82), 박종호(79)씨 증언이다.

지난 28일 봉두마을 어머니들이 진세잔치상차림을 하느라 분주하다.

소라면 봉두마을은 진세의 전통이 가장 잘 보전되는 마을이라는 제보를 받고 찾아갔다. 칠석 전날 오전 11시경 마을 회관을 찾았을 때는 부인회원 7~8명이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의외의 반가움으로 노인회장(73) 등으로부터 이 마을만이 진세를 18세에 성인례와 함께 치른다는 설명을 듣고는 초대받아 다음날 감사의 마음으로 참관까지 하게 되었다.

잔치상에는 돼지고기가 필수다.한켠에서는 돼지고기를 삶고 있다.

칠석날 당일 봉두마을의 '진세' 행사 일정표다.

․ 이른 아침 마을길 청소(이전의 우물 청소와 샘굿은 생략)
․ 10:00 마을당산나무(수령250) 앞 지정된 장소에 진설(상차림)
․ 10:15 대표자인 노인회장과 이장 축수배례(계획된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진행)
․ 노인정과 정자나무 그늘에 잔치상 차리기
․ 11:00~ 노인정에서 노인회장과 이장의 축하식 진행과 결산보고에 이은 식사.

지난 28일 봉두마을의 진세잔치 장면

결산 보고 내용이다.

오늘의 축하주인공 팔순 2명, 칠순 5명, 회갑 6명, 득손 2명, 진세 1명.
기부금액은 통상 20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봉두마을의 진세는 온 마을 사람들의 합동축하잔치로 변신했다. 모범적인 표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진세'를 찾아다니며 피부로 느낀 점은 ‘사라짐’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었다. 여수시에서도 관심을 갖고 여수문화원등이 나선다면 여수만의 양속 ‘진세’가 시대에 맞게 새롭게 태어나 영원히 이어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