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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고민이예요

2015. 10.8 법륜스님 광주강연

  • 입력 2017.09.26 06:53
  • 기자명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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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습니다. 남편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고민이에요. 30년 동안 술을 안 마신 날이 1년에 4~5일 밖에 안 될 정도로 매일 술을 마십니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해결 방법을 못 찾았고, 제 나이도 54세다 보니 건강상으로도 힘듭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오늘 나와 봤습니다.”

“남편 술 끊는 방법이라도 일러줄까 싶어서요? (모두 웃음) 매일 술 마시는 사람더러 술 끊게 해주는 비법을 제가 안다면 그런 회사를 차려서 떼돈을 벌었겠죠. 그런 기술은 없어요. 질문자는 종교가 뭐예요?”

“성당을 좀 다니다가 냉담하고 있어요.”

“하느님을 찾든 천주님을 찾든 부처님을 찾든, 질문자가 기도를 한다면 마음을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술 안 마시는 날이 1년에 4~5일이라고 했죠? 그러면 ‘하느님, 우리 남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 마시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지금 4~5일이 빠져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청중 웃음)

그 4~5일을 다 채우도록 기도하고, 그렇게 마음을 쓰세요. 혹시 오늘 저녁에는 안 마시고 들어올까 봐 조마조마해야 합니다. 내 기도가 들어지려면 남편이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야 해요. 안 마시고 들어오면 기도가 성취되지 않은 거예요. 예를 들어 올해 말에 계산해보니 3일이 빠졌다면 질문자의 기도가 성취되지 않은 것이니 다시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해요.(청중 웃음)

108배가 안 되면 200배를 하세요. 남편이 하루도 안 빠지고 마시고 오는 걸 목표로 잡아서 1년 365일을 다 채웠다면 기도가 성취된 거예요. ‘스님 말씀대로 기도를 했더니 3년 만에 우리 남편이 100퍼센트를 다 채웠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한테 천만원을 보시하고픈 마음이 들 거예요. 왜 그럴까요? 그쯤 되면 질문자가 남편이 술 마시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남편이 술 마시는 게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그런데 지금 문제 되는 게요. 그렇게 술을 마시고 한 달에 네댓 번은 저한테 주정을 심하게 부려요. 좀 심할 때는 폭언도 하고요...”

“그건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마음을 질문자가 가지고 있으니까 남편이 주정을 부리는 거예요. 남편이 술 마시고 들어오면 ‘오늘 기도 성취했다’고 마구마구 기뻐해주세요. 안 마시고 오는 날에는 기도를 성취하기 위해서 질문자가 술상을 차려줘서 먹여야 해요.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집에서 술상 차려 먹이려면 귀찮으니까, 밖에서 자기가 알아서 마시고 들어오면 굉장히 좋죠. (청중 웃음)

이렇게 마음을 내어버리면 술은 여전히 마시고 들어와도 주정이 줄어듭니다. 마시고 들어오는 걸 질문자가 기뻐해보세요. 말리든 권하든 남편은 어차피 마시잖아요. 그러니 질문자가 ‘마셔라’ 하면 마시고 오는 게 기뻐지는 거예요.

‘하느님, 우리 남편에게 있어서의 술은 보약입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보약은 빼먹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빼먹으면 내가 챙겨줘야 해요.”

“그렇게 술을 마시다 보니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못 미칠 행동을 종종 하고, 경제적인 책임감도 없어요. 제가 젊고 건강할 때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좀 버겁습니다.”

“질문자가 마시지 마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질문자는 질문자 대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병도 나고 버겁고, 남편은 남편대로 술 마시고 악을 쓰고 주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이라고 생각하세요. 남편이 이렇게 술을 마시기 때문에 그나마 안 죽고 사는 거예요. 남편이 술을 끊으면 곧 죽어요. 남편이 이렇게 술을 마셔야 그 까르마가 하루하루 명을 연장하기 때문에, 남편이 술 마시는 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에요. 다른 사람에게는 술이 나쁠지 몰라도 우리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인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안 마시고 오면 반드시 보약 챙겨 먹이듯이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 먹여야 해요. 지금 몇 일 빠지기 때문에 문제인 거예요. (청중 웃음)

그렇게 하면 남편이 술을 마셔도 질문자가 아무렇지 않아집니다. 딱 들어오는데 ‘아이고, 여보. 보약 드시고 오셨네요. 내가 굳이 안 챙겨도 되니 좋네요’ 이런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면 주정이 줄어들고 질문자의 스트레스도 줄어들어요. 한번 해보세요.

그런데 이게 초기에는 반드시 마장, 즉 부작용이 따릅니다. 첫 번째 부작용은 기도하다가 내가 성질이 나요. 내 까르마가 발동하는 거예요. ‘내가 미쳤나, 왜 이런 기도를 하나?’ 이렇게 자기 저항이 일어납니다. 더 힘든 것은 두 번째인데, 이렇게 하면 남편이 내 정성을 이용해서 더 많이 마시고 더 행패를 부려요. 스님이 기도하면 좋아진다니까 좋아지리라고 기대를 했는데 실제로 해 보면 안 그래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한 달쯤 지나면 더 마시고 들어옵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마장이 끼는 건데, 이 고비를 이겨야 합니다.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게끔 방해를 해야 하니까 반드시 남편은 더 술을 마시고, 주정을 더 심하게 부리면서 난동을 피웁니다. 그러면 참고 기도하다가 확 뒤집어져서 ‘기도해보니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진다’고 기도를 그만두게 돼요. 이 저항을 질문자가 이겨내야 해요. 이것은 당연히 따르는 저항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서 100일이 넘고 1년이 넘어가면 까르마가 소멸되는 쪽으로 가니까 까르마 입장에서는 죽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기도하거나 수행할 때는 마장이 나타납니다. 그걸 그만둘 핑계거리를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를 하다가 그만두게 되고요. 이렇게 제가 시켜보면 열에 아홉은 그만둡니다. 그 장애를 뛰어넘어서 가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러니 질문자가 이 기도를 하려면 신앙심이 깊어야 해요. 성당 다시 다니세요. 하느님을 믿고, ‘우리 남편은 술을 마시는 게 사는 길이다. 그러니까 이건 주님의 뜻이다’ 이렇게 받아들이세요. 술은 우리 남편에게 보약이라고 기도하세요. 보약은 하루도 빠지면 안 되니 마시고 오면 기뻐하고, 늘 술을 준비해뒀다가 안 마시고 오는 날에는 챙겨서 내주세요. 남편이 ‘네가 웬일이냐’ 하면 ‘그래도 한 잔 하셔야죠’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남편이 ‘고맙다’ 하기보다는 ‘드디어 이게 미쳤구나’ 이러면서 상을 집어던지더라도 다시 가져다 주세요.

‘여보, 나쁜 뜻으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스님한테 물어보니 매일 먹는 건 매일 먹도록 해야지 중간에 쉬면 오히려 건강에 나쁘다더라. 그래서 챙겨드리니까 드세요. 빠뜨리고 오면 내가 챙겨주느라 힘드니까 밖에서 드시고 오세요’ 이렇게 권유도 해주세요. 비아냥이 아닌 진심으로 하세요. 그런데 처음에는 상대가 이걸 비아냥으로 듣기 때문에 나는 비아냥이 아니었다 해도 횡포를 부립니다. 그래도 그걸 꿋꿋이 이겨내면 남편에게 진심이 전달돼요. 진심이 전달되면 술은 마셔도 난동 부리던 것은 줄어듭니다. 한 100일쯤 지나면 그래요. 술을 마시는 것은 자기 사정이고 나는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질문자는 어차피 지난 30년을 술 마시는 남편과 살았잖아요. 앞으로 남은 세월이 30여 년밖에 안 남았는데 그 사람과 못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못 산다면 질문자가 못 견뎌서 못 사는 건데, 지금도 사는데 앞으로 계속 같이 사는 게 뭐 그리 힘들어요? 놔두면 됩니다. 이렇게 해야 어떤 영험과 가피가 일어나는데 그렇다고 또 그 결과를 기대하면 안 돼요. 질문자가 ‘술을 안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술 마시는 게 우리 남편은 오히려 건강에도 좋고 수명에도 좋다고 믿으세요.

술이 건강에 나쁘다고요? 술 끊어서 건강은 좋아져도 당장 내일 교통사고 나서 죽어버린다면 술 끊은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러면 남편 영정 앞에서 ‘아이고, 그렇게 좋아하는 술 실컷 마시게나 해 줄 걸’ 이렇게 후회하는 거예요. 그러니 실컷 마시도록 두세요. 가능하면 더 먹이면 더 좋고요. (청중 웃음)

그러면 하느님이 기도를 받아줍니다. ‘우리 남편 술 마시게 해주세요’ 하면 하느님이 당장 영험을 보여서 오늘 술 마시게 해주는데, ‘우리 남편 술 안 마시게 해주세요’ 하면 하느님도 내 기도를 안 들어줘요. 그러면 ‘기도해봐도 소용없다’ 싶어서 내 신앙이 흔들립니다. 질문자가 ‘하느님, 우리 남편 술 마시게 해주세요’ 하면 질문자는 하느님의 영험을 믿고 신앙도 안 흔들렸을 거예요. ‘하느님, 술 안 마시게 해주세요’ 하니까 하느님도 이걸 못 들어주잖아요. 그러니 성당 다녀봐야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해서 흔들리는 거예요. 질문자가 기도를 잘못해서 그래요. 하느님이 할 수 있는 걸 기도해야죠.” (청중 박수)

“예,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스님의 답변에 질문자는 처음에 당황했지만 이내 곧 스님의 의중을 알아듣고 활짝 웃었습니다. 상대를 고치는 것은 어렵지만 내 마음을 고치는 것은 비교적 쉬울 수 있다는 즉문즉설의 미묘한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스님의 답변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물을 늘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늘 문제가 있다고 해요. 수행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거예요. 아침에 눈뜨면 살아있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이렇게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고 나머지 번뇌는 금방 없어져요. 살아있는 건 당연하고, 더 오래 살아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하고,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머리가 복잡한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아침에 눈 딱 떴을 때 안 죽고 살아 있다는 건 기적이에요. 버스 타고 가다가 버스가 전복되어서 서른 명 다 죽고 자기 혼자 살아야 꼭 기적인 게 아니에요. 그런 기적이 매일매일 아침에 눈뜰 때마다 일어나는 걸요. 감았던 눈 못 뜨면 죽는 거예요. 들어왔던 숨이 못 나가도 죽고, 나갔던 숨이 못 들어와도 죽잖아요. 삶과 죽음은 사실 이 호흡지간인 찰나에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자기긍정성이 있어야 삶을 행복하게 삽니다.

우선 자기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고, 그 다음으로 세상 문제도 개선할 만큼 개선하는 겁니다. 방금 술 마시는 남편 이야기를 했는데, 질문자가 매일 1000배 기도를 한다고 남편이 술을 끊을까요? 성당에 1억 보시한다고 하느님이 술 끊게 해줄까요? 아니에요. 벌써 30년을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술 안 마실 사람이면 진작에 아내 말을 들었겠죠.

아내가 마시지 말라고 해도 30년을 마시는 남편이 고집이 셀까요? 30년 동안 마시는 꼴을 보면서도 아직도 마시지 말라고 주장하는 아내가 고집이 셀까요? 아내의 고집이 훨씬 셉니다. 그 고집 센 남편의 고집을 꺾겠다는 고집이잖아요. 그러니 사람이 자기 고집 센 줄 모르는 거예요. (청중 웃음)

고집을 버리라는 것은 놔두라는 뜻입니다. 하지 말래도 하는 걸 보면서 30년을 살았는데, 마시라고 한다고 더 마시고 마시지 말란다고 안 마시리라 생각하는 게 오산이에요.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도 마시는 걸 보면 내 말 안 듣는 인간이잖아요. 내가 마시라고 한다고 마시고, 더 마시라고 한다고 더 마실까요? 어차피 마시는 걸 마시라고 하면 내 말을 잘 들으니 얼마나 좋아요? 내 말을 잘 듣게 하는 방법은 어차피 마시는 사람한테 마시라고 하는 겁니다. (청중 웃음)

마시는 걸 보고 ‘하느님, 술 마시게 해주세요’ 하면 하느님이 내 기도를 바로 들어주잖아요. 왜 이렇게 쉬운 길을 안 가요? 그건 세상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부처님도 자기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하시잖아요. 쉬운 길이 있다는 말이에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 이 말은 긍정적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좋아집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단명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속으로 ‘40살까지 살면 잘 산다’ 이렇게 여기고 살았어요. 그런데 40살 넘었는데도 안 죽어요. 그래서 저는 늘 매일 기쁘게 살아요.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까요. 그래서 내일 죽어도 뭐 별로 아쉽지 않습니다. 보너스야 만원이든 10만원이든 안 받는 것보다 기쁘잖아요. 제가 이렇게 일하니까 여러분들은 꼭 통일이 되어야 제가 성공하는 것처럼 여기지만 아닙니다. 저는 40살까지 제 할 일을 다 했어요. 나머지는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에요. 그렇지만 안 죽는데 일부러 죽을 것까지는 없잖아요. 사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청중 웃음)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제가 늘 건강한 것 같지만 제가 별로 그런 거에 대해서 구애를 안 받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몸이 안 아픈 게 아닙니다. 오늘도 오면서 두통약을 몇 개씩 먹었어요. 아프지만 안 죽은 것만 해도 다행이기 때문에 아픈 건 별로 문제 안 삼아요. 아픈 것이 당연한 거예요. 여러분들은 스님이 강골이라고 하죠? 저는 매일 아파요. 오죽하면 ‘스님은 아파 죽다가도 강의 있다고 하면 벌떡 일어난다’고 할까요. 강의할 때만 멀쩡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안 따라다녀 보니 그렇죠. 나머지는 늘 차 타고 가면서 쉬고 오면서 쉬고, 이렇게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인생을 조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셔야 해요. 주어진 삶을 복되게 받아들이세요. 안 그러면 이제 죽는 길밖에 없어요. 그러니 나날이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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