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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없는 소라남분교, "아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재학생이 단 한 명이었던 다시 활기를 되찾은 비결

  • 입력 2017.10.23 10:48
  • 수정 2017.10.23 10:53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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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정책 연구학교로 지정된 소라남분교 5-6학년 학생들이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한다
▲  수학정책 연구학교로 지정된 소라남분교 5-6학년 학생들이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한다
ⓒ 오문수

 


지난 20일, 여수시 소라면 소재 시골학교인 소라초등학교 소라남분교를 방문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재학생이 한 명이었는데, 학생 수가 27명으로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2008년 <오마이뉴스>에서는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재학생이 한 명인 학교 현황을 파악하고, 학교를 살리기 위한 대안을 공모했다.10여 년 전 혼자서 선생님과 공부하던 정시온 학생은 이제 고등학생이 됐다. 이번에 학교를 방문했을 땐, 3학년 이상의 학생들이 교사들과 함께 티볼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교사들과 함께 티볼시합을 하고있는 상급학년 학생들
▲  교사들과 함께 티볼시합을 하고있는 상급학년 학생들
ⓒ 오문수

 


학교가 있는 곳은 전남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 중촌마을. 여수 시내에서 5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지만 '기네스북 등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등재 사유는 바로 '쌍둥이마을'. 1989년 기네스북에 오를 당시 중촌마을은 75가구 중 35가구에서 쌍둥이가 태어났다.

1943년 개교해 7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라남분교장은 개교 당시 현천리뿐만 아니라 복산·죽림·관기리의 학생들이 통학하는 제법 큰 규모의 학교였다. 1963년 근처에 관기, 신흥초등학교가 생기면서 학생 수가 줄긴 했지만, 1972년에도 전교생이 505명이나 될 정도였다.
 

 자연이 숨쉬는 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로 전학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담장모습
▲  자연이 숨쉬는 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로 전학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담장모습
ⓒ 오문수

 


폐교 위기에 처했던 학교에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다. 학교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학부모 회장인 강주영(6년)군의 엄마인 박유하씨를 비롯해 모교 출신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학부모들은 운동장에 모여 잡초를 제거하고 모교 살리기에 나섰다. 학부모 회장 박유하씨가 학교 살리기에 나선 이유를 말했다.

"시골학교가 점점 문을 닫는 게 안타까웠어요. 모교이기도 하고요. 과밀 학급은 환경이 좋지 않은데, 이곳은 자연친화적인 분위기잖아요. 신도시로 개발하고 있는 죽림 지역에 학교를 새로 만들기 보다는 기왕의 시골학교를 살렸으면 좋겠어요. 교육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잖아요. 시내에서 통학하는 문제가 어려웠지만 학부모들이 힘을 합쳐 통학 차량을 마련했습니다."
 

 복도게시판에 걸린 이루리 학생의 작품.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네 꿈을 이룰 수 있겠다. 정말 친절하다. 루리야! 고마워 짱이다"라고 답을 했다
▲  복도게시판에 걸린 이루리 학생의 작품.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네 꿈을 이룰 수 있겠다. 정말 친절하다. 루리야! 고마워 짱이다"라고 답을 했다
ⓒ 오문수

 


운동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시내에서 소라남분교까지 다니는 이유를 물었다. "부모님이 이 학교 출신이라, 소라남분교에 다니라고 해서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3학년까지 신흥분교에 다니다 4학년 때 소라남분교로 전학온 이루리(4년) 양이 전학 온 소감을 말했다.

"이 학교에 오니까 자연 속에서 놀 수 있어 좋아요."

5,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최두형 교사가 작은 학교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시내 과밀학급 학생들한테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손이 빠지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이곳은 학생 수가 적어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가 없이 형제처럼 지내요. 작은 학급이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 지도가 가능하고, 학교 시설물도 모든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큰 은행나무 그늘 아래서 공부할 수도 있어 죻죠."
 

 일찍 수업이 끝난 저학년 아이들은 상급학년인 언니나 오빠들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거나 놀이를 즐긴다.
▲  일찍 수업이 끝난 저학년 아이들은 상급학년인 언니나 오빠들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거나 놀이를 즐긴다.
ⓒ 오문수

 


작은 학교의 장점은 모든 학생들이 형제 같고, 선후배가 격의없이 지낸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다니는 7명을 제외한 20명의 시내권 학생들은 학부모들이 협력해서 통학한다.

2008년에 입학해 6년 내내 1반 1번을 했던 정시온 학생은 이제 고등학생이 됐다. 매일 모교 담장 옆을 지날 때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등하교하는 정시온양이 소감을 말했다.

"저는 시골학교에 입학해 남들보다 더많은 추억을 쌓은 것 같아요. 후배들도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큰 꿈을 키우기 바랍니다." 
 

 혼자서 외롭게 소라남분교에 다녔던 정시온양이 고등학생이 되어 어엿한 소녀가 됐다. 정시온 양은 27명이나 되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등하교하고 있다
▲  혼자서 외롭게 소라남분교에 다녔던 정시온양이 고등학생이 되어 어엿한 소녀가 됐다. 정시온 양은 27명이나 되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등하교하고 있다
ⓒ 오문수

 


주민들은 학교가 폐교되는 걸 반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학생 수가 늘어나 본교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현천중앙교회 목사이자 소라남초등학교 살리기 운동본부 김영천 본부장의 말이다.

"농촌공동체가 무너지면 나라의 공동체 역시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시골에도 최고로 실력있는 교사를 보내야 합니다. 교육을 경제 논리로 풀어나간다면 곤란하죠. 학생수가 늘어나 분교가 아닌 본교가 되어 마을 주민과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즐기는 운동회를 여는 게 꿈입니다."

때마침 2학년 때 시내에서 전학 온 학생의 엄마를 만나 소라남분교를 선택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학생수가 적고 가족 같은 분위기며, 수업 방식도 그룹 과외식이라서 선택했단다. 그녀의 선택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길 바란다.
 

 마을에서는 학생들을 위해 '현천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총 42석이 있는 도서관에는 6413권의 책이 비치되어 있다.
▲  마을에서는 학생들을 위해 '현천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총 42석이 있는 도서관에는 6413권의 책이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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