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유목민과 말

9일~22일, 화인갤러리

  • 입력 2017.11.09 17:00
  • 기자명 유상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책의 제목이었는지 다큐멘터리의 제목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사진작가 부제의 작품을 보면서 문뜩 떠오른 것이 이 문장이었던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네 주변도 사라져 버린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는가? 가깝게는 실개천, 먼지 날리던 신작로,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던 시발택시, 구석진 외양간, 짚더미를 쌓아둔 농가의 모습, 시집가는 날의 가마와 색시, 달구지를 끌던 소. 봄날의 빛나던 강과 나룻배 등…….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뿌연 미세먼지와 함께 우울해 보인다. 모든 도시는 사실 외로워 보인다. 왜 그럴까? 다시 부제의 사진작업 이야기로 가보자. 우리네 삶의 여정은 유목민의 신세이다. 그래서 이어령이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현대인을 신 유목민이라고’ 기막힌 발상이다. 그런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부제의 작품들은 수도 울란바토르 국제공항의 시시각각의 신 유목민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는 사라져가는 전통적 다르하족과 카자흐족 유목민의 생활과 그 속에서 함께한 말들의 모습들을 렌즈에 담고 있다. 어쩌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몽골도 아름다운 것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드넓은 초원과 가축들, 게르에서의 별을 바라보던 시간, 아침에 피어오르던 푸른 연기의 모습들과 초원을 질주하던 건강한 말들과 부유하는 공기들, 부제는 이런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렌즈를 맞춘다.

다시 울란바토르 공항. 유목민들, 그러니까 새로운 유목민들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긴 행렬은 끝이 없다.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린 몽골의 모습에서 평온한 자연 속, 어쩌면 곧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그들의 이야기 즉 가축인 말들과의 교감, 얼마 남지 않은 다르하드족과 카자흐족 유목민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그들은 그 넓디넓은 초원들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도시가 번성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떤 상념에 젖었을까? 아니면 그들도 미국의 인디언들처럼 잊혀져가는 것이 두려웠을까? 그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그리하여 작가 부제는 과감하게 카메라를 치켜들고 분연히 일어섰다.

융성한 역사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몇몇 부족만이, 소멸되어가는 초라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느낀 비애감을 작가 부제마저 외면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다.

울란바토르 국제공항은 오늘도 신 유목민들을 자꾸 자꾸 하늘로 실어 나르고 있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